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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떡국'
'돈 떡국'
  • 이정선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승인 2018.02.1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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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의 까칠토크]

한나라는 무제(武帝) 때 나라가 강성했다. 백성은 풍족했고 나라에는 재물이 남아돌았다. 국고에는 날마다 돈이 쌓였다. 돈이 너무 쌓이다보니, 엽전을 묶는 끈이 삭아버릴 정도였다. 그 바람에 그 금액을 헤아릴 수도 없었다.

나라의 곡식 창고인 태창(太倉)에는 곡식이 넘쳤다. 묵은 곡식 위에 새 곡식이 쌓였다. 그 곡식 위에 또 곡식이 쌓였다. 창고가 부족해서 바깥에 쌓아두어야 했다. 나중에는 곡식이 썩는 바람에 먹을 수 없어서 버릴 지경이 되었다.

나라가 강성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초나라의 항우(項羽)를 꺾고 천하를 평정한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경제에 ‘올인’을 했다. 장사꾼의 폭리를 억제한 반면, 농민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는 등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고조를 이은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도 그 정책을 따랐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처럼 정권이 바뀌면 정책까지 달라지는 현상은 없었다. 정책의 일관성이 있었다. 한 가지 정책을 지속한 결과, 한나라는 무제 때에 이르러 ‘돈을 묶는 끈이 삭아버릴 정도’로 부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흉노와의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즐거워야 할 날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별로 즐겁지 못하다. 돈 구경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돈이 많이 풀렸다는데도 그렇다. 지난주 중소벤처기업부는 27조6천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소상공인 설 자금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설 연휴 금융 분야 민생지원 방안’으로 12조5000억 원의 긴급자금을 방출한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설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이 있는 기업이 71.4%로 작년의 68.4%보다 늘어났다고도 밝혔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협력기업에 납품대금이나 공사대금을 ‘앞당겨서’ 지급하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족명절’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소식이다. 돈이 ‘엄청’ 풀릴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그 규모는 ‘수십조’다. 그런데도 서민들의 주머니는 여전히 허전할 뿐이다.

주머니 홀쭉한 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사항’뿐이다. 설날이 되면 떡을 돈처럼 동그랗게 썰어 넣은 ‘돈 떡국’을 먹으면서 돈 묶는 끈이 삭을 정도로 재물이 풍성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조선 정조 임금 때 유득공(柳得恭)이 쓴 ‘경도잡지’에 떡국 만드는 법이 나온다.

“멥쌀로 떡을 만드는데, 떡메로 치고 손으로 비벼서 한 가닥으로 만든다. 그리고 굳어지면 돈처럼 얇게 가로로 썬다. 이것에 물을 붓고 끓이다가 꿩고기, 후춧가루 등을 넣는다.…”

만둣국도 다르지 않았다. 양쪽 귀를 오므려서 동그랗게 빚은 만두를 떡국에 넣어서 먹었다. 그 모양이 옛날 화폐인 말굽은(마제은·馬蹄銀)과 닮은꼴이었다. 만둣국 역시 돈과 재물을 기원하는 음식이었다.

새해 덕담(德談)도 돈과 무관하지 않았다. ‘동국세시기’에 적혀 있는 글이다.

“친구나 젊은 사람을 만나면 올해는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아들 낳으시오, 재물 많이 모으시오 하는 등으로 처지와 환경에 맞는 말을 해준다. 이를 덕담이라고 하는데, 서로 복을 빌고 축의(祝意)를 표시하는 말이다.…”

음력으로 새해인 설날부터가 ‘진짜’ 무술년(戊戌年)이다. 서민들은 올해 설날에도 ‘돈 떡국’, ‘돈 만둣국’이다.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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