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VIEW 칼럼 임병덕의 세계 속 한국
[임병덕 칼럼] 페어플레이와 한국의 예절 ②Know Korea
  •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 승인 2017.05.16 10:41
  • 댓글 0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우리는 본 Know Korea 칼럼 시리즈를 통해 한국의 문화 와 역사 속에 페어플레이 DNA 가 부재하다는 점을 살펴 보았고, 그 결과 한국은 선진국가로 가는 문턱에 약 20년 째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서양의 사회계약 패러다임인 페어플레이 DNA 가 우리에게도 필수불가결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하는 종착역이 ‘평평경장’ (평평한 경쟁의 장, “Even Playing Field”) 이고 평평경장은 페어플레이 DNA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선상에서 우리는 한국의 예절 문화 속에 페어플레이 가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번 페어플레이 와 한국의 예절 (1) 에서는 연장자 와 연소자 간의 관계, 직장 상사 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과 그렇지 않은 사람 관의 관계, 마트 종업원 과 고객 간의 관계 등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술집 얘기를 해 본다. 필자 같은 교포출신에게는 아가씨 나오는 술집이 참 재미있다. 사내들끼리 술 먹는 것 보다 훨씬 좋다. 아가씨들 다 예쁘고 귀엽다. 그런데, 손님들 중에 (자주 보는 일임으로, “간혹” 이라는 낯 간지러운 단어는 쓰지 않겠다.) 당연스레 술집 아가씨들을 “아랫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 것도 한~~참 아래로. 이X 저X 하는 것은 예사고, “너 이런데 왜 나오니? 돈에 환장했냐?” “야, 너 살도 안 빼고 이런데 나올 생각 나디?” 같은 멘트를 던지면서도, 그 아가씨가 조금이라도 자기 맘에 들게 하지 못하면 “야, 마담오라구래. 이X 내 쫓고 딴X 데려와” 를 외친다. 그러지 않으면 술값도 내지 않겠단다. 무례 막심하다 못해 처절하다! 노예도, 죽도록 일 시키는 것에 보태, 쫓아다니며 볼 때마다 모욕을 주면 이를 갈을 텐데. 술집 아가씨는 이 손님 방에 있는 동안에는 모욕의 억류된 청중인 (“captive audience”) 것이다. . 지독하게 잔인하다. 그 아가씨가 기분 나쁘다고 뛰쳐 나가면 마담언니한테 당장 잘릴 것은 당연하다. 그 아가씨는 돈 벌기 위해 술집에서 일 하기로 한 것이고, 손님은 그런 아가씨와 히히덕 거리며 재미있게 술 먹으려고 그만한 돈을 지불 하기로 마음 먹고 온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엔터테인먼트라는 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의 공간인데, 왜 아가씨가 이런 무례를 감수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손님은 왜 감히 한 인간에게 이런 인격모독을 해도 된다고 생각 하는지 그 개념의 근원이 궁금하다. 돈을 냈으니까? 그 사람에게는 엔터테인먼트적 가치가 아가씨와 재미있게 술 먹는 것이 아니고, 그 아가씨에게 모독을 주는 것인 것인가? 그러면, 일찌감치 “나는 늬네들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엔터테인먼트를 사려 하는데, 가격이 얼마야?” 하고 흥정 해서 시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핑계처럼, 직장에서 무자비 하게 채이고 살며 스트레스가 싸이니까, 술집에 와서 제3자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보상받으려는 심리일까? 사실관계는 알 수 없으나, 자주 듣는 얘기로는 검사들의 경우 죄인 다루던 버릇이 술집에서도 그대로 나올 수 밖에 없다 한다. 또는, 외과 의사들은 수술할 때 피를 보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니, 술집에서 각별히 망가진다 한다. 필자 같은 반 서양사람의 경험으로는. 술집 아가씨 치고, 손님이 예의 바르면서 살갑게 대해 주면, 덩달아 좋아서 그 손님에게 아기자기 하고 애교스럽게 대해주지 않는 아가씨를 아직 못 봤다. 그렇게 한다면, 같은 돈 내고 마시면서, 상당이 손익 계산이 좋은 것 같은데 왜 모욕을 주면서 즐기려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Fair Play 나 예절의 영역을 떠나, 몹시 참혹한 인권 유린이다. 지독한 nonsense 다.

지난번 칼럼 '페어플레이 와 한국의 예절 ①' 에서 살펴본 한국의 아름다운 수직 적 예절 문화가 이러한 nonsense 를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가 우리가 생각해 볼 골자다. 한국의 문화 역사 속에 수직적 예절은 기본 질서였으나, 수평적 예절이 강조 된 것 같지 않다. 서양의 역사 속에서는 동양에 비해 볼 때 절대적 전제군주가 없었다. 그런 역사 및 사회 속에서는 수평적 인간 관계가 기본이어서 Fair Play 개념이 태어날 수 있었고 수평적 예절이 근본 예절이었던 반면, 동양의 역사 속에는 수직적 인간 관계가 기본이어서 Fair Play 개념이 발달 되지 않았고 수평적 예절을 키울 수 없었던 것 같다. 필자의 기억으로도 어린 시절 도덕 시간에 수평적 예절에 대해 교육받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만약, 한국의 역사 와 문화 속에 수평적 예절에 대한 개념이 강력히 존재 했었다면, 관심 있는 사회 학자, 역사 학자 들께서 필자의 몽매함을 일깨워 주기 바란다. 그러나 필자가 확실히 느끼는 바로는, 적어도 역사의 현 시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 안에서 수평적 예절이 사회 전반적으로 실행되고 있다고 볼기 힘들다. 학교 친구 들과 정겹게 놀고, 잘 아는 직장 동료들과 소주도 마시고 스크린 골프도 치고 하는 교류 같은 것들 말고, 그들 또는 전혀 모르는 제3자들과, 그리고 내가 속하지 않은 여 타 사회 그룹들과의 사이에서, 객관적이고, 손익계산이 전혀 안 나오는, 즉 내가 수평적 예절을 행사 해도 그 상대방이 나에게 수평적 예절을 지켜 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그러한 수평적 예절을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행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 수평적 예절의 근본은 Fair Play 다. 나의 부당하거나 구차한 이득을 위해, 남에게 실례를 끼치지 않겠다는 자세다. 그런 자세를 사회 대다수가 지닐 때, 인식이다. 그러나, Fair Play 가 수평적 예절의 전부는 물론 아니다. Fair Play 가 뿌리라면, 나무 줄기와 이파리는 아랑곳 하는 자세다. 내가 남에게 실례를 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해 줘야 하는 의무도 없지만, 배려 하는 자세다. Fair Play 와 “아랑곳”을 둘 다 할 때, 수평적 예절이다. 어떻게 보면 “아랑곳 한다” 라는 개념이 Fair Play 를 품는다. “아랑곳”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아름답다. 감히 바라건대, 한국인이 “아랑곳하는 민족”으로 세계가 탄복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byim07@gmail.com

<저작권자 © 아시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byim07@gmail.com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