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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콜레라 극복 해법 제시한 박영효와 미세먼지 다이닝
[칼럼] 콜레라 극복 해법 제시한 박영효와 미세먼지 다이닝
  • 천영준 역사저술가·과학기술정책학 박사
  • 승인 2019.05.17 13:36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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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준 역사저술가·과학기술정책학 박사
천영준 역사저술가·과학기술정책학 박사

1880년대 조선의 수도 한양에는 사람의 분뇨가 뒹굴었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종로 한복판을 지나다니다 보면 허리춤을 내리고 소변을 보는 아이들, 민가에서 배출한 인분 등이 거리를 메웠다. 조선은 수백년 동안 콜레라에 시달렸다. 순조 시대에는 약 30만에 달하는 인구가 콜레라로 죽었다. 당시에는 이 병은 정체불명의 질병이었지만 지금은 부족한 위생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분을 그대로 밭에 뿌려 거름으로 썼으니 야채를 먹고 균에 감염되는 일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개화파 인사였던 박영효는 1888년 고종에게 '건백서(建白書)'라는 건의서를 올린다. 메이지 유신의 주도자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일본의 개혁을 위해 내놓은 건백서를 패러디한 문건이다. 박영효는 이 글에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양 언어와 과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신분의 차별을 없애 만인의 평등함과 자유 경쟁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과 함께 "위생을 위해 도로를 닦고 화장실, 하수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이른바 치도책(治道策)이다. 

종로 한복판을 다니면서 온갖 인분(人糞)과 견분(犬糞)을 밟는 일이 빈번하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대화된 도로의 정비와 함께 오수와 폐기물을 별도로 처리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환경 정책이자 교통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아이디어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다. 농촌인지 도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던 130년 전의 세종로는 이제 수많은 차(車)가 다니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생기면 시민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난날의 도시가 분뇨와 콜레라로 신음했다면 오늘날의 도시는 미세먼지로 신음한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30분 이상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보면 서서히 목이 아파 오고 코와 눈에는 긴장감이 생긴다. 매캐한 연기가 온몸을 감싸고 돌며 불쾌감을 준다. 우리나라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5 마이크로그램(ug)이다. 매일 담배 1.13까치를 피우는 흡연위험에 해당하는 수치다.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는 "미세먼지를 흡입하게 되면 공짜로 담배를 태우는 효과가 난다"거나 "무상복지로 주어진 흡연 효과"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우리의 소화기는 근대화의 결과로 해방되었지만 우리의 호흡기는 그렇게 죽음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물은 가려 마실 수 있지만 공기는 나눠서 흡입할 수 없다. 지난 14일 광화문에서는 '미세먼지 다이닝'이라는 매우 특이한 집단 행위 예술이 펼쳐졌다. 에너지와 환경을 고민하는 시민단체인 한반도평화에너지와 한식 다이닝 그룹 윤가명가의 합작으로 펼쳐진 이 행사에서는 광화문 한 복판에서 시민들이 2시간 동안 식사를 나누며 미세먼지 체험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반기문 국가기후회의 위원장은 "침묵의 살인자를 우리 모두가 막자"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는 "광화문에서 데모를 해보긴 했어도 밥을 먹어보긴 처음"이라며 사상 최초로 시도된 친환경, 친건강 퍼포먼스에 힘을 보탰다. 미세먼지로 인해 천식을 앓고 있는 윤경숙 윤가명가 대표는 "미세먼지는 우리 모두가 겪게 된 근대화의 고통"이라며 "우리 모두가 함께 숨쉬고, 먹고, 나누며 살아가는 호흡공동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박기영 순천대 교수도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열린 토론의 장을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각계의 전문가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미세먼지 문제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교육문화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박영효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아마 미세먼지 문제에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설 것이다. 지난날 우리 국민이 콜레라에서 해방된 그 경험은 이제 미세먼지 정책에 투입돼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근대화 혁명을 기대한다. jsm78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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