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01-21 15:48 (월)
'서프라이즈' 조선시대의 데스노트? '몽유도원도'에 적힌 이들 모두 사망해
'서프라이즈' 조선시대의 데스노트? '몽유도원도'에 적힌 이들 모두 사망해
  • 박민규 기자
  • 승인 2019.01.13 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C 예능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캡처

[아시아타임즈=박민규 기자] 몽유도원도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몽유도원도에 이름이 적힌 이들이 모두 죽음을 당했기 때문.

13일 방송된 MBC 예능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조선시대판 데스노트라는 몽유도원도가 소개됐다.

1453년 문종이 죽은 후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이 왕위를 뺏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같은 해 11월 단종의 편에 섰던 좌의정 김종서가 철퇴에 맞아 사망했고, 며칠 뒤 안평대군이 역모죄로 사사됐다.

또 1456년 6월 단종 복위운동을 도모하던 박팽년이 고문을 당하다 옥중에서 사망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몽유도원도가 그들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작품으로 안견은 안평대군의 명으로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됐다.

계유정난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447년, 안평대군은 무릉도원을 노니는 꿈을 꾸게 됐다. 안평대군은 꿈에서 본 도원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했고,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에게 꿈에서 본 풍경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안견이 사흘 만에 완성한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였다.

놀라운 건 몽유도원도에 죽음을 당한 이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었다는 점. 당시 안평대군은 몽유도원도 완성 후 발문을 남겼고, 그림을 본 문인들은 찬문을 써 올렸다.

찬문을 남긴 인물들은 총 21명으로, 그 길이가 무려 20m에 달했으며, 계유정난에 사망한 김종서와 박팽년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처럼 몽유도원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이들이 수양대군의 손에 목숨을 잃자 해당 작품은 '죽음을 부르는 그림'으로 불리게 됐다. 공교롭게도 박팽년이 죽은 다음 날 동부승지 성삼문 역시 역모죄로 처형당했다.

이처럼 조선판 살생부가 된 몽유도원도. 현대에 들어 일부 학자들은 "몽유도원도가 안평대군의 정치적 야망이 반영된 그림"이라며 "찬문은 안평대군에 대한 사대부들의 충성 맹세로, 몽유도원도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죽음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한편 몽유도원도는 계유정난 이후 자취를 감췄고, 1893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발견된 후 일본 덴리 대학교에서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