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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공유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유연미 칼럼] 공유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8.08.06 09:42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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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더운데 어떻게 지내? 차 갖고 다녀?”
“아니,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요즘 같은 날 나 같은 사람까지 차 갖고 나가면 어찌하누…”
“아이구, 이 날씨에 어떻게 차를 안 갖고 다녀. 내가 울 친정엄마한테 너의 생각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면, 아마 “너 하나 실천한다고 세상 달라지지 않는다”하시며 한 말씀 하셨겠지, 이미 사람들이 오염시키고 있다고 그러시면서”

이는 엊그제 초등학교 친구와 주고받은 전화 내용의 일부. 친구는 지난 과거 자신의 어머님과 있었던 일면을 소개한다. ‘공유 자원’인 자연환경을 위해 좀 불편하게 살자는 필자의 생각에 덧대서다. 공유 자원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친구 어머님의 말씀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어머님의 생각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릇 되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유는 그 말씀이 우리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 세상의 공유 자원, 나 한 사람의 절약으로 단시일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내가 절약한 것이 훗날 나의 몫으로 남아 있지도 않는다. 절대 아니다. 어차피 공유 자원은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파괴 될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공유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다. 좀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내가 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파괴 할 것이라 생각하고 나 자신도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자위. 그러니 사용하는 우리는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아니 당당하기조차 하다. 이는 ‘합리적이지만 잘못된 나쁜 행위(rational bad behavior)’에서 초래된다. ‘나겐 좋지만 너,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해로운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이러한 행위는 결국 자신을 위해 사용한 사람들을 포함, 모든 사람들에게 나쁜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일종의 부메랑이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의 고리’다.

이렇게 세상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마치 ‘죄수의 딜레마’처럼 말이다. 그 고리에 지금 지구촌은 폭염, 산불, 그리고 홍수로 신음하고 있다. 예견된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랴! 모두 다 우리가 뿌린 씨앗, 단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왔을 뿐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앞으로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마이클 만 교수가 날린 일침,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폭염, 산불, 홍수’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민낯’이라고 주장한다. 맞다.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기후변화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의 생각이기에 울림이 크다.

공유의 비극. ‘재앙적 가치관’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비극이요, 곧 미래의 비극이다.그렇다. 함께 죽자는 자살테러다. 이젠 서로를 위한 상생의 길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믿어보자. 적어도 다른 사람들도 좋은 자연환경을 위해 공유 자원을 아껴 사용한다고 말이다.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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