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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만의 전쟁[이정선의 까칠토크]
  •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승인 2017.09.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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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8월, 중국 ‘인민해방군 사령부’가 북경방송을 통해 경고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대만과 그 연안도서를 해방하기로 결의했다. 곧 금문도(金門島)에 상륙할 예정이다.”

중국은 그러면서 금문도(金門島)를 맹렬하게 포격했다. 금문도로 날아오는 대포알이 하루 3만∼4만 발이나 되었다.

중국은 전투기도 띄웠다. 대만도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중국군과 공중전을 벌였다. ‘제 2차 대만해협 위기’였다.

대만의 우방인 미국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미국 국방부가 선언했다.

“금문도 3마일 해상까지 7함대를 파견, 대만의 보급선단을 호위하겠다.”

미국 국무장관도 성명을 내놓았다.

“만일 대만의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 대만이 소유하고 있는 연안 각 섬의 방위를 위해서 미군 투입도 불사하겠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세계는 대만해협을 주시했다.

그런데, 결과는 엉뚱했다. 두 달 뒤인 1958년 10월, 중국은 희한한 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짝수인 날에만 금문도를 포격하겠다.”

싸움은 갑자기 싱거워졌다. 이후부터 ‘짝수 날’인 이틀에 한 번씩만 대포알을 주고받는 어색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중국은 그러다가 포격을 점차 줄이더니 슬그머니 중단하고 말았다. 대만 해협은 다시 조용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어느 날, 대만의 장경국(蔣經國) 총리가 서방측 기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어떤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대만이 자위책의 일환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한다던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장 총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장개석(蔣介石) 선친이 살아 계실 때 핵무기 개발계획을 이미 보고한 바 있습니다.”

대만도 핵무장을 하겠다는 중대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기자들은 긴장했다. 중국에 이어 대만도 핵을 보유하면 주변 국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장 총리의 계속된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선친으로부터 쓸데없는 짓이라고 꾸중만 들었습니다. 우리 중국 사람들은 ‘대량살상’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이랬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무차별 살상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싸움을 해도 마치 ‘전쟁놀이’처럼 ‘짝수 날’에만 대포알을 겨냥하고 있었다. 중국과 대만은 이른바 ‘3통(三通)’이다, ‘3불(三不)’이다 하면서 맞서면서도 살벌한 싸움은 피하고 있었다.

서울시청 100m 상공에서 북한의 100kt급 핵폭탄이 폭발할 경우, 36만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등 2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는 보도다. 서울 시민의 5분의 1이 순식간에 당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 북한이라고 온전할 가능성은 아마도 ‘제로’다. 보복 공격으로 적어도 수십만 명이 당할 것이다. 결론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남북 모두 ‘쑥밭’이다.

그래서 돌이켜본 장경국의 발언이다. 중국 사람들은 ‘대량살상’을 피하겠다는데, 우리의 동족은 ‘남조선 불바다’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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