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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불합격이다”
“내 아들은 불합격이다”
  •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승인 2018.02.06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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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의 까칠토크]
▲ (사진=연합뉴스)

조선 초, 정갑손(鄭甲孫·1396~1451)이라는 대쪽 같은 관리가 있었다. 그가 함경도 감사로 근무할 때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 한양을 다녀왔더니, 그 사이에 향시 합격자 방이 나붙어 있었다. 자기 아들인 정오(鄭烏)의 이름도 합격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이를 본 정갑손의 수염이 꼿꼿하게 치솟았다. 곧바로 시험관을 불러서 혼냈다.

“감히 늙은 것이 나에게 여우같이 아첨을 하는가. 내 자식 오는 아직 학업이 정밀하지 못한데 어찌 요행으로 합격시켜 임금을 속인단 말인가.”

정갑손은 아들의 이름을 합격자 명단에서 지워버렸다. 시험관도 그 자리에서 내쫓았다.

정갑손은 아들이 무능했기 때문에 합격을 취소시킨 것이 아니었다. 훌륭한 선비에게서 멍청한 아들이 태어날 리는 없었다. 오는 어렸을 때부터 똘똘했고 학문도 열심이었다. 효성도 남달랐다.

오는 자신을 불합격시킨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과거에 장원으로 합격했다. 정갑손은 아들을 이렇게 잘 가르쳤다.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배웠다.

조선 중기, 김좌명(金佐明·1616~1671)이 호조판서가 되었을 때였다. 호조판서는 오늘날의 재무부 장관이다. ‘나라의 돈’을 주무르는 막강한 직책이었다.

김좌명은 데리고 있던 하인 최술(崔戌)을 서리로 임명했다. 홀어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한 최술은 사리가 밝고 글도 제법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서리로 임명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최술의 어머니가 김좌명을 찾아와서 아들을 해임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니며 졸라댈 정도로 짭짤한 자리인데도, 난데없이 해임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최술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녀석을 나름대로 사람답게 키워보려고 글도 가르쳤습니다. 그 글 쓰는 재주로 봉급을 타서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부잣집 사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술의 어머니는 하소연을 계속했다.

“하지만 사람이 변하고 말았습니다. 처갓집에서 반찬 투정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런 반찬으로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투덜거렸다는 겁니다. 호조는 재물을 관리하는 곳인데, 저따위 마음을 쓰다가는 큰 죄라도 짓고 말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최술의 어머니는 아들을 이렇게 키우고 있었다. 김좌명은 최술의 ‘보직’을 바꿔줬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런 부모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거꾸로다. ‘채용 비리’를 보면 그렇다.

‘신의 직장’인 공공기관에서는 △특정인 내정 후 채용 공고 △면접에서 점수 몰아주기 △직원 권고 사직시키고 새로 뽑기 △특정인 단독 면접 △불합격자 합격시키기 등등의 방법이 동원되고 있었다. 적발된 것만 4788건이나 되었다. 조금 더 찾아냈다면 5000건이었다.

어떤 은행에서는 인사 담당 임원이 자녀의 면접에 면접위원으로 참석, 고득점으로 합격시킨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또 어떤 은행에서는 사외이사나 임원 등의 자녀와 지인 명단을 별도로 관리하면서 서류 전형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불합격자의 점수를 ‘왕창’ 올려서 합격시킨 사례도 적발되고 있었다. ' VIP 리스트'라는 것도 만들고 있었다.

대학교수들은 자신의 자녀를 논문의 ‘공저자(共著者)’로 올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미성년자인 자녀가 많았다고 한다. 적발된 대학이 29개였다.

‘헬조선’ 푸념이 나오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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