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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덕 칼럼] 평평경장의 문화DNA: 페어플레이Know Korea
  •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 승인 2017.01.0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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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지난 칼럼에서 우리는 요즘 많은 정치가들이 나라가 최순실사태 이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훌륭한 주장과 제안 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뭔가 근본적이며 막중한 요소가 빠진 것 같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 모든 주장과 제안들을 공통분모로 꿰뚫는, 그리고 국민의 의사와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궁극적 목표”가 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궁극적 목표는 “평평경장” (“평평한 경쟁의 장”)(“Even Playing Field” 또는 “Level Playing Field”) 의 형성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 신조어에서 핵심어 두 개는 “평평한” 과 “경쟁” 이다. 평평하다는 개념은 물론 누구에게나 같은 룰과 조건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법치주의 의 기본개념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와 시장경제를 채택하여 설립된 나라이니, 경쟁이란 사회의 기본 조건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왜 평평경장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리도 힘든 것일까? 평평경장을 가능케 하는 기본 문화DNA가 따로 있는 것일까? 선진국 사회에는 그러한 문화DNA가 있을까?

서구사회를 보면 Fair Play 라는 문화DNA가 있다. 그들 역사의 산물이다. 서양역사는 계약관계 와 혁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잘아는 영어 단어 “liberty” 를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personal freedom (개인의 자유) 로 생각한다. 그러나, 서구 역사의 이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liberty 의 뜻은 right (권한) 또는 privilege (특권) 이었다. 유럽 역사 속의 Guild (길드 또는 협회) 라는 개념도 이러한 liberty 를 누리는 자들이 그 권한∙특권 을 보존하고자 만든 제도였다. 유럽의 봉건제도 선상에서 king (왕) 과 knight (기사) 간의 관계를 보아도, 왕은 땅과 그에 속한 serf (농노) 를 기사에게 주는 대신, 기사는 왕의 전쟁에 군사를 데리고 참여하고 세금을 걷어줘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즉, 상호간에 걸맞은 의전은 지켰으나, 기본 관계는 계약적이었던 것이다. 반면, 동양에서는 20세기 전까지 2500여 년 동안 공자사상이 정치철학을 지배했는데, 기본은 위∙아래 사람의 관계를 확실히 하되,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아우르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하여 사회적 조화를 이룸으로써 전쟁을 회피하고 공정하고 태평한 사회를 이루자는 이상이었다. 즉, 큰 틀에서 비교해 볼 때, 서구사회는 수평적 질서, 그리고 동양사회는 수직적 질서를 추구한 셈이다.

이렇듯 서구사회의 수평적 질서 속에서는 각계각층 사회 구성원간에 liberty 를 보장하는 것이 이상이었으며, 이는 계약관계, 나아가서는 법치주의였다. 그리고, 서양은 이 liberty 의 보존을 위하여 수 많은 혁명에 혁명을 거듭해 왔다. 불란서 혁명 과 공산혁명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이러한 수평적 사회질서 체계를 가능하게 한 문화DNA 는 바로 우리가 잘 아는 Fair Play 개념이었던 것이다. 반면, 수직적 사회질서를 추구한 동양에서는 Fair Play 라는 개념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자사상 대신 자유민주주의 와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수 많은 서구제도를 받아들여 설립한 한국에서는 서구에서처럼 Fair Play 개념이 불가결의 기본 조건이다. 그런데, 우리가 Fair Play 를 잘 알기는 하는 것일까?

Fair Play 라는 것이 웃긴다. 누가 Fair Play 를 하는 것을 보면 바로 “그렇다” 라고 알겠는데, 누가 “Fair Play 의 정의가 뭔데?” 라고 묻는다면 사실 헷갈린다. 우선 쉬운 예로, 스포츠에서 스포츠맨정신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Fair Play 다. 그런데, Fair Play 의 개념을 어렴풋이 기사도 와 연관 지어 생각 해 보면, 처음부터 조금 헷갈린다. 가상의 예를 들어 생각 해 보자.

멋있는 백기사가 백마 타고 지나가는데, 연못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빠져 허우적거린다 하자. 기사는 멋있게 말에서 뛰어 내려, 아가씨를 구해 안고 나온다. 무거운 갑옷 입고 물에 들어가는 행동은 자살 행위와 마찬가지니, 이 기사의 행동은 바보스럽지만 무척이나 용감했다. 수심이 허리까지밖에 안 왔던 것이 다행이다. 기사니까 기사도를 발휘하여 Fair Play 한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그의 행동은 멋있고 용감했으나, Fair Play 와는 관계 없다. 다음 날, 이 백기사가 흑기사를 만나 누가 더 센지를 겨루기 위해 결투를 한다. 그런데, 싸움 도중 백기사의 squire (기사의 조수) 가 자기 주인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흑기사 뒤에서 그의 발을 밧줄로 걸고 흑기사는 칼을 노치며 넘어지고 만다. 백기사는 당장 자기 칼을 흑기사의 갑옷 사이로 꽃게 먹을 때 하는 것처럼 비틀어 넣어 그를 죽이는 대신, 흑기사에게 칼을 집고 다시 일어나 덤비라 한다. Fair Play 인가? 맞다. 실력을 가리려 결투하는 마당에, 반칙을 이용해 구차하게 이기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렇듯, Fair Play 는 멋있는 행동을 모두 통틀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선상에서 부당하고 구차한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다 는, 즉 부정적인 행동을 부정하는 각오를 말한다. 그리고, 위 가상의 예에서 보면, 백기사는 상대방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칙을 통해 내가 이긴다면, 내가 내 힘과 실력으로 이겼다 자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즉, 백기사에게 Fair Play 는 자신의 자부심을 극대화 하기 위한 하나의 자존심이었을 수 있다. 다른 한편, 세상이 알아주던 말던 나는 Fair Play 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백기사는 승부에 대한 자부심을 떠나 더 객관적인 자존심을 지킨 셈이다. 이 둘째 자존심이 더 고귀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 Fair Play 를 행하는 사람에게, Fair Play 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자존심이다.

그러면, 여기서 Fair Play 를 정의하고 지나가자. Fair Play 는 “경쟁선상에서 고의적으로 힘, 위협, 반칙, 편견, 새치기, 실례 등을 행함으로써 부당하고 구차한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다 는 개념이다.” Fair Play: From Nonsense Republic to Fair Play Republic, 임병덕, For Book (2013). 여기서, 힘 은 권력, 폭력, 완력, 그 외 많은 부 또는 높은 위치로부터 비롯하는 우위를 말한다. 위협은 그런 힘을 행사 할 협박을 말한다. 반칙은 모든 편법적 방식을 의미하는데, 사기, 기만, 거짓말, 위법, 부정, 부패, 비리 등을 포함한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사사롭게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고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새치기는 차례끼어들기, 꼬리물기, 아부 등 비겁하고 치사한 모든 행동을 말한다. 실례는 남에 대한 배려의 부재 와 예의에 벗어난 언행을 말한다. 여기서 힘, 위협, 반칙, 편견, 새치기, 실례 등은 모두 고의적인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Fair Play 를 정의하고 보면, 우리사회에서는 Fair Play 가 과연 얼마나 실행되고 있는지 참담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사회 구성원이 모두 Fair Play 를 지향 하고, 어떤 언행이 Fair Play 를 구성하는지에 전반적으로 동감 한다면, Fair Play 는 하나의 사회 계약이다. 이런 계약이 존재하는 사회는 Michael Sandel 교수가 고민하듯 정의 (Justice) 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계약이 유지되게 하려면 어찌 해야 하나? 전 칼럼에서 우리는 미국은 America 라는 하나의 “idea” 를 바탕으로 생겨난 나라인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 idea 의 중축은 미국예외주의라는 것 또한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 idea 가 어떻게 유지될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축구공 표면 여러 곳에다가 줄을 달았다 치자.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줄 하나씩을 잡고 위∙아래∙옆∙앞∙뒤 에서 잡아 당긴다 치자. 그러면 그 공이 어떻게 될까? 공중에 떠 있을 것이다. 그렇다. America 라는 하나의 idea 를 미국 국민이 모두 “어는 누구도 이 것만은 건드릴 수 없어” 라고 서로에게 요구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개 idea 뿐인 것이 고고하게 존재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미국으로서 지탱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Fair Play 라는 이상이 한 사회에서 지속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Fair Play 를 요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Fair Play 를 건드리지 못하게 보전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Fair Play 를 행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말 하는 Fair Play 는 원천적 본능적 인식이지, 법이 아니다. 죄와 벌을 논하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Fair Play 를 행하지 않으면, 법의 영역에서처럼, 다른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질타 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주변 사람의 찌푸린 눈썰매를 감수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Fair Play 를 하지 않는 자에게 음으로 양으로 불쾌감을 표시 할 성의가 있어야 한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 해, 사회 계약으로서의 Fair Play 는 모두가 참여 할 때만이 가능하다.

최순실사태가 보여 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볼 때, 우리 사회에는 서구사회와 달리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Fair Play 개념이 부재한 것이 여실히 들어난다. Fair Play 개념을 많은 사람이 지향 하면 Fair Play 인식이다. 이런 인식이 사회 구성원들 간에 만연 할 때, 씌어지지 않은 하나의 사회적 계약이다. Michael Sandel 교수가 설명하는 사회적 정의로의 여정이다.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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