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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이 현실로...금융지주 증권사, 실적순위 화면으로 직원 압박
영화 '돈'이 현실로...금융지주 증권사, 실적순위 화면으로 직원 압박
  • 김지호 기자
  • 승인 2019.05.20 01:00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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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돈’. 주인공인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이 일하는 증권사 사무실에는 야구전광판과 같이 매일의 영업실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형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이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실적과 회사 내에서의 위치가 그대로 공개돼 직원들은 큰 압박을 느낀다는 설정이다. 증권가의 ‘냉정함’을 표현하기 위한 영화 속 일종의 보조 장치다.

영화를 본 금융투자업계 직원들은 아무리 영화지만 지나치게 과장됐고 증권사가 그 정도로는 심하게 직원을 압박하지는 않는다고 부인했다. 과거에는 있었을지 몰라도 현재는 그런 비인간적 행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와 같은 일이 한 금융지주계열 증권사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지주계열 A증권사는 수년전부터 영업점 직원들이 컴퓨터를 켜면 영화에서와 같이 자신의 영업실적과 순위가 적나라하게 화면에 뜨도록 해왔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돈' 스틸컷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돈' 스틸컷

직원들이 영업점 자신의 컴퓨터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로그인을 하면 자동으로 전체 리테일 직원 600여명(복합점포 직원 80여명 포함)의 영업실적 순위가 나오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또 같은 직급 중에서도 자신의 영업실적 순위가 몇 위인지 공개된다.

매일 영업점에 출근해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HTS에 로그인을 하는 A증권사 직원들은 그 화면을 억지로 보면서 심리적으로 매우 큰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회사가 연말까지 평가해 순위에서 하위 5%에 속한 직원은 부서 성과급을 전혀 지급하지 않고 하위 25%에 들면, 성과급을 절반만 지급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매우 크다는 설명이다.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영업 독려 차원이지만 해도 너무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제소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별 영업실적이 아무리 중요한 증권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영화와 같은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는 데 대해 다른 증권사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대형사인 B증권사 관계자는 “요즘 세상에 그렇게 했다가 노동조합에서 들고 일어나면 어쩌냐”며 “영업을 독려하기 위한 차원인 것은 이해하지만 매일 직원에 자신의 순위를 보여주는 일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A증권사 노조는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A증권사 노조 관계자는 지점에서의 이 같은 관행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그런 일 없다”며 “추측이다”고 부인했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입을 다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권력화됐다며 A증권사 직원들은 노조를 크게 신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대형사인 C증권사 관계자는 “아무리 개인적이라고 하나 실적이 좋은 직원을 공개하다 자칫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대상이 될 우려도 있다”며 “여러모로 회사 측에 손해가 많은 행위”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대가 변해 단순히 재무적인 차원에서만 직원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시대에 안 맞는 구시대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NH투자증권은 자산관리(WM) 부문에서 임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핵심성과지표(KPI)를 올해부터 전격 폐지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과도한 실적부담으로 불완전판매가 증가하고 억지로 회전율을 높이는 등 제대로 리테일 직원이 고객의 자산을 관리할 수 없다는 정영채 사장의 판단과 의지에 따른 것이다. 대신 과정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평가·보상제도를 변경해 고객과의 소통에 중점을 뒀다. 정 사장은 고객자산의 손익은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임을 강조하는 이메일도 직원에 보냈다. 일부 회의적 시각도 있지만 업게에서는 대부분 정 사장의 시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일은 A증권사 뿐 아니라 계열 은행에서도 과거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과거 A증권사 계열 은행에서 지점 식당에 영업순위표를 붙여놔 직원들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토로한 사례가 있다”며 “지금 그 은행은 그러지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직원 개별의 영업력이 중요한 A증권사에서는 이런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법적인 근거가 없어 A증권사의 이런 행태에 제재를 가하기는 어렵다며 손을 놓은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도 있지만, 실적이 좋아 좋아하는 직원도 있을 것”이라며 “회사 내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금감원이 나설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better502@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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