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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을씨년스럽다'를 아시나요
[유연미 칼럼] '을씨년스럽다'를 아시나요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8.11.29 08:54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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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논설위원

늦가을의 늦은 저녁,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소리는 더없이 쓸쓸하고 스산하다. 짙은 황량함이 뼛속까지 와 닿는 을씨년스러움, 한 잔의 막걸리를 걸친 그날, 그 시간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 절기가 딱 그런 시기다.

오직 이 시기에 유난히도 가슴에 맴도는 낱말 ‘을씨년스럽다’. 봄, 여름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단어다. 그렇다면 왜 그 어휘는 코끝이 싸한 찬바람이 부는, 그리고 떨어진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이 시절에만 사용되는 것일까?

이는 가깝지만 함께할 수 없는 멀고도 먼 나라 일본의 덕분이다. 그렇다. 그것도 아주 치욕적인 덕분. 조선의 영토를 빼앗으려 서슬이 시퍼렇던 청나라와 일본 간의 싸움, 청일전쟁. 결국 일본의 승리로 조선의 운명은 청나라의 ‘종주권’에서 일본의 강점대상이 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라는 치욕의 상황으로 전환되는 굴욕의 순간이다. 일본의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탈피’의 전초전으로 시작된 외교권 박탈. 이것이 바로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다. 일본으로부터 모든 외교권을 빼앗겼던 조선의 치욕적인 그날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이 조약을 을사조약, 심지어는 을사보호조약이라고까지 불리었던 굴욕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하지만 이는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겼기에 을사늑약이라 불리어졌고 그랬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우리나라 강점시작은 1910년이 아니고 1905년으로 보아야한다. 그러니 식민지의 기간은 총 41년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 을씨년스러운 1905년 11월 17일 늦가을, 우리나라는 빈껍데기만 남았다. 소위 ‘속빈 강정’이 되었다. 나라의 자존심은 내동댕이쳐졌고, 11월의 황량한 바람만 허공에 맴돌았다. 이렇게 찬바람이 부는 쓸쓸한 시기에 나라의 자존심마저 짓밟혔으니 그 국민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더더욱 외롭고 춥고 쓸쓸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대변하는 ‘을씨년스럽다’는 바로 ‘을사년(乙巳年)스럽다’에서 태동되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가 을사년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사람들은 날이 꾸무럭하여 스산하거나 쓸쓸할 때 ‘을사년스럽다’고 말했다’ 한다. 해서 을씨년스럽다가 황량하고 쓸쓸한 늦가을의 대표적인 표현으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썰렁하고 쓸쓸해 보이는 중명전. 을사늑약이 체결된 치욕의 장소다. 덕수궁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극장의 옆 골목 마지막에 위치한 빨간 2층 벽돌집, 무엇인가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한 서린 그곳이다. 오색의 단풍으로 물들은 덕수궁돌담길의 늦은 11월이 차디찬 엄동설한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렇다. 마음의 겨울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이유다. ‘나무도 땅도 쉬어가는 계절’ 11월, 이처럼 온 국민의 월동준비는 너무도 가혹했다.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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