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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혁명’[이정선의 까칠토크]
  •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승인 2018.01.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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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1927∼2001)는 동유럽 국가의 붕괴 원인 가운데 하나를 ‘육류 부족’에서 찾았다. 국민이 고기를 필요한 만큼 먹지 못하면 국가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의 저서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 대충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폴란드 사람들은 이른 새벽부터 ‘고기 사냥’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비닐봉지나 서류가방을 들고 줄을 선다. 임산부나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있으면 마지못해서 자리를 양보해준다. 뒷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투덜거린다. 고기를 사지 못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고기 공급 문제는 폴란드의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1981년 고기 공급량을 20% 줄이겠다고 발표한 후 계엄령을 선포해야 했다. 고기 배급을 기다리다 지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의 행진’을 벌였기 때문이다. 군중은 “우리에게 고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소련의 경우는 곡물 생산량이 충분한데도 막대한 콩과 옥수수, 밀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질 낮은 ‘국산곡물’을 가축에게 먹이고 ‘수입곡물’은 사람이 먹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육류를 충분하게 공급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옛 중국 송나라 때에는 ‘고기’ 때문에 전쟁을 놓친 경우도 있었다.

송나라 장군 화원(華元)이 전쟁을 앞두고 양을 잡았다. 군사들에게 고기를 푸짐하게 먹여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기를 나눠주다 보니 자신의 전차운전병인 양짐(羊斟)이 마음에 걸렸다. 양짐의 이름에 양(羊)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양’에게 ‘양고기’를 먹이는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전쟁을 앞두고는 찜찜한 일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그래서 양짐에게는 양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했다. 양짐은 약이 바짝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전투가 시작되었다. 양짐이 화원에게 외쳤다.
“양고기를 장군 마음대로 나눠줬으니, 전차는 전차병인 내 마음대로 몰겠습니다.”

양짐은 전차를 적진으로 몰고 들어갔다. 그 바람에 전차에 타고 있던 화원은 적국인 정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혀야 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이렇게 중요할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체제가 맥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전쟁을 망칠 수도 있다.

중남미국가인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돼지고기 혁명’이라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돼지 넓적다리 고기’를 먹는데, 정부가 이를 배급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시달리던 서민들의 분노가 ‘돼지 넓적다리 고기’ 때문에 폭발한 것이다. 임신 5개월인 여성이 값싼 햄을 사려고 밤새도록 줄을 섰다가 군인이 쏜 총탄을 맞고 숨지는 불상사까지 생겼다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나 행복한가. 연말 ‘특별사면’ 대상에 ‘소시지 17개와 과자 한 봉지’를 훔쳤다가 구속된 리모(58)씨가 포함되고 있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고작 8900원어치의 도둑질이었다. 얼마 전에는, 군에서 제대한 아들에게 ‘따뜻한 고깃국’을 먹이고 싶어서 도둑질을 했다는 40대 아버지의 사연이 보도되기도 했었다.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이런 ‘딱한 민생’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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