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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칼럼] 가계대출 규제 이젠 ‘출구전략’도 검토해야 한다
[강현직 칼럼] 가계대출 규제 이젠 ‘출구전략’도 검토해야 한다
  • 강현직 주필
  • 승인 2019.04.25 16:47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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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주필
강현직 주필

#1 제법 안정된 중견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다 밀려 직장을 나온 50대, 두 자녀를 키우다 보니 딱히 저축해 놓은 것은 없고 기댈 곳도 없어 급한 마음에 은행 대출 창구를 찾았다. 가계자금 대출을 신청했으나 생각지도 않게 거절당하고 어렵사리 장만해 살고 있는 7억대의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시간제로 일하는 얼마간의 소득은 있었지만 수입이 적어 대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보험사를 찾아 20여 년 동안 가입한 보험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위 ‘약관 대출’ 예전엔 보험사들이 서로 앞 다퉈 취급하려 했던 상품인데 지금은 소득이 없으면 어렵다며 아주 급하면 보험을 깨는 도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기가 불과 2년여 남지 않았는데 보험은 도중에 해지하면 그동안 납입한 원금도 채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보니 답답할 뿐 대책이 없었다. 내가 저축한 돈을 담보로도 돈을 빌릴 수 없다니, 너무 황당한 불이익을 감수할 수 없어 결국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대부업체, 그곳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얼마간의 자금을 대출받았고 평생 처음 당하는 고금리에 고통 받고 있다.

#2 40년 직장을 다니고 퇴직해 지금은 쉬고 있는 60대, 한 1년 쉬다보니 마냥 쉴 수는 없고 무엇인가 해 봐야겠다며 자금 마련에 나섰다. 재산이라곤 10억이 넘는 서울의 아파트, 이를 담보로 자금을 준비하기 위해 은행을 두드렸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역시 현재 소득이 없다는 이유다. 어찌 어찌하여 보험사에서 자금 대출 받았으나 계획했던 규모보다 턱없이 적어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일률적인 가계대출 규제에 대한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 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가계대출 규제에 대해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가계부채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이 맞물리면 구조적으로 경기 둔화가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신DTI(총부채상환비율) 시행에 이어 3월부터는 마이너스 통장과 자동차 할부금까지 대출한도에 반영하는 총체적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했다. 또 오는 6월부터는 저축은행과 여신전문업권 등 2금융권에도 DSR을 적용하고 지난해 큰 폭으로 증가한 개인사업자대출 관리도 강화, 전방위적으로 가계대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DSR은 연간 총소득에서 전체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가 차지하는 비율로,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과 신용카드결제액 같은 모든 대출금이 해당돼 소득이 일정치 않은 자영업자나 상환 능력은 있지만 현재 소득이 없는 은퇴자 등 서민들에겐 매우 불리한 제도다.

물론 가계대출 규제로 고위험 대출 상품 비중이 감소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가계부채는 1534조6000억원으로 증가규모가 20조7000억원에 그쳐 1년 전에 비해 증가폭이 5분의1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가계대출 안정에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으나 과도할 경우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규제 속도가 너무 빠르고 경제주체인 30~40대에서 위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30~40대는 금융자산보다 금융부채가 더 많고 자산대비 부채 비율이나 저축액대비 금융부채도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또 여전히 부채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웃돌고 있어 다중채무자이면서 빚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차주 부채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일자리나 소득이 흔들리기 쉽고 저소득과 저신용인 취약차주의 빚은 소득여건이 악화되면서 1년 새 4조원 넘게 늘었다.

위험이 커지기는 사정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임대가구 건물주들도 마찬가지다. 돈을 빌려 부동산을 투자했는데 임대료가 떨어지고 부동산 가격마저 빠지고 있어 담보대출을 받은 경우 구입한 부동산에 대한 실질부채 부담이 상승하고 있다. 또 입주자가 반환을 요구했을 때 떨어지는 전세금에 세입자도 집주인도 좌불안석이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일부 지역에선 집을 팔아도 보증금에 모자란 ‘깡통전세’마저 나타나고 있다.

가계부채가 당장 시장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은 낮다 하더라도 시장여건 변화에 따라 가계부채의 건전성이 급격히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 무조건 옭죄려고만 하지 말고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 산업계에선 규제 샌드박스 등 기업에 활력을 주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검토되고 있다. 소위 ‘빽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대출정책도 재검토돼야 한다. 규제는 한번 만들면 후퇴하기 쉽지 않다. 다양한 상황에 따른 세심한 배려 없이 일률적으로 규제만을 강화한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생각하기 바란다.


jigkh@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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