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정치경제 AT시선
폴리페서와 ‘술회’[이정선의 까칠토크]
  •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승인 2017.05.15 11:31
  • 댓글 0

수나라가 무너지고 당나라가 일어설 때였다. 위징(魏徵·580∼643)이라는 야망 넘치는 사람이 ‘중대 선언’을 했다. ‘술회(述懷)’라는 시를 지으며 첫 대목에서 이렇게 읊은 것이다.

“중원에서 천하쟁탈전이 또 벌어졌구나(中原還逐鹿). 붓을 던져버리고 싸움터에 나서야겠노라(投筆事戎軒).”

붓대를 놀리던 손으로 칼자루를 잡겠다는 선언이었다. 먹물 묻었던 손에 핏물을 바르겠다는 공개 선언이었다.

위징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사심도 없다고 주장했다. 비록 칼을 잡지만, 부귀영화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우겼다. 시 끝 부분에 이렇게 썼다.

“의기투합했기 때문에 나설 뿐이다(人生感意氣). 공명 따위를 도대체 누가 논할 것인가(功名誰復論).”

위징은 그렇지만 글과 행동이 같지 않았다. ‘공명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공명’을 오랫동안 누렸다.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 밑으로 들어갔다가 그 아들인 태종 이세민(李世民) 대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했다. 요직을 두루 거치고 나중에 문정(文貞)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술회’라는 시는 어쩌면 ‘자기합리화’였다.

위징처럼 붓을 던져버리고 싸움판에 뛰어드는 것을 ‘투필종융(投筆從戎)’이라고 했다. 그러나 ‘투필종융’의 ‘원조’는 위징이 아니다. 원조는 ‘한서’를 지은 반고(班固)의 동생 반초(班超)다.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나 베끼는 ‘심심하고 따분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짜증을 내고 말았다.

마침 북방에서는 흉노의 침입이 잦았다. 자기도 그곳에 가서 공도 세우고, 출세 좀 하고 싶었다. 홧김에 붓을 집어던지고 일어섰다. “대장부가 큰 뜻을 품어야 하거늘, 어찌 하루 종일 붓만 붙들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반초를 ‘벤치마킹’한 것이 위징이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투필종융’을 놓고 ‘폴리페서’ 논란이 요란하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조 수석의 외모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잘생긴 것이 콤플렉스라고 하여 대다수의 대한민국 남성들을 ‘디스’하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이라고 꼬집고 있다. 과거에 조 수석이 ‘폴리페서’를 비판했던 글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조 수석은 ‘술회’를 쓰고 있었다. “고심 끝에 민정수석 직을 수락했다. 능력 부족이지만 최대한 해보겠다.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

조 수석처럼 학자 출신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로 발탁되면서 ‘투필종융’을 했을 때도 ‘술회’가 있었다. 당시 정 총리 ‘후보자’는 “대통령을 잘 보좌하는 것이 총리의 역할”이라며 “총리는 정치가 아니라 행정”이라고 ‘술회’했었다.

‘투필종융’은 이처럼 ‘두들겨 맞고’ 욕을 먹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투필종융’은 그치지 않고 있다. 쟁쟁한 인물들이 붓을 내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판이 별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왼쪽)과 함께 청와대 소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asiatime@asiatime.co.kr

<저작권자 © 아시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asiatime@asiatime.co.kr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오늘의 증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오피니언&피플
[사설] 숙의민주주의 명분 공론조사 남발 막을 ‘룰’을 만들자[사설] 숙의민주주의 명분 공론조사 남발 막을 ‘룰’을 만들자
[청년과미래 칼럼] No! 노키즈존[청년과미래 칼럼] No! 노키즈존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