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2-11 23:30 (화)
[박종석 칼럼] 한국의 '환경운동'은 애니미즘인가
[박종석 칼럼] 한국의 '환경운동'은 애니미즘인가
  • 정상명 기자
  • 승인 2018.10.12 15:09
  • 11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종석 번역가
박종석 번역가

2018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는 매우 독특한 선거였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치러진 대선의 여파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분열된 보수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그리고 진보진영의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분전을 벌이는 선거였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소셜 미디어가 점점 선거에서 활성화되는 국면에서 여러 군소 정당들의 특이한 후보들과 관련된 면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례가 '녹색당'이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을 후보로 공천하며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건 것이다. 전통적으로 원자력 발전과 댐 건설 등에 반대하던 근본주의 진보 정당이었던 녹색당이 여성 문제를 본격적인 정책 의제로 포함시킨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아주 '묘한' 일이 일어났다. 제주도지사 후보로 고은영을 공천하며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던 녹색당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고은영은 "동부 오름 군락을 헤매며 속도계가 고장 난 저를 다스릴 때 만난 설문대할망의 영성은 그 자체로 삶의 나침반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설문대할망은 육지에서 마고할미라고도 불리우는 유명한 지모신(地母神)이다. 일본에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에 비견되는 여신이기도 하다. 

녹색당원들은 고은영이 설문대할망의 현신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지역사회의 환경 의제들을 선거 전략에 포함시키는데 애썼다. 일종의 '환경 애니미즘(정령숭배)'이다.

고은영은 제주의 개발세력과 정치세력 간의 '절연'을 주장했다. 그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해체론을 언급하며 그 이유로 "제주 난개발의 주역이자 공익적 성격의 1차 산업을 상업적으로 변질시킨 마피아"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는 "이제 제주에서는 청년이 빚을 내 가면서 살아야 한다"며 "설문대할망께서 땅을 치며 통곡하실 일"이라고 재차 지모신을 공론장에 끌어들였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이다. 정당 후보가 그 조직의 해체를 주장하며 토속 신앙의 여신(女神)을 상징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은 환경 애니미즘의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애니미즘은 분명 힘을 갖고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시인 김소월(金素月)이 1922년 개벽에 발표한 '엄마야 누나야'는 1920년대 말 '카프 문학'(사회주의 좌파 문학)이 유행하던 시기 한국적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김소월은 일제의 문화 통치가 깊게 뿌리내린 20년대의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했던 지식인들을 자연으로 회귀시키고자 했던 것 아닐까 싶다. 

강변은 매우 흔한 자연 공간이지만 그 시절 엄마와 누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강변은 한반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김소월은 강변이라는 공간에 태초의 생명력과 따뜻함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종류의 문학적 상상력과 의인화는 매우 가벼운 수준의 애니미즘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이 지니고 있는 심리적 위로의 기능에 대한 믿음인 셈이다.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마음 한 구석에 애니미즘적인 믿음이 조금씩 자리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애니미즘이 종교가 될 때  

그러나 애니미즘은 꼭 긍정적 기능만을 하지 않는다. 앞서 고은영의 사례에서처럼 애니미즘은 환경 정치와 만날 때 매우 강력한 종교적 신념이 될 수 있다. 비슷한 예가 '제주 구럼비 바위 폭파 반대 운동'이다.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었던 환경 운동가들은 항구 개발을 염려하는 지역 주민들과 연합해 "구럼비 바위를 살려주세요"라는 캠페인을 만들어 냈다. 바위를 의인화해 '살려달라'는 주장은 마치 생명 파괴의 연장선상으로 읽히면서 전국을 요동치는 이슈로 변화시켰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창설에 찬성했던 한명숙 전 총리는 민주통합당 대표가 되자 마자 구럼비 살리기 캠페인에 가담했다(물론 한 총리의 태세 전환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제주 환경운동가들도 있었다).

구럼비바위를 생물화하는 시도 또한 일종의 애니미즘이라고 볼 수 있다. 몇몇 운동가들은 구럼비바위가 독특한 가치를 갖고 있어 무조건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주도의 다른 해안들을 살펴 보면 구럼비 바위 지대는 제주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현무암 지형 중 하나에 불과했다. 게다가 강정마을 일대의 동물 생태가 다른 제주도 지역들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한 맥락이다.

구럼비바위 살리기 운동은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천성산 철도 터널 반대 운동에서 도룡뇽 등이 활용되었던 수준에서 훨씬 퇴행된 것이다. 생태주의 운동이 지모신 사상이나 자연 정령 숭배 쯤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2003년 당시 '천성산 터널 반대 운동'을 되짚어 보자. 이 운동을 주도한 승려 지율(세속명 조경숙)은 부산권의 환경운동단체들과 연합해 '꼬리치레도룡뇽'이라는 희귀종을 원고로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동물이 원고 자격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을 수 차례 기각했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인간계의 재판 원고로 끌어들인 사태는 대한민국 법조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는 또 다른 형태의 극단 환경 운동 사조가 숨어 있다. 인간 존재를 다른 생명체들과 동일한 수준에서 평가하려는 생태근본주의다. 생태주의자들 중 가장 강경한 사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간의 자연 개발이 산신이나 용왕을 노하게 하면, 불행이 닥칠 수 있다"

이 메시지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오늘날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자연적 권위는 꿈이나 터부(taboo)와 같은 인간의 잠재 의식들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존재들이다. 지율스님의 천성산 터널 반대 운동은 한국 환경운동계가 닥치는 대로 끌어다 쓰던 자연 정령 숭배 사고방식의 총집합이었다. 산신을 대변하는 신체(神體)로서 도룡뇽을 설정하고, 법정의 원고로 세움으로써 환경 논쟁을 신비주의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한국의 환경 운동은 근대 부정 운동이다

초자연적 권위, 종교적 권위를 애써 빌려 가며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한국의 환경 운동은 마치 근대 부정 운동을 보는 듯 하다. 우리가 직면한 근대는 산업 문명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기에 그것을 갈아 엎어야만 진정한 유토피아가 찾아온다는 믿음이다. 한국의 환경운동계에서는 과거 민주화 시대의 경험과 맞물려 보수 세력을 타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도 근대 부정이 이용된다. 

독재 시절 모든 공론화 절차를 생략한 채 무작정 공장을 세웠던 정부를 비판하며 그 수혜자인 기업까지 싸잡아 욕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기업들은 자진 납세를 통해 환경단체와 타협하거나, 아니면 끝까지 욕을 먹으며 여론 재판을 견디느냐 선택해야만 한다.

근대 부정 운동은 또 다른 의미에서 반지성, 반전문가주의 운동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환경 파괴 이슈를 설명하는 산업문명의 지식인들은 정부나 기업에게 매수된 세력으로 욕을 먹는다. 

그들의 통계와 분석 자료는 전부 누군가에 의해 섭외된 결과물로 전락해 버리고, 환경운동가 자신들이 주도하는 공론화 과정과 자료 생산만이 옳다는 믿음이 확산된다. 누군가가 낭만적으로 이야기한 '초자연 정령숭배'의 비유가 어디에선가는 이성과 합리적 지식에 기반한 근거를 말살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참 무서운 일이다.  jsm7804@asiatime.co.kr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