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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유연미 칼럼] 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9.05.30 10:15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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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논설위원
유연미 논설위원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의 어느 한인회행사에서다. 내빈으로 초대된 목사님, 스님, 그리고 신부님. 모두 단상에 자리를 함께 했다. 하나 어느 순간에 목사님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리를 뜬 것이다. 그 이유가 황당했다. 스님의 옆자리였기 때문이란다. 참 웃지 못할 사건이다. 그렇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법한 일이다. 한동안 회자 됐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의 집에서다. 거실에 있는 책꽂이를 조심스레 살피던 중 누군가가 한 마디 건넨다. “저 책을 치우세요” 저 책이란 법정스님의 책이다. 치우라 한 그 사람은 친구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 소위 ‘심방(尋訪)’에서다. 친구는 열변을 토해낸다. “어찌 목회자라는 분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이해되는 대목이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불과 보름전의 일, 그러기에 그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롯이 남아 있을 게다.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 한 사찰에서 있었던 일이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합장과 반 배로 예를 갖출 때 앞줄에서 유독 눈에 띠는 한 사람, 바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그저 단상을 직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언론에서 회자된 모습이다. 이는 그가 자타가 인정하는 대권주자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대권주자, 물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지도자로서의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는 포용력이다. 그러기에 그의 태도가 ‘갑을 논박’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있었던 일이다. 지인의 별서(別敍)가 있는 곤지암으로 향하는 세 사람. 종교는 제각각이다. 지인은 개신교, 필자는 천주교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불교, 그것도 비구니 정외스님이다. 갑작스레 이뤄진 수다여행, 정점은 한 성당방문이었다. 무계획 속에 이뤄진 계획, 동행자의 결을 바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어둠은 내려 앉고 있었다. 본당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 음악소리,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 시켰다.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교우회 회장님,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일행을 반겼다. 우리는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행사에 이웃 암자의 스님을 초대했고, 그 초대한 스님이 온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고 냉대 할 리가 만무하다.

성당에서 아기예수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 스님을 초대했다? 물론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직접 그런 상황을 접하니 신선함과 신성함이 함께 가슴에 다가온다. 어찌했던 그는 음악소리가 울리는 본당으로 우리일행을 안내했다. 예행연습이 막바지에 이른 분위기였다. 놀랍게도 전자기타연주자는 주임신부님, 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청년은 흥이 가득했다. 들어서자마자 지인과 필자는 흥을 내면서 몸을 흔들고 박수까지 쳐댔다. 하지만 스님은 중앙에 있는 십자가를 향해 예의를 차리고 조용히 둘러보고 있었다. 까불거리던 우리는 너무했나 싶어 자세를 가다듬고 그저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렇다. 타 종교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묻어나는 스님의 숨결, 그 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짙게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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