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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미래 칼럼] 한반도 통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청년과미래 칼럼] 한반도 통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 청년과미래
  • 승인 2018.03.13 14:22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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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찬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 (사진=청년과미래)
문예찬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 (사진=청년과미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가 시작된 듯 하다. 북한은 평창에 특사단을 보냈으며 대한민국은 김정은과 대면했다. ‘만족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한반도 긴장은 어느정도 완화됐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11년 만에 궤도에 올랐고 전쟁 위기설이 돌았던 한반도는 어느새 평화와 화합의 장이 되었다.


통일에 대한 기대감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이기에 사람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통일은 남남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광장에서 통일은 이미 ‘가장 예민한 어젠다’가 되었다.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다수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일은 역사적 고통을 치유해주는 매개체이다. 통일은 단순히 통일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한반도 전체의 역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던져 얻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독립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바란 독립은 한반도 전체의 자주 독립이었고, 반쪽짜리 한반도가 아닌 하나 된 한반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운동은 통일운동’인 것이고 두 운동은 역사 속 한반도와 긴밀한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다. 두 운동 모두, 하나 된 한반도가 궁극적인 목표이며 분단된 나라에 대한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즉,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통일운동이 존재하고 있고 100년 전 선조들이 목숨을 바치며 이어온 독립운동은 현재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통일에 특별한 함의를 두고 있다.
 

선조들의 독립운동 이면에는 통일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이 숨겨져 있었다. 하나 된 국가, 완전한 합일이 그들이 바란 진정한 빛 이었고, 애석하게도 그들은 그 영롱한 빛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은 ‘그 꺼진 빛을 다시 되찾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육사의 [광야]’에 나오는 백마 탄 초인처럼 말이다. 이렇듯, 통일은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진 문제이다. 통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역사 속 찬란했던 한반도는 영원히 분단된 채 지속될 것이고 선조들의 독립운동은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선조들의 독립운동의 끝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함께 힘을 합쳐 통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100년 전 선조들은, 그들의 국가를 되찾고 싶어서, 완전한 자주를 느끼고 싶어서 뜨거운 독립운동을 펼쳤다. 오로지 ‘그들이 원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던졌고 일생을 바쳤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통일을 외면하고 하나 된 한반도의 꿈을 무시하고 있다. 과거 선조들이 그토록 바랐던 희망을 조금씩 짓밟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통일이 진정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통일이 진정 우리와 상관없는 일인가? 통일은 100년 전부터 이러온 독립운동의 연장선이며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와 연결되는 문제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치욕의 역사를 말끔히 치료해 줄 것이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로서 새로운 통일한국의 길을 완성할 것이다.  kyb@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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