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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미래 칼럼] 시를 잊은 그대에게, 인문학과 이공학의 능동적 이접(異接)시대
[청년과미래 칼럼] 시를 잊은 그대에게, 인문학과 이공학의 능동적 이접(異接)시대
  • 청년과미래
  • 승인 2018.04.13 16:48
  •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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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류빈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사진=청년과미래)
최류빈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사진=청년과미래)

중국의 우주정거장 ‘톈궁 1호’가 지구 표면 위에서 아스러진다는 소식이다. 같은 시간, 지구 저편의 이름 모를 아이가 이를 유성으로 오인해 손끝모아 기도 피워낸다. 형태도 색체도 다르지만 각자가 최선의 生을 걸머지고자 했던 아이러니, 

아이의 기도로 표상해본 ‘인문학’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기술의 진일보 앞에서, 언제까지고 이공학과 분리된 계로 살 수 없다. 그 아름다운 예술과 철학도 공학을 촉매처럼 활용하지 않는다면 미래사회 속에선 관념어로 부서질 수 있다는 이미 파다한 소문, 마찬가지로 취업 딜레마 속 대두된 인문학 천시는 ‘공학’의 비인간화와 기술 발전의 방향성 소실을 맞닥뜨리게 할 것이다. 이는 마치 구체어만을 선별하여 기계적으로 써내려갔지만 시대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결코 인용되지 않는 논문을 떠올리게 한다. 때마침 들어간 인터넷 서점에 시집이 베스트셀러 궤도에 안착함과 동시, 칼 세이건의 우주과학 서적이 스테디셀러 명찰을 달고 있다. 둘은 한없이 멀고도 가까운 기묘한 이접(異接)의 관계인 듯하다.

이른바 창의‧융합의 통섭시대가 왔다. 기술은 감성을 더하고 감성은 이성을 흡인하는 혼성적 집단지성의 시간,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섞여가고 있다. 문 이과 통합이 언급되고 공대생들이 인문학 스터디를 진행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 간다 더불어 인문학도를 위한 IT공학, 코딩 수업 같은 건 더 이상 기삿거리도 아니게 된다. 마치 시를 잊은 누군가에게 다시 펜촉을 갈 때가 왔음을, 산업혁명의 파고를 멀찍이 바라보던 누군가에게 입수의 시간이 되었음을 한 시절이 온 몸으로 알린다. 

이러한 ‘낯선 연결’이 전문성이 유리되고 학문의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일각의 비판도 존재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학제적 사유가 한 우물만 파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듯하다. 집중적인 시추법에 익숙해진 우리는 언제나 효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며 학문적 결합과 광범위한 사고가 더 큰 시너지를 통한 효율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 결국 융합사고가 효율에서도 뒤쳐지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대학에서 어떤 강의든 수강하다 보면 해당 학문의 범주 바깥을 드문 왕래하는 모습을 우린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학문이 처음부터 고립계를 지향하지 않았으며 서로를 차폐시키는 것은 그간 문 이과 입시제도를 천착하던 우리 스스로였을 뿐이라는 방증이 된다. 

이제는 고정관념을 탈피할 때다. 이곳에서 터져 나오는 유전과 저곳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모두 필요할 수 있다는 발상의 찬란한 전환, 물에서 유래 가능한 수소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석유 자동차가 툴툴댄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빨강색과 흰색을 한데 섞어 이채로운 핑크색을 찾아냈듯이, 미지로 점철되는 미래사회를 ‘단일색상’이 아닌 ‘혼합색’으로 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kyb@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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