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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10년] '민족 영웅'을 기리는 목소리, 가수 손현우
[안중근 의사 순국 110년] '민족 영웅'을 기리는 목소리, 가수 손현우
  • 이재현 기자
  • 승인 2019.03.26 06:30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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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손현우(사진=이재현 기자)
가수 손현우(사진=이재현 기자)

[아시아타임즈=이재현 기자] 오늘부터 정확하게 110년 전인 1910년 3월 26일. 이날은 도마 안중근 의사는 일본 재판정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국한 날이다.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일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지 정확하게 5개월만이다.  

"코레아 우라(Корея ура)!"

러시아말로 외친 '대한독립 만세'. 그리고 일본군의 감옥에서, 일본 재판정에서도, 순국 전까지도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모습으로 꼿꼿했던 가장 위대한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를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안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1910년 2월14일. 지금은 '발렌타인데이'로 더 잘 알려진 이날. 우리는 110년 전 32세의 나이로 제국주의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기고 적국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영웅에 대해 서서히 잊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가수 손현우는 그래서 이 시대의 남다른 행보를 걷는 문화인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안중근 의사와의 인연은 점차 운명으로 바뀌며, 이제는 민족 영웅을 기리는 노래는 물론 안중근 의사를 더 알리고 기억하기 위한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아시아타임즈는 안중근 의사 순국 110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 손현우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안중근 의사의 노래를 어떠한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는지?

A. 2013년 여름,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외신으로 그것이 다뤄졌었죠. 그리고 그때 SBS부장이시던 형님이 갑자기 저한테 전화를 하시더니 "너 안중근 노래 하나불러보자"라고 하셨죠.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보통 ‘안중근 의사’라고 하면은 교과서와 다큐멘터리로 배운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안중근 의사님의 노래를 부르다가 잘못하면 욕은 욕대로 먹고 안티도 많이 생기니까 부담도 됐죠. 또한 국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루 만에 결성하게 됐죠.

Q. 갑작스러운 제의면 곡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없지 않으셨나요?

A. 곡을 새로 만들기 보다는 기존에 있었던 곡에 가사를 바꾸기로 했어요. 제가 전에 발표했던 곡 중에 ‘영웅시대’라는 곡이 있었는데 음악도 웅장하고 박력이 있어서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죠.

음악을 정했으니 가사가 필요했죠. 그래서 고(故) 정두서 선생님을 찾아가서 당장 드릴 돈은 없지만 어떠한 이유로 ‘안중근의사의 노래’를 만들고 있는지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흔쾌하게 승낙을 해주시면서 나중에 염소고기나 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손현우는 그렇게 말하며 2년 전 별세하신 정 작사가에 대한 그리움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작곡을 요청하고 5일 만에 연락이 오셨어요. 그때 선생님이 노랗게 변질된 달력의 뒷면에 가사를 써서 인감을 찍으셨죠. 감사인사를 올린다음 바로 서초동에 있는 녹음실에서 녹음을 시작했죠. 그렇게 해서 탄생된 곡이 ‘안중근의사의 노래’입니다.

가수 손현우의 안중근의사의 의사 노래 앨범 (사진=이재현 기자)
가수 손현우의 안중근의사의 의사 노래 앨범 (사진=이재현 기자)

Q. 그렇게 완성된 곡을 처음 부르실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A. 사실 이 노래를 처음 시작할 때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많은 조사를 했죠. 그러면서 어머니가 보낸 옥중의 편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감동스러웠고 노래에 대한 사명감이 생겼죠. ‘안중근 의사를 욕보이게 하면 안 되겠고 부귀영화를 누려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 느낌을 부족함 없이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족함에도 노력해서 ‘안중근의사의 노래’를 부르던 중,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행사에 참석했어요. 무대에 오르기에 앞서 안중근 의사의 영상을 보고 무대를 올라가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노래로 부르는 사람이 저런 위대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죠. 흐르는 눈물을 머금고 무대에 올라가서 감정을 추스르고 노래를 부르려했지만 감정이 잘 추슬러지지 않더라고요.

가볍게 시작했던 인터뷰였지만 이후 손현우의 표정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해 보였다. 

안중근 의사가 정말 대단한 게 홀몸으로 적들이 즐비한 하얼빈에 침투해 울려 퍼진 세발의 총성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한발 앞당기셨는데 저는 죽어도 그런 일을 못할 것 같더라고요. 대단하신 거죠.

노래를 불러서 안중근 의사의 업적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존경심도 날로 높아져갔어요.

Q. 중국에서도 ‘안중근의사의 노래’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A. 작년에 중국을 두 번 갔는데 한족에게 앨범을 넘겨주고 안중근에 대한 노래라는 것을 밝히면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정말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든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는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었죠.

Q. 중국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안중근 의사는 완전한 타국의 영웅인데 어떻게 알고들 있나요?

A. 제가 중국에 갔을 때 아침마다 TV에서 중일 전쟁과 관련된 것을 방영하더라고요. 중국 자체가 일본에 대한 적대심이 강하잖아요. 중일전쟁으로 인해 중국 자국민들이 실험에 사용당하는 등 치욕적인 일이 있었죠.

그러던 중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쏜 총 3발은 중일전쟁의 패배로 심신이 지쳐있던 중국 국민들에게 일종의 희망의 불씨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다보니 중국에서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다른 것도 하고 계신지

A. 경기도 안성 북동에 6000평대 폐교를 임대 받아서 안중근문화교육연구원을 만들고 있어요. 체포된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에 있었던 감옥과 형을 받는 법정의 모습을 재현해놓고 있어요. 현재 60%가량 공사가 완료되어 있는 상황이죠.

완성되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높은 중국인들을 상대로 관광코스로 지정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장소로 이용할 생각이에요.

가수 손현우와 안중근 포스터가 붙은 자가용 (사진=류제복 기자)
가수 손현우와 안중근 포스터가 붙은 자가용 (사진=류제복 기자)

Q. 안중근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신데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도 있으셨는지

A. 제 차에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포스터를 잔뜩 붙이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한 번은 술을 먹고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운전기사가 안중근 포스터를 보고 저에게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물어봐서 ‘안중근의사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대리기사가 “좋은 일 하는 사람이니 돈을 안받겠다”해서 장난인줄 알았는데 진짜 안 받고 그냥 가더라고요. 가는 사람을 붙잡은 다음 앨범을 건네주니까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차에 포스터를 보고 저에게 따봉을 해주는 시민들도 계셨고요. 그때마다 많이 뿌듯하고 ‘안중근 의사의 노래’를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안중근 의사의 노래'를 부른 가수 손현우는 

1962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故 정두수 작사가의 제자로 들어가 여러 가지를 배우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정 작사가에게 음악이 무엇인지 배우던 중 1991년 ‘내 고향 하동포구’이라는 곡을 받고 부르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마포종점’, ‘가슴 아프게’, ‘덕수궁 돌담길’, ‘물레방아 도는데’ 등을 부르며 꾸준한 활동을 하다가 KBS1에서 방영한 최장수 국민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배경음악인 ‘내 청춘’을 직접 불러 대중에게 알려졌다.

특히 손현우의 독특한 목소리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이 남아 있어 당시 톱스타였던 남진과 나훈아와 함께 가요계 기대주로 떠올랐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얻던 애니메이션인 ‘톰과 제리’의 주제가를 부르며 대중에게도 친숙한 목소리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계문제로 가요계를 떠나 여러 사업을 했던 그는 결국 음악의 대한 열정과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가수활동을 재개했다. 

꾸준한 활동을 하던 손현우는 2013년 '안중근 의사의 노래'를 부른 이후 이를 계기로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kiscezyr@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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