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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칼럼] '노예 시장'
[이정선 칼럼] '노예 시장'
  • 이정선 논설위원
  • 승인 2016.09.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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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논설위원

고려 말, 유명한 학자 이곡(李穀)이 수도 개경(開京)의 시장골목을 둘러보았다.

얼굴을 아름답게 꾸민 여자들이 몸을 팔고 있었다. 그 생김새에 따라 몸값이 비싸기도 하고, 싸기도 했다. 이곳저곳에서 공공연하게 몸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런 곳을 '여자 시장(여사·女肆)'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곡은 관청을 들어가 보았다. 공문서를 작성하고,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이 뇌물을 받으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뇌물은 사건의 경중에 따라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했다. 뇌물을 거리낌없이 받으면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관리 시장(이사·吏肆)'이라고 했다.

이곡은 '사람 시장(인사·人肆)'도 구경할 수 있었다. 가뭄과 홍수 때문에 양식이 떨어진 사람이 많았다. 힘센 사람은 도둑이 되고, 약한 사람은 떠돌이가 되었다. 그래도 입에 풀칠할 재간이 없었다. 그러자 부모가 자식을 팔고, 남편은 아내를 팔며, 주인은 종을 팔기 위해 시장에 줄을 지어 있었다. 이들의 몸값은 너무나 쌌다. 개나 돼지 값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관청에서는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처럼 희한한 시장이 3곳이나 되었다. 이곡은 '시장 이야기(시사설·市肆說)'를 써서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랬던 이곡이 다시 붓을 들었다. 이번에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둘러보고 글을 썼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자시장도, 관리시장도, 사람시장도 '엄청' 진화하고 있었다. 이곡은 '지면 관계상' 사람시장에 관한 기록만 추가하기로 했다.

타이어가게에서는 40대 지적장애인이 얻어맞고 있었다. 주인은 월급도 주지 않으며 10년 동안이나 부려먹으며, 곡괭이자루와 파이프, 각목으로 '상습 폭행'하고 있었다. 지적장애인은 '타이어 노예'였다.

농장에서는 '축사 노예'가 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주인 부부는 월급도 주지 않은 채 축사와 밭일을 시키다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상습 폭행'하고 있었다.

'심야 노예'도 있었다. 70대 심야노예는 초등학교 야간경비원으로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배수로 청소·기계실 바닥 물 퍼내기·체육관 커튼 세탁·지하주차장 물 청소·제초작업까지 맡아야 했다.

지적장애 노숙자를 섬 지역의 염전이나 양식장 등에 팔아 넘긴 '노예 상인'도 있었다. 노숙자들은 그 바람에 '염전 노예'가 되고 있었다.

이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둘러본 곳은 '노예 시장'이었다.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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