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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 토크] ‘탁상공론’이 부른 참사…포스코·현대제철, 고로 조업정지 10일
[뒤끝 토크] ‘탁상공론’이 부른 참사…포스코·현대제철, 고로 조업정지 10일
  • 이경화 기자
  • 승인 2019.06.05 10:15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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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소 4고로에서 녹인 쇳물을 빼내는 출선 작업 모습. (사진제공=포스코)
포항제철소 4고로에서 녹인 쇳물을 빼내는 출선 작업 모습. (사진제공=포스코)

[아시아타임즈=이경화 기자]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용광로)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운영하는 포항·광양·당진제철소 3곳에 ‘조업정지 10일’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산업계 전반에서는 ‘탁상공론’의 진수라며 혀를 내두르더군요. 사실 규정이나 지침만 놓고 보면 일견 타당한 조치로도 볼 수는 있습니다. 다만 조금만 더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게 얼마나 바보스러운 행정의 단면인지 알 수 있지요.

당장 철강업계는 정부가 어느 정도나 철강업에 눈이 어두운지를 여실히 할 수 있는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조업정지의 결정 배경에는 제철소가 고로 정비 과정에서 대기오염 방지 시설이 없는 브리더(안전밸브)를 열어 오염 물질을 무단 배출했다는 지자체의 단속 결과가 자리했는데요. 감시의 눈을 피해가며 유해 물질을 무단 배출해온 게 사실이라면 의당 엄중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러나 이번 행정처분에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간명합니다. 국내 제철소는 두 달 주기의 고로 설비정비 때 브리더를 임의 개방해 고압가스를 배출해 왔는데요. 문제가 된 이 과정은 세계 모든 제철소에서 고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폭발 등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 동일하게 행하는 조처라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 견햅니다. 현재 대체 설비기술이 없거니와 이런 방식으로 밸브를 개방하지 않으면 고압에 따른 고로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요.

이처럼 제철소들이 수십 년간 해온 브리더 임의개폐를 두고 최근 미세먼지 확산으로 환경에 부쩍 관심을 두게 된 일부 환경단체들이 문제 삼고 나선 게 발단이 됐습니다. 환경부도 브리더 임의개방을 불법으로 판정내리면서 제철소가 소재한 경북도·전남도·충남도 등 지자체는 상급기관 판단에 따라 행정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다소 당황한 입장을 취하고 있네요.

그런데 고로 정비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있다는 지자체·환경단체 등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방지 시설이 없는 브리더를 개방할 때 어떤 오염 물질이 얼마나 배출되는지 구체적인 측정도 안 된 상태에서 조업정지 카드를 빼들었고, 최근에서야 환경당국이 드론을 띄워 한 차례 오염 조사에 나선 게 전부니 말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로 조업 중단이 현실화될 경우 철강업계의 타격입니다. 1500도 이상 고온의 쇳물이 굳지 않도록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하는 고로의 특성상 단 며칠의 조업정지로도 재가동까지는 최소 3개월 이상 걸립니다. 고로는 내부 온도가 한번 식으면 반드시 재가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겁니다. 여름휴가나 명절에도 고로 가동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윱니다. 그래서 내화벽돌 교체라든지 고로 용적 조정 등 아주 제한적일 경우에 한해 고로에 불을 끕니다. 이 때도 반드시 사전에 물량 조정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이뤄집니다.

산업의 쌀이라고 할 수 있는 철강재 공급 차질이 핵심인 거죠. 이번 행정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자동차나 조선, 건설은 물론 반도체, 그리고 다운스트림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철강재 공급망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일테니까요. 그에 따른 수십조원의 손실 발생과 일감 감소에 근로자 실직 등의 우려는 어쩌면 부차적인 피해에 불과할 수도 있지요.

이처럼 여파가 엄청난데 정확한 오염물질 배출 현황이나 위해성 여부 조사는 커녕 아무 대안 조차 없이 원론적인 처방부터 때리고 보는 행정의 무지,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아니, 이쯤되면 무지를 넘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 굳이 업계 입장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국민이 쥐어 준 행정의 칼자루가 다시 국민을 향해 되돌아와서야 되겠습니까. 제발, 칼자루를 휘두르더라도 뭘 좀 알고 합시다. 이번 주 뒤끝토크였습니다. egija99@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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