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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퍼런 일제도 어쩌지 못한 '인삼축제'… '파주개성인삼축제'의 역사
서슬퍼런 일제도 어쩌지 못한 '인삼축제'… '파주개성인삼축제'의 역사
  • 김영선 이재현 기자
  • 승인 2018.10.17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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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김포에 위치한 김포파주인삼농협에서 판매하는 파주 개성인삼의 모습 (사진=이재현 기자)
지난 11일 김포에 위치한 김포파주인삼농협에서 판매하는 파주 개성인삼의 모습 (사진=이재현 기자)

[아시아타임즈=김영선 이재현 기자] 인삼은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약재다. 그래서 예전부터 중국과 일본과의 교역에서 인삼은 매우 중요한 상품이었고, 특히 개성에서 생산된 고려 인삼은 최상품으로 취급을 받아 중국 왕실에서도 간간히 인삼 교역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려 인삼은 14세기 무렵 재배되기 시작했다. 고려실록에 따르면 1122년 인종 때 자영생 인삼의 재배를 연구했다. 이후 1392년 개성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인삼 재배가 성행했고, 1551년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봉이 인삼 재배를 널리 퍼트리면서 인삼의 대량생산이 시작됐다.  

고려 인삼은 원래 개성에서 주로 생산됐다. 그러나 개성 상인들이 파주와 김포, 연천 등을 통해 인삼을 판매하면서 유통과정을 줄이기 위해 이들 지역에서도 직접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유통과 생산 인프라가 확장됐다. 

그렇다면 파주와 개성 인삼의 인연은 언제부터 일까. '파주 개성인삼의 우수성 규명에 관한 보고서'(2015)를 보면 파주는 고려시대 최대 무역항으로 예성강 하구 벽란도를 통해 중국과 아라비비아로 인삼 교역을 했던 장소다. 이후 개성 인삼의 생산지로 발돋음했고, 지금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6년근 인삼을 재배하는 곳으로 남았다. 

고려 인삼의 특징이 6년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한에서 유일하게 개성인삼을 재배하는 곳은 파주 뿐인 셈이다. 어째서 파주에서만 6년근 인삼의 재배가 가능한 것일까. 인삼은 상온보다는 서늘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편이다. 파주는 임진강과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아 최적인 인삼 재배장소라 할 수 있다. 특히 임진강 일대에 인삼이 자라기 좋은 사양토가 많아 질이 좋은 인삼이 많이 자란다. 

파주가 해마다 '파주개성인삼축제'를 열고 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가면서 인삼을 사가는 이유다. 

2017년에 진행된 '파주 개성인삼축제'의 모습(사진=파주시청)
2017년에 열린 '파주 개성인삼축제'의 모습(사진=파주시청)

평화와 역사 그리고 전통까지 모두 잡은 '파주개성인삼축제'

파주시는 오는 20일부터 21일까지 임진각광장과 평화누리 공원에서 '파주개성인삼축제'를 연다. 특히 올해에는 '통일인삼'이라는 주체로 북한 문화거리와 북한 음식 체혐장, 평화통일 부스가 마련된다. 최근 북한과의 화해무드가 무르익어가면서 올해 축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행사다. 

또한 줄타기, 씨름, 민속놀이 등 전통행사와 함게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인삼 인형만들기, 인삼 족용, 인삼 장어잡기, 인삼 캐기 등 체험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고르고 고른 질 좋은 개성인삼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 해마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 축제를 찾는다. 

파주시는 오는 20일부터 21일까지 임진각에서 '제14회 파주개성인삼축제'를 개최한다. 개성인삼의 오래된 역사에 비하면 '올해가 14회째라고?'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개성인삼으로 묶어서 보면 이 축제는 사실 일제시대에도 열렸던 매우 오래된 역사적인 행사다.

1941년 발행된 '개성인삼 개척소사'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시대에도 개성인삼축제는 열렸다. 당시 일본이 한글을 비롯한 조선의 문화를 모두 말살하기 위해 축제나 모임을 제재하거나 없애는데 혈안이었음에도 개성인삼축제를 개최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속사정은 일제강점기시절 자료를 보면 잘 나와 있다. 

개성인삼 개척소사에 기재된 인삼제포스터(좌측)와 일제강점기 시절 개성인삼판매경로의 모습. 개성인삼 개척소사에는 당시 개성에서 인삼과 관련된 일과 함께 농업상태와 유통상황이 기재되있다.(사진=개성인삼 개척소사/국립중앙도서관)
개성인삼 개척소사에 기재된 인삼제포스터(좌측)와 일제강점기 시절 개성인삼판매경로의 모습. 개성인삼 개척소사에는 당시 개성에서 인삼과 관련된 일과 함께 농업상태와 유통상황이 기재되있다.(사진=개성인삼 개척소사/국립중앙도서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개성의 상업 관습에 취업하야'를 보면 당시 개성상인들의 주요품목인 개성인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개성상인들의 주요 품목은 인삼으로 파주와 김포에서 교류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며 "개성의 주요 수입원인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개성인삼의 거래량을 늘려 세금도 늘리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개성인삼의 효능과 인기가 당시에도 대단해 개성인삼의 판매를 통해 개성 지역의 경제 안정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개성인삼축제의 개최도 용인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도 개성인삼축제는 매우 큰 인기를 끌었다. 

'개성인삼 개척소사'에 따르면 당시 열렸던 인삼제는 매우 성공적으로 개최됐으며, 일본과 조선의 주요 인사들도 참석해 인삼과 축제에 모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특히 이 축제를 통해 인삼의 거래량도 늘어났다는 기록도 보인다. 

높아지는 인기만큼이나 개성인삼과 관련된 범죄도 늘어났다. 당시 발행된 조선일보를 보면 개성을 중심으로 인삼 절도나 방화 등의 범죄가 증가했는데, 이는 늘어난 세율을 감당하지 못한 민초들이 개성 인삼을 훔쳤던 것으로 보인다. 

1943년 조선일보에 기재된 개성인삼 사고 기사, 기사의 내용은 당시 개성인삼을 1만원가량을 훔쳐가 도주하다가 잡혔다고 보도됐다.(사진=조선일보)
1943년 조선일보에 기재된 개성인삼 사고 기사, 기사의 내용은 당시 개성인삼을 1만원가량을 훔쳐가 도주하다가 잡혔다고 보도됐다.(사진=조선일보)

지금은 남북이 분단되면서 같은 뿌리인 개성에서 재배된 개성인삼과 파주에서 재배된 개성인삼이 분리되어 있다.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라진지 68년이 지난 지금은 종자나 재배환경에서의 차이 때문에 개성에서 재배된 개성인삼과 파주에서 생산된 개성인삼이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서 최근 남북 화해무드가 더욱 반갑다. 

파주시는 남북화해무드가 더욱 무르익어가면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개성에서 재배되는 개성인삼과의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 교류를 통해 개성과 파주의 인삼이 다시 만나면 효능이 더욱 좋은 품종의 개성인삼이 재배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재율 김포파주농협조합장(사진=이재현 기자)
지난 11일 인터뷰 중인 조재열 김포파주농협조합장(사진=이재현 기자)

인삼농협조합장이 말하는 '파주개성인삼'이 좋은 이유

파주 개성인삼은 개성인삼의 품질과 6년 근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째서 좋은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조재열 김포파주인삼농협조합장은 파주에서만 재배되는 6년근 인삼은 효능이나 맛에서 여타 인삼과 비교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Q. 파주 개성인삼이 6년 근이라 좋다고 했는데 4년 근과 구체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A. 6년 근에는 몸에 이로운 사포닌이나 타우린 등 주요 성분이 많습니다. 4년 근에 18가지가 있긴 하지만 반면에 6년 근은 35가지로 두 배 이상이고 체내 흡수율도 높은 편입니다. 또한 암을 예방하는 거로 알려진 다당체의 경우에는 6년 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이 파주 개성인삼의 장점이죠.

Q. 그럼 성분이 두배가량이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뭔가요?

A. 비배관리하는 방법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년 근의 경우에는 빠른 육성을 위해 거름을 쓰지만 6년 근은 2년에 걸쳐 비료를 뿌리며 천천히 기릅니다. 또한 육성하는 환경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요. 4년 근과 일보(인삼을 기르기 위해서 만드는 지붕이형태의 구조물)가 틀립니다. 또한 농산물 지역의 토양과 기후의 영향도 큽니다. 풍부한 사양토와 임진강과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파주 개성인삼의 향과 맛이 더 좋아집니다.

Q. 아무리 좋은 6년 근에도 더 좋은 게 있을텐데 혹시 더 좋은 인삼을 고르는 팁이 있을까요?

A. 인삼의 몸과 다리(뿌리)의 비율이 2:1로된 것이 좋습니다. 또한 다리의 굵기는 몸의 절반쯤 되야하고 뇌두가 건실한게 좋습니다. 또한 직선으로 8㎝정도 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런 크기와 모양은 4년근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습니다.

kiscezyr@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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