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08-20 11:43 (월)
[사설] 해외투기자본 놀이터 막으려면 ‘엘리엇 법’ 필요하다
[사설] 해외투기자본 놀이터 막으려면 ‘엘리엇 법’ 필요하다
  • 아시아타임즈
  • 승인 2018.05.20 11:15
  • 1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계 급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압박하면서 국내기업 공략에서 첫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지난 2015년 6월 삼성물산 때와 달리 국내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속속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고, 최후 방어선으로 여겼던 국민연금마저 돌아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다가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 등이 줄줄이 구속됐던 ‘악몽’을 되풀이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며 의결권행사를 외부전문가들에 위탁해 놓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주요 그룹들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경우, 이를 발판삼아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이 향후 한국기업들에 대한 추가적인 공략에 나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등의결권 제도, 포이즌 필 등 선진 자본시장에서 앞 다퉈 도입 중인 기업경영권 방어 장치를 국내에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기업의 경영권 방어는 궁극적으로 현 정부의 최대 과제인 ‘일자리 증대’ 측면에서도 중요한 만큼 이를 보장할 제도를 하루빨리 완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는 특정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해 경영권을 방어케 하는 제도다. ‘1주 1의결권’ 원칙에서 벗어나 주로 창업자나 최대주주 등의 지분에 일반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장치다. 국내에 없는 ‘포이즌 필(Poison pill)’ 역시 선진 자본시장에선 활성화된 경영권 방어 장치다. ‘포이즌 필’로 불리는 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으면 신주를 발행할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주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상 국내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 같은 경영권 위협시도가 발생했을 때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 효용성이 떨어진다. 주주총회 소집을 통해 자산매각이나 재무구조 개편을 하거나, ‘자기주식 취득’ ‘황금낙하산’ 같은 방어 장치를 활용할 수 있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재무구조가 악화될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기업이 자사주를 늘려 지배력을 스스로 강화하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으로 꼽힌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영권 방어 장치로 인해 해외투기자본들이 국내기업을 공격해 거액의 차익만 챙기고 ‘먹튀’ 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대국회 개원 이후 올해 3월 말까지 발의된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 20건 가운데 경영권 제한을 담은 안은 18건인 반면 경영권 보호에 초점을 둔 안은 단 2건에 불과하다. 이 개정안조차 ‘오너 일가에 대한 특혜’라는 반(反)기업 정서와 정치권의 반대 속에 수년째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기업지배구조 개편, 주주권 강화 등의 경제민주화 법안과 맞물려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까닭에 엘리엇의 행동이 한국 내 재벌에 대한 비판과 반재벌 정서의 틈을 명확히 짚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계와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엘리엇 방지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회에서도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려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국내실정에 맞게 방어 장치를 유연하게 도입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안정화된 경영권 아래에서 더욱 활발해 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란 미명아래 이를 소홀히 한다면 국내 자본시장이 엘리엇과 같은 약탈적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엘리엇이 현대차를 지배하게 된다면, 노조를 없애고 공장을 한국 밖으로 옮길 것”이라고 경고한 엘리엇을 11년간 추적해온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그레그 팰러스트의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asiatime@asiatime.co.kr

섹션별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