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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미래 칼럼] 신방 엿보기
[청년과미래 칼럼] 신방 엿보기
  • 청년과미래
  • 승인 2019.03.26 01:28
  •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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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준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
금재준 청년과미래 칼럼니스트

혼례를 치른 첫날밤 신랑·신부가 신방에서 나누는 행위를 훔쳐보기 위해 친척이나 이웃들이 방문에 구멍을 뚫고 안을 엿보는 일명 ‘신방엿보기’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특수 풍속이다. 신방엿보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조혼 풍속과 관련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혼이 성행했다. 어린 나이에 혼인하다 보니 첫날밤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뛰쳐나오거나, 신방에서 처음 얼굴을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간밤에 도망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족과 이웃들이 신방을 엿보는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혼인은 주혼자, 즉 부모의 의견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혼인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가문의 지속을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남자는 10살쯤, 여자는 14~15살쯤 혼인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은 부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가족 이데올로기 존속의 희생양이 되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신방엿보기는 이데올로기 이탈자를 방지하는 기능 외에도 어린이들에게 혼인에 대한 정형화된 태도를 내재화 시키는 기능을 한다. 익살스러운 장난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그렇게 유화된 폭력을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였다.
          
 현대 혼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신방엿보기는 국가적 차원에서 더욱 교묘하게 이뤄진다. 저출산을 문제로 규정해 출산장려정책을 펴고, 동성혼과 사실혼 관계를 법률적으로 부정한다. 이성 간 혼인을 통한 출산이 국가의 지속성을 담보해준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법·제도적 통제를 가한다. 사적 영역인 출산은 출산 통계에 희석돼 공적 영역으로 확장된다. 사적 간섭의 총합인 출산율은 구경꾼들에게 제도화된 결혼관을 주입시키는 기능을 한다. 비록 과거에 비해 배우자 선택은 자유로워졌지만, 선택의 범주(남성과 여성)와 과정(출산)에 대한 간섭은 여전하다. 이 제도권에서 벗어난 이들은 사회적 편견과 법적 비보호로 고통 받는다. 

 많은 국가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제도적·문화적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25개의 국가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고, 20여개의 국가는 법적으로 결혼에 준하는 시민결합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보수기독교와 일부 정치세력의 강력한 반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반감에 가로막혀 제대로 논의조차 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물꼬를 트는듯했으나, 결국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외했다. 결혼에 대한 정형화된 태도를 가진 채 신방을 엿보려는 구경꾼들이 존재하는 한 제도적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혼모’, ‘사실혼’, ‘혼전동거’, ‘동성결혼’과 같은 용어들은 합법적 혼인관계 외의 관계들을 비정상적 관계로 부각시킨다. 이 다수의 언어로 규정된 소수는 집단적 편견에 맞설 언어를 갖지 못한다. 마치 조선시대 어린 남녀가 첫날밤의 수치스러움을 견디고 침묵했던 것과 유사하다. 집단적 강요와 종용은 침묵하는 피해자를 낳는다. 이 악의 평범성이 혼인제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팽배해져 있다면, 나도 언젠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로 전락할지 모른다. 제도 개선을 위해 결혼관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둘 이상의 사회적 최소단위를 부정하는 것은 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kyb@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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