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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칼럼] 단풍, 수천만 년 곤충과의 투쟁에서 얻은 산물
[김형근 칼럼] 단풍, 수천만 년 곤충과의 투쟁에서 얻은 산물
  •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24 10:16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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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칼럼니스트

무더운 녹음의 계절 여름을 뒤로 가을이 깊어지면 붉어진 얼굴을 빠끔히 내미는 단풍. 아마 누님을 모란꽃에 비유한 시인 영랑(永郞) 김윤식은 다시 그리워 단풍으로 그리운 누님의 얼굴을 이렇게 묘사했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님은 놀란 듯이 치어다 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시인 김영랑-

단풍이 물드는 계절이다. 아마 우리나라만큼 화려한 단풍을 감상할 수 곳도 드물다. 구름 덮인 기암, 그리고 그 신비로운 풍광 속에서 펼쳐지는 가을 산의 주인공 단풍. 푸른 청춘 다 보내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불태우는 단풍을 저렇게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적이 있는지를 뒤돌아 보게 한다

우리나라의 단풍 맛은 역시 빨간 색이 제격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대륙의 지역마다 단풍 색이 다르다. 사계절이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불붙는 듯한 단풍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북미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을 단풍은 빨갛고 노란 색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역시 사계절이 있지만 유럽인에게 단풍은 노란색일 뿐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기원을 3천500만년 전 빙하기에서 찾았다. 식물들이 봄과 여름철에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데 사용되는 엽록소는 추위에 민감해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생성되지 않는다. 녹색이 사라지면 녹색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 불리는 노랑과 주황색 색소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붉은색의 출현은 약간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 식물이 죽어가면서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만들어낼 수 있는 색소이기 때문이다. 붉은색은 카로티노이드와는 달리 가을철에만 생성되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의 색깔이다.

지난 2009년 이스라엘과 핀란드 과학자들은 식물이 먹음직하게 보이는 노란색을 띨 경우 여기에 붉은색은 곤충의 접근을 막는다는 가설을 제기해 화제를 모았다. 바로 이런 이론을 근거로 대륙 간의 단풍 색깔의 차이를 설명했다.

3천500만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 대부분의 지역은 상록수, 또는 열대림이었다. 그러나 빙하기와 건조기가 교차하면서 많은 나무들이 낙엽수로 진화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많은 나무들이 곤충의 침입에 시달리게 되자 빨간 낙엽을 만들어내는 진화과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의 산맥들은 남북으로 뻗어있어 동물과 식물은 기후변화에 따라 남북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며 천적인 곤충들도 함께 이동해 생존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알프스를 비롯해 유럽의 산맥들은 동서로 뻗어있어 동식물의 남북 이동 경로가 형성되지 않아 추위를 이기지 못한 많은 나무가 죽어갔고, 이에 따라 나무에 의존하던 곤충들도 역시 사라졌다. 따라서 거듭된 빙하기에 살아남은 나무 대부분은 더 이상 곤충들과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어졌고 붉은 잎을 만들어내느라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빨갛게 불태우며 방문객을 기다리는 단풍의 빛깔 속에는 수천 만년에 이르는 생물학적 진화의 역사가 배어있다. 북한산 단풍도 절정이다. 마치 우리 몸이 전부 붉게 물들어버릴 것 같다. “오-메 단풍 들것네”!   hgkim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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