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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소쩍새가 답을 주고 있다
유연미 논설위원

잊은지 오래다. 이름도 그리고 소리도. 아마도 본 적이 없기에 더욱더 그런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아련한 먼 곳에서 그 무엇이 날아왔다. 그리고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애잔한 그 소리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 혼잣말이다. 그러면서도 꿈 속이라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분별이 안됐다. 그다음 날, 또다시 경험했다. 분명, 심연의 그 소리였다. 생시였다. 새벽 4시. 주인공은 소쩍새. 그렇다. 바로 소쩍새의 울음소리였다.
전설에 등장하는 소쩍새. 그는 우리나라 문학에서 슬픔과 한(恨)의 상징이었다. 그러기에 소쩍새는 ‘소설과 시에서 슬픔의 문화를 그렸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의 가슴 아픈 문화다. 그러니 굶어 죽은 자의 한이었다. 그렇다. 이는 세상에 보내는 의미 있는 외침이었다. 그 새의 전설을 살펴보자.


먼저, 기근이 되던 해에 열 남매 중 막내가 굶어 죽어 소쩍새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시집 간 며느리가 굶어 죽어 한 많은 소쩍새가 되었다는 전설. 이는 좀 더 구체적이다.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가 아주 작은 솥에 밥을 지으라고 며느리에게 명한다. 며느리를 굶길 요량으로 말이다. 끝내 그 며느리는 굶어 죽는다. 그래서 죽은 후 ‘솟쩍, 솟쩍’하고 울어 소쩍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솥 적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솥이 적어 밥을 많이 지을 수가 없어 굶어 죽은 그 며느리의 한이 섞인 소리다. 그래서 소쩍새의 소리가 애달프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 새의 입안이 붉다. 소리 내어 울 때에는 입안이 온통 붉으니 피를 토해 내는 듯, 절규의 몸부림으로도 이미지화된다. 그래서 그 며느리가 피를 토하면서 죽은 자리에 붉은색의 철쭉꽃이 피었다고 한다. 한의 절규다.

하지만 소쩍새의 반전이 있다. 그 울음소리의 진의에서다. 놀랍게도 그 구슬픈 울음소리는 수컷의 ‘텃세권 알리기’라고 한다. 그렇다. 애잔한 그 소리가 야생 세계에서의 ‘세력권’의 싸움이라는 의미다. 정말 놀랍다. 아무리 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현인(賢人)의 말을 빌면, 이와 같은 소쩍새는 자연에 잘 순응한 새임에 틀림없다. 노자는 이러한 적응을 ‘습명’이라 했다. 이는 ‘자연의 법칙을 알아서 그것에 따라서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일반적 규칙은 ‘강하게 되고 싶으면 약한 듯한 감정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노자의 핵심 사상이다.

요즘 여당 대표와 한 야당 대표가 연일 회자되고 있다. 다른 정당에 대한 강성 발언 때문이다. 그렇다. ‘독설’적인 발언 때문이다. 때로는 비아냥거림도 함께한다. 그들의 이런 발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일종의 자신들을 위한 세력권의 확장으로 이해한다. 물론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그들만이 생각하고 있는 세 확대의 한 방법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최상의 방법이 될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렇다. 소쩍새가 답을 주고 있다.


유연미 논설위원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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