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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 ‘수난사’[이정선의 까칠토크]
  •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승인 2017.11.2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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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양된 세월호 (사진=연합뉴스)

1909년 9월 경기도 개성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김 아무개라는 사람의 선산을 ‘괴한’이 파헤치고 두골을 훔쳐간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들은 두골을 찾으려면 1만5000냥을 내놓으라는 협박편지(?)를 묘석 위에 남겨놓고 있었다. 범인은 같은 동네 주민인 이 아무개 등 3명이었다. 어림도 없다고 버티자, 이들은 돈을 5000냥으로 깎아줄 테니 내놓으라며 다시 협박하고 있었다.

조상을 모시는 ‘경조사상’이 대단했던 시절이었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조상보다도 돈을 소중하게 여기는 불효자라는 손가락질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유골 납치사건’이 발생하면 대체로 타협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다.

1868년 독일 사람 오페르트는 흥선대원군 부친 남연군(南延君)의 ‘분묘 도굴사건’을 일으켰다.

오페르트는 충청도 덕산에 있는 남연군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납치, 통상압력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조상의 유골을 ‘인질’로 잡고 대원군을 상대로 통상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조선 사람들이 유골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얘기를 누구에겐가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다행스럽게 미수에 그쳤다.

1999년에는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 부친의 ‘유골 납치사건’이 있었다.

당시 범인들은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충골산에 있는 신 회장의 부친 묘소를 파헤쳐 시신 일부를 가져갔다. 그 유골을 ‘인질’로 잡고 회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8억 원의 거액을 요구했다. 이들은 체포된 뒤, “그룹 총수 부친의 묘에는 값나가는 부장품이 많을 것 같아서 도굴했지만, 별다른 물건이 없어서 시신 일부를 가져가서 협박전화를 했다”고 실토했었다.

이 사건을 일으켰던 범인은 5년 후 또 한 차례의 ‘유골 납치사건’을 벌였다. 2004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조부의 유골을 납치한 것이다. 범인은 출소한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대기업 회장의 조상 묘를 도굴하면 거금을 챙길 수 있다고 꼬드긴 것으로 드러났었다.

2009년에는 탤런트 최진실의 ‘유골함 도난사건’이 일어났다. 두께가 7cm나 되는 화강암 벽면을 망치 등으로 깨고 유골함을 가져간 사건이었다. ‘절도 용의자’는 최진실의 가족은 물론이고 팬의 가슴에까지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붙들리고 나서 “최진실이 흙으로 된 묘로 이장해달라고 요구해서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며 횡설수설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유골 수난사’가 또 발생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 은폐 사건이다. 세월호 선체 내에서 손목뼈로 추정되는 뼈 1점을 발견했는데도 5일 동안이나 쉬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희생자들은 두 번 죽고 있었다. 참사 당시 희생자 가족이 맨바닥에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어떤 장관은 ‘의전용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어떤 국장은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하고 있었다. 어떤 국회의원은 해경 경비정을 타고 사고 해역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랬는데, 유골 은폐다. 세월호 희생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까지 3번째로 죽이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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