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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대통령의 그림자
[유연미 칼럼] 대통령의 그림자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9.01.16 13:21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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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논설위원<br>
유연미 논설위원

늦은 오전의 산행, 그림자도 따라 나선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는 달라진다. 하지만 태양의 위치와 상관없이 그림자는 그 때의 나의 생각을 오롯이 빚어낸다. 분신이라 불리는 이유다.

오늘의 산행에서 바라본 대통령과 그림자. 둘의 관계는? 함의적이다. 물론 분신이기에 그렇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대통령의 고뇌, 그 자체다. 이는 두 갈래, 희망과 회한이다. 극과 극의 중심에는 소통이라는 도구가 있다. 그렇다. 이것이 핵심이다. 식상하지만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국정운영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든 회한이든 공통분모는 고뇌, 이는 대통령이 임기내내 짊어지고 가야 할 외로운 멍에다. “행복했을 때는 대통령 당선자일 때다.” “대통령 하지 마라.” 과거 역임한 어느 대통령들의 회고,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 고뇌의 그림자가 가장 길 때는 정권 초와 말기다. 해가 뜰 때와 질 때처럼 말이다.

대통령 임기 초의 그림자, 산에 오를 때의 상황이다. 산의 꼭지점 자체가 대통령으로서 품은 꿈을 모아 둔 그릇, 희망의 용광로다. 대통령은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며 오른다. 얼마나 많은 계획이 담겨 있겠는가? 그래서 그 그림자는 길수밖에 없다. 국민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 이 시기, 소위 ‘허니문 관계’다. 그러기에 지지도는 고공행진 한다. 이는 용광로의 변곡점이 소통으로 이루어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맞다.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그림자도 당연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태양을 마주하기에 당연 그림자는 볼 수 없다. 물론 뒤에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듯 분명한 것, 희망과 당당함 그리고 겸손함의 동행이다. 대통령의 일상은 고뇌, 그 자체다. 그러나 이 때는 희망으로 가득한 고뇌의 그림자다. 그래서 행복한 비명이다.

대통령 임기 말의 그림자, 산에서 내려올 때의 상황이다. 태양을 뒤로하기에 당연 그림자는 앞에 있다. 물론 볼 수 있다. 함께 걷는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 이는 잃어 버린 것들, 희망과 당당함이다. 물론 오만함으로 훼손된 겸손함도 함께한다. 불통이 만들어 낸 부산물들이다. 초심을 잃은지 오래다. 냉엄한 심판을 기다리는 절망의 심정, 맞이 하는 것은 당연 회한뿐이다. 명확하다. 이미 때늦은 후회다. 회한으로 가득한 그림자, 길이가 긴 이유다. 이 때는 절망의 비명이다. 이것이 산에 오를 때와 내려올 때의 그림자의 차이, ‘천양지차’다. 바로 소통의 부재가 빚어낸 산물이다.

3년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엊그제 대통령의 신년사가 있었다. 새해의 계획이 담긴 큰 그릇, 물론 국민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정부가 그 무엇보다도 초심으로 돌아가길 간구한다. 소통하는 낮은 자세를 주문한 것이다. 불통에서 비롯된 과거정부의 악몽, 또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음이다. 그렇다. 초심에서 시작된 희망의 고뇌, 산을 오를 때의 그 그림자를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까지 보고 싶은 것이다.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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