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09-16 06:00 (월)
[기고]파주 덕진산성 복원 미흡하다
[기고]파주 덕진산성 복원 미흡하다
  • 김영선
  • 승인 2019.05.08 11:32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순제 박사(한국고대사연구소 소장)
오순제 박사(한국고대사연구소 소장)
[아시아타임즈=김영선 기자]임진강은 삼국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강유역에 자리 잡은 백제와 조선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특히 백제시대에는 예성강이 1차 저지선, 임진강이 2차 저지선, 한강이 마지막 저지선이었다. 그중에서도 임진강은 강줄기뿐만 아니라 그 남쪽에 동서로 길게 늘어선 파평산과 감악산을 이어주는 산줄기가 천연의 방패역할을 하고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은 고석정에서부터 화석정에 이르기까지 양쪽이 수직절벽으로 이어져 있어 도강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므로 이곳의 도강지점은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는데 한탄강은 현재 대전리산성과 전곡 사이에 밤나무골이 있다.

임진강에서는 파주군 적성면의 가월리에 가여울, 개여울 또는 술탄(戌灘)이라고 부르던 도강지점이 있는데 이곳을 지키던 성이 바로 육계토성이고 그 후방의 지휘소가 칠중성이다. 이곳이 뚫리면 설마치고개를 넘어 양주를 거쳐 의정부를 지나 서울로 진입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고랑포의 호로탄이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이곳에는 호로고루성이 남아있고 그 남쪽에는 이잔미성이 남아있다. 이곳을 건너면 파평산 옆, 광탄, 고양읍의 벽제관쪽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평도의 도강지점을 지키던 덕진산성이다. 이곳은 예전에는 개성에서 장단을 지나 임진나루터를 건너 파주읍, 고양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도강지점 중에서 가장 편한 곳은 덕진산성 쪽이다. 그러하기에 파주읍에는 봉서산성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월롱산성 그리고 고양시의 명봉산성 등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러한 도강지점을 지키던 성들을 발굴해 보면 가장 아래층에는 백제시대의 토성이 나오고 있고 그 위에 고구려의 석성, 맨 위에는 신라의 석성 또는 통일신라시대의 보축성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며 이곳 덕진산성도 마찬가지이다.

덕진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된 아주 큰 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규모가 있는 중요한 성이다. 이곳에서는 고구려식의 되물림, 육합, 굽도리, 치 등의 공법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만주지역에서 보이는 고구려의 중요한 성들처럼 매우 규격적인 성돌이 아니고 여러 석질의 돌과 약간 규격에서 벋어난 돌들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장기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축성된 것은 아니다.

특히 이 성에는 두 개의 집수정이 있어 매우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 복원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첫째로 복원한 모습이 발굴 당시의 원형과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의 것은 도토리와 같이 아래가 약간 움푹하게 들어가 있는 형태인데 이것의 하부를 얕고도 평탄하게 만들어 버렸다. 네모난 것도 꽤 깊은 것이었는데 아무리 안전을 고려하더라도 약간은 깊게 복원했어야 한다.

둘째는 이 두 개의 집수정 모두 엉뚱한 돌들을 조경을 하듯이 쌓은 것이다. 원래 발굴된 상태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최선인데도 도리어 원래의 돌들을 뽑아 그 아래로 방치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더구나 집수정의 돌들과는 전혀 다른 석질의 조경석들을 돈을 들여 깎아서 금붕어를 기르는 연못을 만들 듯이 쌓아 만들어져 있어 아예 복원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 두 개의 집수정만큼은 발굴 당시 원형 복원이 최선책이라고 생각된다. 이곳은 앞에서 거론했던 도강지점 중에서도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곳으로 이 부근의 연천군 지역에서 경순왕릉과 호로고루를 관광지로 개발했듯이 파주시 또한 그 유명한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묘와 함께 덕진산성을 패키지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좋은 매우 좋은 교육현장이 될 것으로 본다.
kys27094404@hanmail.net

섹션별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