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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한정선 "늑대를 보고 느낀 쾌감을 그림으로"
화가 한정선 "늑대를 보고 느낀 쾌감을 그림으로"
  • 이선경 기자
  • 승인 2018.05.13 05:39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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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 화가가 지난 4일 그림과 예술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선경 기자)
화가 한정선 작가가 그림과 예술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선경 기자)

[아시아타임즈=이선경 기자] 지난 달 12일 '야생의 사고-두 번째 이야기' 전시를 마친 해림 한정선은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일들과 교사를 하며 느낀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하고 있는 화가다. 

한 작가는 자본주의라는 정글 속에서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는, 지속적으로 마모되고 피로하고 무기력한 인간군상을 그리고 있다. 길들여진 인간 군상은 늑대의 차가운 시선 속에 우화적 표현 방식으로 그려졌다.

한 작가를 만나 최근 전시된 작품들과 예술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가족이 그림자처럼 바탕에 깔려 있다. 소설가 한승원은 그녀의 오빠이고 멘부커상 수상자 한강은 그녀의 조카다. 그리고 이들을 잉태해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 아버지가가 그녀의 삶에 해묵은 흑백사진처럼 자리잡고 있다. 

많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키운 아빠같은 오빠 한승원 소설가에 대해 얘기하는 얼굴이 어둡다가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밝아지기 시작했다.

"노예처럼, 가축처럼 살았던 어머니, 아버지의 밑섬돌처럼 살아오신 여인의 삶. 저는 어머니를 아주 사랑했지만 어머니처럼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작가는 그리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진 못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여러 형제들의 눈치를 보며 자랐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가축이나 노예처럼 부렸고 한 작가는 그런 어머니를 사랑했다. 

한 작가의 아버지는 재산을 아들에게 나눠주며 어린 동생들을 맡으라고 했다. 책임을 진 사람은 한승원 소설가 뿐이었다. 한승원 소설가는 앞섶에 한 작가를 캥거루처럼 품고 기른 아빠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11살부터는 본격적으로 본가를 떠나 한승원 소설가와 함께 지냈다.

한 작가는 "저희 엄마에게 한승원은 아들이자 헤라클레스같은 존재였다"며 "저한테도 아버지면서 정신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어릴 땐 오빠인 한승원 작가의 엄격함이 무서웠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법, 날카로운 사고의 방법을 알게됐다고 말한다.

중학생 때에는 선생님의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말에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미술부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학교에서 상도 여러번 탔다고 한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바로 미술교사로 발령을 받아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2년 정도 교사 생활을 했다. 

교사 생활 중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던 큰 사건이 있었다"는 한 화가는 마음의 병을 얻어 한승원의 집에서 28살까지 요양을 오래 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발목이랑 목에 힘이 안 들어가는 이상한 정신병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림을 안그렸다면 정신병원에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 시절 복수와 보복감에 앓고 있을 때 우연히 양들을 물어죽이는 늑대를 보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늑대가 먹으려는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사냥개, 양들을 물어 뜯는 모습에서 후련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후련함에서 다른 방향으로 사고하는 걸음마가 시작됐어요" 

12-깊은 숲_(deep forest), 27X41cm, 아크릴. 캔버스, 2017 (그림=한정선)

섬이라 불도 잘 안들어오는 환경에서 한승원은 종이와 물감을 사와 한 화가를 도왔다. 그림을 그리며 다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의 두 번 째 전시는 늑대로 가득 찼다. 100평정도되는 전시관 1층이 늑대들의 일상을 그린 그림으로 가득찼다. 늑대의 생태부터, 인간의 근원적 모습이 담겼다.

한 작가는 "제가 실제로 늑대로 생활은 안해봤잖아요. 그래서 비디오로 많이 관찰했어요. 동물원의 늑대는 매우 신경질적으로 보였어요.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더라고요. 뭔가 그 안에서 미쳐버리겠는, "죽겠어"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이빨자국이랑 핏자국으로 범벅돼있더라고요. 우리 삶도 현실적으로 동물들 같지 않나? 이 세상에 갇힌 것이 아닌가? 한거죠"라고 설명했다.

그녀에게 숲은 현실세계고 그 안의 사람들은 숲에서 우울함을 감추고 사는 늑대같은 존재다. 우리 삶이 마치 감옥에 있는 것과 같다며 "어쩌면 우리는 죄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동굴의 우화는 우리 세상과 닮았다. 사람들은 동굴에 비친 그림자만 본다. 그 동굴을 나오는 순간 동굴은 무너진다. 한 작가는 "제 삶은 고통이 길었던 만큼 동굴 속에서 탐험을 제대로 겪었지만 나쁜게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과정 없이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겠죠"라고 설명했다. 

아픔의 시간은 사유를 전복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처럼 공적 영역으로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림을 다시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한 작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작품에 의미를 담았다. "지금은 돈이 권력을 갖고 있는 구조예요. 지식도 권력과 공모하고 속이고 있어서 우리들이 당하하고 있죠. 자본주의가 하나의 시스템이 되니까 다들 노예가 되고 의심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세계 역사를 보면 바뀌지 않았어요. 옛날 노예의 상태에서 껍질만 바뀐거죠. 속의 시스템은 같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2019년 가을에 네 번째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전시회 같은 행사가 어렵고 힘들지만 그림을 그릴때는 평화롭다고 한다. 한 작가에게 그림은 그 자체가 치유다. 그녀는 앞으로도 늑대와 자본주의에 찌든 현대인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sklee0000@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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