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은 정부의 사금고가 아니다

유승열 기자 / 기사승인 : 2019-06-28 10:50:31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유승열 경제부 차장
유승열 경제부 차장

[아시아타임즈=유승열 기자] 최근 금융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자면 씁쓸하다. 시대가 바뀌고 '적폐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게 있다. 은행을 '사금고'인양 여기는 인식과 관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제로페이간편결제추진단을 통해 제로페이 참여 은행과 핀테크 업체 일부에 운영법인 설립에 필요한 재원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이 공문에는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이 받은 공문에는 최소 출연금으로 10억원이 명시됐고, 출연금은 법인 설립 후 기부금으로 처리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회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돈을 내라는 것은 여전히 정부가 은행을 본인들의 '지갑'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행을 '호구'로 여기는 모습은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이달 초 금융위원회는 금융권의 직간접 일자리 창출 효과를 측정해 오는 8월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은행들은 '줄 세우기'로 고용창출 압박을 넣고 있다며 '울며 겨자먹기'로 채용 규모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얼마나 구시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권력을 갖고 있는 정부가 제도 안착을 위해 '관치'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관치뿐만 아니라 시장가격 개입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없애겠다고 외쳤던 '적폐'를 본인들이 이어나가는 꼴이다.


좋은 의도이라지만 구태의 방식으로 과정이 잘못됐다면 의미가 퇴색되기 쉽다. 소상공인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기 위해 마련된 제로페이가 '관치페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들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다. 주주들이고 고객들이다. 은행들의 돈 역시 쉽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직원들이 발로 뛰어 개인·기업들로부터 대출을 일으키고, 자금을 운영해서 얻은 수익이다. 고객들이 목돈 마련을 위해 돈을 맡긴 은행들은 더 많은 혜택과 좋은 서비스 제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고객 자신의 돈들이 흘러새어 나가고 있다면 은행에 대한 신뢰와 정부에 대한 믿음이 생길지 의문이다.


결국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부, 관료들의 이런 구시대적인 발상을 바꾸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기업은 정부의 하위기관이 아니다. 또 관치로 기업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관치는 또다른 부작용만 야기할 뿐이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혁신을 이루고 기업이 도전적으로 사업하기를 원한다면 기업에 목줄을 묶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아시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유승열 기자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청년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