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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덕 칼럼] 페어플레이의 철학 ②- 군인 이야기Know Korea
  •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 승인 2017.08.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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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우리는 본 Know Korea 칼럼 시리즈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 속에 페어플레이 DNA가 부재하다는 점을 살펴보았고, 이 때문에 한국은 선진국가로 가는 문턱에 약 20년째 정체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서양의 사회계약 패러다임인 페어플레이 DNA가 우리에게도 필수불가결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하는 종착역이 ‘평평경장’ (평평한 경쟁의 장·Even Playing Field)이고 평평경장은 페어플레이 DNA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페어플레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페어플레이는 ①경쟁선상에서 ②고의적으로 ③힘, 위협, 반칙, 편견, 새치기, 실례 등을 행함으로써 ④부당하거나 ⑤구차한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지난 칼럼부터 처음으로 돌아가 페어플레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철학적 탐구를 하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는 백기사 얘기를 통해 기사다운 멋있는 행동과 기사다운 페어플레이를 비교해 보았는데, 조금 더 비슷한 예를 들어 감을 잡은 후 다음 칼럼부터는 본격적인 철학적 분석에 들어가도록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공군기 80대를 격추한 독일의 전설적인 전투기 조종사 레드 바론(Red Baron·본명 Manfred von Richthofen)이 1918년 연합군에 의해 격추되자, 적군인 영국군은 그를 기리기 위해 군 최고의 예를 갖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당시 관 위에 놓은 화관에는 '우리의 용감하고 훌륭한 적에게'(To our Gallant and Worthy Foe)라고 씌어 있었다. 이 장례식은 또한 독일 전투기 편대가 전투기 1대를 뺀 편대비행으로 장례식 위를 나는 것을 영국군이 막지 않았다는 설이 있는데, 이것이 '미싱 맨 포메이션'(missing man formation·항공기 한대를 뺀 편대비행)의 시초라는 전설을 만들기도 했다. 

이 이야기가 페어플레이 이야기일까? 이것은 지난 칼럼의 백기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리따운 여인을 구출하는 얘기와 흡사하다. 존경하는 적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추었다는 멋있는 이야기이지만 페어플레이로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장례식장의 하늘을 나는 독일 편대를 격추하지 않았다는 말이 정말이라면, 거기에는 페어플레이의 요소가 있어 보인다. 

그러면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의 육군 한스 폰 루크(Hans von Luck) 소령이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아프리카 군단 소속 제21기갑사단의 일원으로 사하라 사막을 휘저으며 수색대대를 지휘하던 당시의 이야기다. 영국군의 로얄드라군(Royal Dragoon) 연대 소속 스털링(Sterling) 소령이 지휘하던 장거리사막정찰대(Long Range Desert Group)도 수색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휘하 소규모 수색대와 연락이 끊긴 사건이 벌어졌다. 로얄드라군은 무전을 통해 폰 루크 소령에게 연락이 끊기 수색대의 안부를 물었고, 폰 루크 소령은 그들을 포로로 잡았으며 잘 있느라 알려주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양쪽 부대들은 수시로 연락이 끊긴 자군 병력의 안부에 대해 연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폰 루크 대대에 포로가 된 영국군 중 한 명이 영국의 Player’s 담배 회사 오너 가족 출신의 젊은 소위였다. 여느 때처럼 폰 루크 소령은 이 소위를 포로로 잡았다고 영국군에 연락해 주었는데, 그 때 폰 루크 소령 휘하의 독일 병력은 담배가 떨어져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그래서 폰 루크 소령은 이 소위에게 '당신을 돌려보내는 대신 로얄드라군에게 담배를 요구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 소위는 '그렇게 해보라'고 답했다. 이에 폰 루크 소령은 '자네의 몸값이 담배 몇 개피나 된다고 생각하나'고 물었고, 이 소위는 '일백만 개피(십만 팩)'이라고 답했다. 연락을 받은 로얄드라군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담배 중 넘길 수 있는 담배는 육십만 개피(육만 팩)이라고 답했고, 폰 루크 소령과 그의 부하들은 이를 너무나 반겨했다. 그러나 포로로 잡힌 이 영국군 소위는 자신의 가치가 그것밖에 안되냐며 버럭 화를 냈고, 백만 개피보다 단 한 개피라도 모자라다면 자신은 거래에 참여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는 결국 자진해서 독일 포로 수용소로 보내지고, 폰 루크 소령의 병사들은 담배없이 고생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우습겠지만 필자는 이런 유럽 스타일 페어플레이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가슴 벅차하며 소년기를 보냈다. 이 이야기는 페어플레이에 관한 얘기다. 적에게 연락이 끊긴 자국 병력의 안부를 묻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이미 트랭글레이션(triangulation·적군의 무선통신을 감지하여 그들의 위치를 역 계산 하는 방법) 테크놀로지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바, 한 쪽이 이 신사협정을 악용해 상대방을 기습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군의 폰 루크 소령과 영국군의 스털링 소령은 구차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이 신사협정을 악용하지 않았다. 페어플레이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정권 하에 독일군, 특히 히틀러 친위대의 입에 담을 수 없는 만행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니 여기서는 페어플레이에만
집중해 본다. 

이 외에도 페어플레이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중세의 기사도 얘기들, 그리고 십자군전쟁 당시 무슬림(이슬람 교도) 장군 살라딘의 용맹하지만 공정한 발자취 또한 소년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적어도 역사의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지난 몇 백 년 동안 페어플레이라는 하나의 문화 요소를 우리가 익숙한 상업, 정치, 법, 금융,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어느 정도 정착시켜 놓고, 제도화, 시스템화 해놓은 것은 서양 문명인 것 같다. 반면, 동양 문화에는 '도'가 많다. 군자도, 국선도, 공자, 맹자, 불도, 유도, 태권도 등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지혜도 무궁무진하고 그 깊이는 끝도없이 심오하다. 

개인적으로는 한나라 건국 당시 유방의 지략가 장자방의 스승인 황석공의 황석공소서에 나오는 주옥같은 지혜들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서양 문명에도 '도'가 있다. 바로 페어플레이 '도' 다. 그들은 이 것을 '도'라 부르지도, 일상 생활에서 굳이 돌이켜 생각하며 살지도 않는다. 그러나 페어플레이는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문화 속에, 일상생활 속에, 산업활동 속에, 하다 못해 군사 문화 속에도 이미 깊이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이 깔려 있다. 페어플레이는 하나의 개념이며, 이것이 사회전반적으로 실천된다면, 그 것은 하나의 인식이다. 필자가 근 40년간 살아온 미국에서도 개개인에 따라 정도가 다를지언정 페어플레이가 그 사회에 깔려있는 당연한 인식이다.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byim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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