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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 칼럼] 미술의 탄생아주 쉬운 서양 미술사
  •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 승인 2017.05.1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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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원시시대의 비너스는 왜 뚱뚱한 걸까?’

우리에게 ‘미술’이란 단어는 친숙하지 않다. 미술이란 어렵고 까다로우며, 나와는 동떨어진 낯선 세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술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다. 물론 감상의 대상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미술은 언제 탄생했을까?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미술작품은 프랑스의 라스코 지방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다. 이는 개를 잃어버린 한 소년이 개를 찾다가 라스코 지방의 한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때 벽에 그려진 소나 말 같은 동물 그림을 발견함으로써 이를 원시미술로 보게 되었다. 물론 당시엔 이를 위작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에스파냐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비롯하여 유럽의 70여 곳에서 이와 같은 그림들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원시미술로 확정 되었다. 사실 원시미술이 등장한 이유에 대한 가설은 학자들마다 다르나, 그림위에 나타난 창 자국과 동물 가죽을 뒤집어 쓴 주술사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주술적인 의미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수렵으로 목숨을 이어갔다. 따라서 그들에게 사냥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목숨과도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들은 사냥감을 많이 잡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원하였고, 그 염원은 동굴 벽에 목탄이나 안료 등을 사용한 그림으로 나타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풍만한 비너스는 오늘날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인데, 풍만한 가슴과 볼록한 배, 커다란 엉덩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8등신 비너스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이는 당시 풍요를 위해 벌어진 종족간의 전쟁에서 종족의 수가 많을수록 유리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원시인들은 종족의 재생산을 위한 다산을 기원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미적 기준에서 볼 때, 아이를 많이 잘 낳을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여성이야 말로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이이며, 다산을 원하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비너스야 말로 그들의 이상이자 부적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냥과 수렵, 농경생활에 힘을 쏟기만도 힘들었을 당시의 사람들이 이처럼 미술활동을 계속해서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놀랍게도 당시 미술에는 효용성이 있었다. 예를 들면, 출산한 집에 금줄을 치는 미신의 경우, 사실상 일정 기간 동안의 사람들을 출입을 자제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드나들며 옮기는 병 등을 막으며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이 원시미술의 동굴 벽에는 수렵이나 사냥, 농사를 짓는 등의 전 과정이 모두 표현되어 있었다. 아마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그들의 열망이기도 하였지만 후대에 정보전달을 해 줌은 물론, 후손들이 어릴 때부터 이 그림들을 보며 미리 사냥 과정을 연습해 본다거나 그림대로 훈련을 하면서 생계에 관한 프로세스를 익혔을 것이다. 나아가 결과적으로 사냥에 성공률이 더 높아졌을 것이며, 농사를 잘 지어 더 많은 식량을 수확하며 그들이 바라는 이상에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미술이란 시대마다 추구하는 바와 목적은 다르지만, 우리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미술은 탄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anna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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