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0-19 01:30 (금)
[나하나 칼럼] 후기 인상주의
[나하나 칼럼] 후기 인상주의
  •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 승인 2018.09.19 08:48
  • 1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공통점이 없는 것이 공통점이 된 미술사조"

화가가 각자의 개성 있는 화풍을 추구했던 <후기 인상주의>를 정리한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조르주 쇠라, 폴 세잔, 조르주 로트랙 등'

이들은 인상주의에 대한 불만으로 ‘후기 인상주의’ 라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 시킨 화가들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을 화폭에 담기 위해, 순간의 느낌을 빠른 포착해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구도나 형태, 색채에서 부족함이 나타남은 당연했다. 바로 이 같은 점을 비판하며 나타난 화가들이 바로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다.

후기 인상파 화가들은 앞서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르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색채를 연구하고 이를 화폭에 담았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이다.

조르주 쇠라의 그림은 너무 독특하고 개성이 있어서 누구라도 한 눈에 알아볼 정도다. 이는 바로 점묘법으로 채색을 했기 때문인데, 점묘법은 노랑과 빨강의 점을 화면 전체에 찍어 채색을 하는 방법으로 멀리서 봤을 때, 주황색으로 보이는 과학적인 이론을 도입해 완성한 작품이다.

반 고흐 역시 객관적인 인상을 표현한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회오리 물결이 치는 듯한 느낌의 채색으로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였다.

조르주 로트랙의 작품은 현대판 포스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간결한 색채 표현으로 현대적인 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훗날 현대미술에서 포스터로 발전한다.


사실 후기 인상주의에서 가장 눈여겨 볼 화가는 폴 세잔이다.

그는 평생을 그림에 대한 연구를 하다 생을 마무리한 작가다. 그는 당시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림 연구를 했으며 소신이 확실한 화가였다.

그는 생 빅투아르 산을 무려 서른 번 이상을 그렸으며, 백여 번 이상을 갔다고 한다.

세잔은 완벽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으며, 대상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며칠이고 대상을 관찰했고 하물며 사과가 다 썩은 적도 있다고 하니 그림에 대한 그의 소신이 어떠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이 같은 세잔의 집요한 시도들은 결국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큐비즘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은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판매 하였으며, 지독한 가난 속에서 결국 자살로 생을 마무리 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 또, 고갱 역시 가난하고 외로운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무리 하는 등 힘든 삶을 산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야 말로, 화가 개개인이 개성 있는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 냈으며, 그 안에 주관적 감정과 자기 자신의 내면표현을 캔버스에 담았다는 점에서 현대미술로 가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annaone@naver.com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