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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칼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로봇 사회주의를 생각한다
[김형근 칼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로봇 사회주의를 생각한다
  •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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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인류 역사상 카를 마르크스(1818~1883)만큼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인물은 없었다. 그는 20세기 내내 한편에서는 두려움과 비난의 표적이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선망과 찬사의 대상이었다. 정도는 약할지 모르지만 21세기의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그래서 올해 그의 탄생 200주년은 그렇게 달가운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지구촌의 엄청난 분쟁의 도화선이 되어 세계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편으로 갈라 극심한 이념의 대립을 가져왔다.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극단적이다. 요즘 더욱 심화된 이념적 욕설인 ‘종북 진보’와 ‘꼴통 보수’에 단초를 제공한 것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원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다시 사회주의로 변모한다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맞아떨어져가고 있을까? 자본가 계급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과 궐기에 의해 사회주의가 수립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어느 정도 탄력을 받으면서 적중해 가고있는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하나는 있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자본주의가 상당한 궤도로 수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계급에 의한 것은 아닐지라도 민의(民意)와 여론에 근거를 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회주의를 향한 변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복지와 웰빙은 인간의 원초적이고 거대한 희망의 이름이다.

용어에 대한 정의를 두고 무엇이 자본주의이고 사회주의인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한 국가의 어느 정도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을 두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의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가 현대 산업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밝혀놓은 논평인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들먹이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미래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기술 혁명에 의해 정보와 지식의 생산이 중요하게 되는 탈산업사회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미래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없어지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과학과 기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급작스럽게 다가온 첨단 로봇과 인공지능이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시스템에 어떤 변혁을 가져올 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과연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경제를 주도하게 될 때 사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렇게 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와 삶의 질은 어떻게 바뀔까?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과학기술이 가져다 준 혜택을 모두 공평하게 공유할 수 있을까? 줄어든 노동을 분배하고 부를 서로 나눌 수 있을까? 우리 시대에 사회주의 유토피아, 다시 말해서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넘쳐나는 풍요 속에서 발전해 나가는 조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경제 위기는 갈수록 극심해지고 계급투쟁이 더욱 격해지는 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로 변할까?

낙관적인 생각에 방점을 찍는다면 첨단 로봇과 인공지능은 새로운 사회주의 이상향을 제공할 수 있다. 엄청난 노동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이 대폭 향상되는 그 혜택을 나눌 수 있다면 로봇은 우리에게 새로운 웰빙을 예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이 아니라 첨단 로봇 혁명이 실현시키는 셈이 된다.

2017년 7월 미국 유력 경영 전문 월간지인 <치프 익스큐티브(Chief Executive)>가 ‘올해의 CEO’로 선정한 미국의 대형 의료 유통업체인 헨리 샤인(Henry Scheine)의 대표이사인 스탄 버그만(Stan M. Bergman)은 수락연설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사람들을 뒤에 남기고 가지 말라(Don’t Leave People Behind)” 낙오자 없이 모두가 제4차 산업혁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마르크스의 예언은 맞아떨어질 수 있다. 로봇이 노예 노동자를 의미하니 더욱 그렇다. 좀 억지이지만 말이다. hgkim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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