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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동물농장’과 ‘동물국회’의 공통분모
[유연미 칼럼] ‘동물농장’과 ‘동물국회’의 공통분모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9.05.12 15:26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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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논설위원
유연미 논설위원

드디어 반란이 시작됐다. 동물들의 내란이다. 존스의 동물농장에서다. 여기에서 리더는 메이저, 적극 가담자는 스노볼과 나폴레옹이다. 이들 모두는 돼지다. 농장주인 존스로부터 노동력을 착취당함을 인지한 메이저, 그는 동물들을 위한 혁명적인 계획을 수립하다. 일명 ‘인간 전복 혁명’이다. 성공한다. 마침내 농장주인 존스를 몰아내고 ‘그들만을 위한 리그’를 시작한다. 그리고 동물들의 공공복지를 위해 ‘7계명’의 틀을 구성한다. 소위 ‘동물주의’다. 물론, 이것은 모든 동물들의 권익을 위한 것들이다. 단지 돼지들만의 권리와 이익이 아닌.

하지만 이 돼지집단은 탈이 나기 시작한다. 초심을 잃고 귀가 멀고서부터다. 그리고 권력의 달콤함에 빠진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들이 진행하는 일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초심을 잃게, 그리고 귀를 멀게 한 이유다. 사실 그들은 농장주인 존스와 별 차가 없었다. 아니 더했다. 다른 동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했다. 7계명의 틀도 돼지들만의 권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 위임된 권력은 오직 돼지들만을 위한 전유물이 되었다. 동물들의 ‘이상국가’는 그대로 추락했다. 장미빛으로 사라졌다. 당연한 결과다.

이상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줄거리, 권력을 오용한 스탈린을 우화로 풍자한 소설이다. 정치의 진영논리를 초월한다.

이젠 인간의 ‘육탄전’이 시작됐다.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서다. 국정을 논의하는 장소에서 일어났던 육탄전, 일명 ‘동물국회’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다. 너덜너덜한 넝마가 되어버린 국회의원들의 품격, 그 덕에 국회의사당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물고 뜯는 욕설이 난무했고 그리고 빠루와 쇠망치까지 등장했다. 보라, 찢기고 패이며 상처투성이가 된 국회 의안과 출입문을. 그 오욕의 잔유물이다. 급기야 고소 고발로 얼룩진 5박6일의 동물국회, 과연 누굴 위한 일들이었던가?

국민들을 위해서? 웃기지 마라. 만인이 웃는다. ‘반칙’과 ‘특권’에 익숙한 국회위원들,
바로 자신들을 위해서다. 그렇다. 내년총선을 위한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선점 포석이 깔려있다. 소위 셈법의 기(氣)싸움이다. 큰 틀에서다. 그래야 다음에는 더 많은 반칙과 더 큰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권력을 쥐어주니 입법 때 자신들의 밥그릇이 먼저다. 국민의 권익은 뒷전이다. 다반사다. 보자. 그들은 이번 공수처의 기소 대상에서 스스로를 제외했다. 뿐만인가 2014년 특별감찰관제 도입 때와 2015년 김영란법 제정 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권력을 남용한 대표적인 예들로 뻔뻔함의 극치다. ‘국민 이익엔 등신이고 자기 이익에만 귀신인 기존 정치권’, 이는 한 언론인의 언급이다. 의미있는 지적이다. 귓전에 맴도는 이유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국정을 심의한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이에 따른 권력을 그들에게 위임한다. 하지만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사용한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이 보여준 그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거시권력의 프레임’이다. 그렇다. 그 권력은 주로 ‘지배집단’을 위해 이용된다. 이는 동물농장과 동물국회에서 맛본 쓰디쓴 공통분모이다.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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