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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칼럼] 석고대죄와 고해성사는 없었다.
  •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7.11.1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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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석고대죄(席藁待罪)와 고해성사(告解聖事)는 그 형식이 어쨌든 간에 내용은 지난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의식이다. 석고대죄의 유래는 분명하지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서양의 고해성사는 신에 대한 고백과 참회를 중요하게 여겼던 초기 기독교의 가톨릭 시대부터 시작된 분명한 유래가 있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이 두 단어가 지금까지도 제일 많이 사용되는 곳은 우리나라다.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툭하면 나오는 게 이 말이다.

석고대죄의 고(藁)는 볏짚을 말한다. 따라서 석고대죄는 볏짚으로 만든 거적에 자리해서 처벌을 기다린다는 말이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해달라는 의미다. 왜 볏짚인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푹신한 방석이 아니라 천민들이나 사용할 거칠고 딱딱한 거적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맨바닥보다는 낫다. 오랫동안 꿇고 있으면 무릎이 절단 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석고대죄라면 사도세자를 빼놓을 수 없다. 사도세자를 주제로 한 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빠짐 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아버지 영조에게 사죄를 청하는 석고대죄의 모습이다. 영조와의 갈등으로 결국 뒤주에서 굶어 죽은 사도세자가 가장 많이 석고대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고대죄는 보통 속옷 차림에 가깝도록 의관을 벗고 한다. 몹시 수치스러운 상황이 되는데 그 자체가 큰 벌이다. 처분할 사람이 결단할 때까지 밤이 깊든, 눈비가 오든 그대로 있어야 한다. 중국 TV드라마 <사마의: 미완의 책사>를 보면 눈이 내리는 궁궐 앞 밖에서 조조에게 청원을 하다가 몸이 꽁꽁 얼어붙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옛 중국에서도 석고대죄 관습이 있었던 것 같다.

가톨릭의 7개 성사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는 기독교 유럽 사회에서 오랫동안 문화로 자리를 잡은 하나의 종교적인 관습이다. 가톨릭에서 인간의 가장 큰 죄는 원죄(原罪)다.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죄악 때문에 후손인 인간 모두가 원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원죄는 영세(세례)를 받음으로 인해 용서를 받게 되고 가벼운 죄들(mortal sins)은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침례 의례의 목적과 비슷한 고해성사를 통해 신부가 죄 용서를 선언하는 순간 천국의 하느님이 죄를 용서한다고 말한다. 고해성사는 신부가 보는 앞에서 하느님에게 자기가 저지를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석고대죄를 한다고 해서, 그리고 고해성사를 한다고 해서 인간은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고 참회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까? 아닌 것 같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정당화 하는데 익숙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여전히 그를 만회하고도 남을 애국충정이고 국가안보를 위한 충심이라고 떠들어댄다. 우리는 그들의 두꺼운 낯짝과 검디검은 심장을 똑똑히 보고 있다. 환골탈태와 개과천선은 없다.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법이 가하는 철퇴만이 있을 뿐이다.

선거조작만이 아니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5.18에 희생된 새로운 주검들의 발견, ‘논두렁 시계’, ‘NLL 포기’, ‘놈현 아방궁’에서 보고도 남을 지경이다. 국산품애용운동 정도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쇠고기 촛불집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그들에게 석고대죄와 고해성사는 애당초부터 없는 외계인의 단어일뿐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hgkim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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