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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탄압'[이정선의 까칠토크]
  •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승인 2017.09.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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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임금 때인 1518년, 대제학 남곤(南袞·1471∼1527)이 임금에게 보고했다.

“악장(樂章) 속의 음사(淫詞)나 석교(釋敎)에 관계있는 말을 고치라는 명령에 따라, 장악원(掌樂院)의 관리 등과 진지하게 의논했습니다. ‘동동사(動動詞)’처럼 남녀 간의 음사에 가까운 말은 ‘신도가((新都歌)’로 대신했습니다. ‘정읍사(井邑詞)’는 ‘오관산(五冠山)’으로 대용했습니다. 또 ‘처용무(處容舞)’와 ‘영산회상(靈山會上)’은 새로 지은 ‘수만년사(壽萬年詞)’로 대치했습니다.…”

소위 ‘음란가요’와 ‘불교가요’를 무더기로 금지시켰다는 보고였다. 가사가 음란한 ‘동동사’의 경우는 정도전이 한양 천도 때 지은 ‘신도가’로 바꾸고, 불교 색깔이 짙은 노래도 악학궤범에서 삭제하고 다른 노래로 대신했다는 경과보고였다. ‘불교가요’의 경우는,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와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문화 탄압이고, 예술 탄압이었다. 정치 탄압이기도 했다. 임금의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

이랬던 ‘탄압의 과거사’는 20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유신 반대 데모’가 한창이던 때였다.

최루탄 때문에 눈을 비비던 대학생 시위대 속에서 ‘가곡’ 하나가 터져 나왔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이라는 노래였다. ‘선구자(先驅者)’였다.

대학생 시위대는 ‘선구자’를 많이 불렀다. 최루탄 가스 때문에 칼칼해진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제창했다. 정보당국은 그 노래가 껄끄러웠다. ‘선구자’가 들릴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보당국은 대학생들이 난데없이 ‘선구자’를 제창한 이유를 분석했다. 우선, 가사에 나오는 ‘불온한 단어’부터 헤아렸다. ‘일송정’, ‘해란강’, ‘선구자’, ‘용두레’….

수틀리면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당시였다. 그래서인지, ‘중공(中共)’ 치하인 만주에 있는 지명이 나오니까, 시위대가 용공(容共) 세력일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이후 많은 노래가 이른바 ‘금지가요’로 찍혔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비롯해서 시위대가 애창했던 노래도 상당히 묶였다. 1975년에만 무려 222곡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 명분만큼은 그럴 듯했다. 어디까지나 ‘건전가요’ 육성이었다. 금지 사유는 뻔했다. ‘가사가 퇴폐하고 창법이 저속하거나 사회 불신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는 상투적인 것이었다.

‘군사정권’에서나 가능할 탄압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21세기 이명박 정권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군사정권 뺨칠 정도였다.

국가정보원이 정부 비판 연예인의 특정 프로그램 배제와 퇴출, 방송 프로그램 편성 관계자 인사 조치 등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보도가 그랬다. 문화계·영화배우·영화감독·방송인·가수 등 그 명단이 거창했다.

당시 어떤 방송인을 ‘중도하차’시킨 방송국의 해명이 좀 궁색했었다. 하나의 이유는 진행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경비절감이었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 때는 어떤 영화감독이 ‘대통령 주연 영화’ 제작을 종용받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 ‘에어포스 원’ 같은 ‘애국 영화’를 만들 경우, 수십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을 희한하게 쓸 모양인 듯했다.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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