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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칼럼] 어린 시절 골목길 ‘땅따먹기’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판
[강현직 칼럼] 어린 시절 골목길 ‘땅따먹기’를 떠올리게 하는 정치판
  • 강현직 주필
  • 승인 2019.05.23 17:07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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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주필
강현직 주필

문득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여럿이 골목길을 막고 각각 자기 구역(자기 집)을 정한 뒤 자기 무기(주로 적당한 크기의 돌 이었다)를 손가락으로 쳐 임자가 없는 땅으로 나간 뒤 3번 만에 자기 구역에 돌아오면 무기(돌)가 다녀 온 구역은 자기 땅이 된다. 성공하면 계속 공격하고 남의 구역을 침범하거나 3번 만에 돌아오지 못하면 공격권은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차지한 땅이 넓은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지만 놀이가 계속되면서 임자가 없는 땅이 줄어들면 남은 지역에서 서로 부딪히고 남의 구역을 지나가게 돼 자주 다툼이 일어났다. 재미있게 놀다 티격태격, 좀 더 과격해지면 서로 심한 말까지 하고 간혹은 몸싸움까지도 가지만 대개는 몇 명이 편을 짜 함께 획 가버리곤 했다.

요즘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라질 위기의 전통놀이지만 불현듯 떠오른 것은 작금의 정치판이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수준의 골목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불거진 몇몇 장면은 우리 정치권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먼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불거진 ‘독재자’논란이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는 발언을 문제 삼아 "이 정부가 저희를 독재자의 후예라고 하는데 진짜 독재자의 후예는 김정은 아닌가. 세습 독재자이고, 세계에서 가장 악한 독재자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나섰고 양 당 대변인도 설전을 이어갔다. 민주당 대변인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 아니고서야 무엇이 그리 억울해 못 견디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고 한국당 대변인은 '독재자의 후예' 타령은 문 대통령을 향하는 '독재자'라는 비난이 그만큼 뼈저리다는 자기 고백이라고 공격했다. 참으로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천박한 용어를 동원한 정치인들의 민낯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황교안 대표 패싱’ 시비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이 페이스북에 "김정은과도 공손하게 악수를 하셨던 김정숙 영부인께서 황교안 대표께는 왜 악수를 청하지 않고 뻔히 얼굴을 보며 지나치셨을까요"라며 "김정숙 영부인이 황교안 대표와 악수를 하지 않은 것이 쳐다보지도, 말을 섞지도, 악수도 하지 말라던 유시민 지령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발끈해 "김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는 중이었고 문 대통령 속도에 맞춰 걷다 보니 악수를 하지 않고 지나가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고 몇몇 의원들도 "대통령하고 거리가 벌어지니까 건너뛰면서 갔는데 그 과정에서 박원순 시장 등 몇 분을 건너뛰었다"고 말했다. 행사장에서 악수하지 않은 것이 꼬투리를 잡을 일인지, 만약 의도적으로 패싱 했다면 지나친 사람이 결격자다.

막말보다 더 비난받아야 할 것은 3당 원내대표들의 호프미팅이다. 합의하지 못하면 나오지 말라고 가둬 놓고 대화를 시켜도 모자랄 판에 맥주잔 놓고 활짝 웃으며 품 잡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 미팅을 국민은 어떻게 볼까, 국회 파행 속에 3당 원내대표는 별다른 합의 없이 100분가량의 만남을 종료했다. 동료 의원까지 나서 "아무리 봐도 뭐하는 것인지 의아하다"며 비판했다. 며칠 밤을 땅바닥에서 자고 물리적 충돌까지 연출하며 '동물'이 되기도 했다며 ‘이런 극한 상황에서 맥주 들고 건배하는 모습을 본다’고 날을 세웠다.

정치인이 가장 쉽게 하는 것은 누군가의 꼬투리를 잡고 비난하는 것인 것 같다. 깊이 있는 담론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꼬리를 잡아 힐난하기는 쉽다. 네덜란드 신학자 뮈스는 ‘어리석음의 찬미’에서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 혀와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를 가졌다고 했다. 우리 정치인들은 진실을 무시하고 상황에 따라 유리한 말만 하는 혀만 가진 듯하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태는 지지층의 관심을 끌고 이들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다. 하지만 막말이 심해질수록 특정 집단, 진영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신의학에 따르면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은 모든 것을 피아로 구분해 자기편은 동일화하고 상대편에는 자신도 갖고 있는 그림자를 투사해서 비난하며 불안감, 열등감을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떠듦으로서 보상받으려 한다고 한다. 정치인들의 난무하는 빈말과 막말을 보고 어린 시절 ‘내 편, 네 편’하며 악을 쓰던 모습이 떠오는 것은 무슨 연유 일까.


jigkh@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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