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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밤을 줍는 사람들
[유연미 칼럼] 밤을 줍는 사람들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8.10.08 09:29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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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논설위원
유연미 논설위원

“10월 초면 밤이 아람 드는 절정이라고 친정아버지께서 말씀 하셨는데, 이제 그 밤의 철이 왔네”

친구의 말이다. 정말 밤 줍는 시기가 왔다. 산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많은 사람들의 배낭에는 산밤이 그득하다. 밤을 줍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번뜩 권력을 좇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밤이 아람 드는 시기는 다소 차이가 있다. 태양이 비추는 위치에 따라서다. 같은 산이라 해도 어느 밤나무는 2주정도 빠르게 온다. 그 나무는 위풍당당하다. 밤을 줍는 사람들은 반색하며 그곳으로 달려든다. 하지만 그들은 밤이 다 떨어지면 다른 나무로 옮겨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 후 그 나무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하다. 땅에 떨어진 빈 송이들, 색이 누렇게 변질되어 입을 벌린 채 허공을 향하고 있다. 그것만이 빈 나무를 지키고 있다. 물론 그들은 그 나무의 밤이 다 소진되기도 전에 이 나무 저 나무에 기웃거린다. 아람 드는 다른 나무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발견하면, 즉시 그 나무 주변에서 맴돈다.


나무의 선호도도 밤의 굵기에 따라 다르다. 크고 실한 밤이 달려 있는 나무를 가장 좋아한다. 밤송이가 떨어질 때 사람들의 반응, 확연히 다르다. 밤이 들어 있는 경우는 둔탁한 소리로 강하다. 빈 송이는 말 그대로 가벼운 소리다. 강한 소리를 내는 밤송이로 향한 사람들의 모습, 정말 빠르고 역동적이다. 눈동자도 빛이 난다. 하나 아무리 큰 송이라 해도 빈 송이가 떨어질 때의 반응은 무관심 그 자체다.

밤을 줍는 초보와 고수, 물론 그들간에는 큰 차가 있다. 초보들은 어느 나무의 밤알이 큰지를 잘 알지 못한다. 떨어진 밤을 줍기 전에는 말이다. 그들은 밤알의 크기에는 상관하지 않는다. 무조건 밤나무로 모인다. 그저 줍는데 의미가 있다. 여럿이 다닌다. 누군가가 먼저 훑어 본 곳도 기웃거린다. 마음이 조급하다. 떨어진 밤에 만족하지 못한 그들, 큰 돌로 밤나무를 내리친다. 나무에 달린 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고수들은 다르다. 그들은 나무만 보아도 밤알의 크기를 대번 알아본다. 알이 굵고 실한 나무 만을 영걸스럽게 골라 간다. 혼자 다닌다. 누군가가 다녀간 곳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무리 급해도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람이 되어 떨어질 때, 그것을 독수리처럼 거머쥔다. 알이 잘은 밤은 초보들에게 나눠준다. 이 두 부류의 공통분모는 항시 밤나무로 향해 있다는 것.

밤나무를 일종의 권력으로 본 그림이다. 밤을 줍는 사람들과 권력을 좇는 사람들, 그들의 양상은 너무도 유사하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다. 항시 권력을 쥔 자에게로 향해 있는 사람들, 그 권력자의 힘이 소진되었다 싶으면 바로 다른 권력자에게로 옮겨간다. 밤을 줍는 사람들이 밤나무를 옮겨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미련도 없다. 일종의 ‘토사구팽’이다. 권력에 대한 갈망? 옹골진 알밤이 떨어질 때 향하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에서 엿 볼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큰 권력을 지닌 권력자 일수록 좋다. 그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맴도는 이유다. 밤알이 큰 나무로 모여드는 상황처럼 말이다. 하나 권력의 끈이 떨어진 권력자의 모습, 너무도 초라하다. 그가 지녔던 권력의 강도와 상관 없다. 이는 누렇게 변한 빈 송이와 맥없는 나뭇잎에 둘러싸인 밤나무와 같다. 그렇다. 권세의 뒤안길은 허망함과 쓸쓸함의 잔상이 단골이다.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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