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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 칼럼] 비잔틴 중세 미술
  •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 승인 2017.10.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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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단조로운 듯 단조롭지 않는 미술.’

중세의 미술은 사변적이다. 중세의 미술가들은 원이나 세모, 네모 등의 기하학적인 요소로 작품을 완성했다. 따라서 모든 미술이 과거 미술의 이론을 토대로 발전했지만, 중세의 미술에서 그들이 따라야 할 모델은 딱히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추구하던 로마의 미술의 이상은 사라졌다. 중세의 미술은 주로 성상화 된 미술이었으며, 중세의 예술가들은 영혼의 표현에 치중함과 동시에 주로 교회의 교리를 전달하는 목적의 예술을 추구하면서 예술은 종교의 시녀로 전락하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문화적으로 지중해 연안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의 북유럽 지방으로 그 중심은 이동했으며, 기독교가 이교도를 탄압하는 행태를 보인다. 또한 로마시대 미의 대상으로 여기던 인간의 육체는 타락의 대상이 되어 이제 로마시대의 예술적 표현은 소멸된다.

물론 중세 초기, 기독교는 비합법적 종교로써 이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로마의 지하묘소인 카타콤에서 우리는 산 피에트로와 마르첼리노의 카타콤 천장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4세기 이후, 당시 기독교에 심취되어 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新 로마’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그 때 그의 눈에 띈 곳이 바로 지금의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이었고 이는 곧 콘스탄티노플로 개칭되어 로마의 수도가 되었다. 즉, 14C 중반까지 중세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비잔틴 미술이 바로 이것으로 화려한 색채와 장식이 특징이며, 우아하고 세련된 그리스와 로마 동방의 문화가 융합된 톡특한 미술로써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비잔틴 미술의 특징은 뛰어난 모자이크가 많다는 것과, 기독교의 유포를 목적으로 한 터라 대부분 종교미술이라는 점이다. 또한 권위자나 신성한 존재의 머리 뒤쪽의 후광을 표현한 점은 매우 재미있으며, 교회의 성자임을 암시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훗날 중앙집권을 이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에 걸맞게 장대한 교회를 짓고자 마음을 먹었으며, 바로 이 야심에 걸맞게 지어진 곳이 바로 ‘하기아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다. 이는 베니스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수많은 대성당 등의 모방의 대상물이 되었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그 유명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로 이는 비잔틴 예술의 최고봉으로 일컫는다. 또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엄숙한 자세와 큰 눈으로 엄숙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벨린기에로의 <성 모자> 역시 바로 이 비잔틴 중세 미술의 작품이다.

이처럼 중세미술은 인간의 자발성과 합리성을 배제한 개별화 된 감정에 지나칠 정도의 큰 억압과 획일화가 주류가 된 미술이라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으나, 역으로는 세상과 세상을 넘어선 해석을 해볼 수 있는 여지와 더불어 중세의 교회가 당시 중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축소판으로써 자연과 학문, 나아가 도덕과 그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집결체라는 것에서 매우 매력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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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anna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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