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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조국(祖國)이 있다
[유연미 칼럼] 조국(祖國)이 있다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9.07.26 11:23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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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논설위원
유연미 논설위원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내가 태어나고, 이 살과 뼈를 길러준 곳, 내 조국. 조선의 이름으로 태어나 그 산하에서 자랐다. 그래서 고통 받았고, 차별 받았고, 배고프고 헐벗어야 했다. 오직 조선이라는 것, 그 조국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린 땅에서 태어났다는 그것 때문에. 그리고 이제 조선의 아들이기에 죽어가는구나. 조선이라는 그것 하나로 죽을 때에도 차별받고 경멸 당하면서··· 버림받는구나. 언젠가 오려나. 조국에도 봄이 오려나. 그날 춤추고 싶구나. 조국의 산하여. 그날 널 껴안고 내가 미쳐간들 어떠랴.”

이는 한수산의 책, 「군함도」에 나오는 최우석의 독백, 그가 죽어가며 남긴 말이다. 징용된 조선노동자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군함도」, 일제강점기에 탄광으로 징용된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원자폭탄으로 피폭된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이는 작가의 단순한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허구가 아니다. ‘27년’의 ‘자료조사와 현장답사’의 뒤안길이 작가와 함께했다. 이 사실적인 기조의 바탕이 이 책의 생명력이다. 그러기에 가슴에 와 닿는 분노의 온도는 그 어느 것보다도 작렬했다.

그들이 징용된 섬 하시마, 탈출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험악한 해류’로 유명한 지옥의 섬’ 이다. 마치 ‘그 모습이 바다에 떠 있는 군함 같다’하여 ‘군함도’로 불리어지고 있다. 이곳 지하 700미터 바다 밑, 여기서부터 조선 징용공들의 갱도생활이 시작된다. 그 암흑에서, 나는 그들의 절망, 아픔 그리고 고통을 길어 올렸다. 여기에 원자폭탄의 부상자들을 구조하는 일본사람들의 행태, 극악무도의 절정을 이룬다. 그들은 ‘신음’소리를 통해 조선사람임이 밝혀지면 ‘들것에 싣고 가다가도 버렸다.’ 생각이 멈춰버린다. 순간, 순간, 소름은 ‘사시나무 떨 듯’ 나의 온몸에 자리매김 했다. 그리고 분노는 한 폭의 천이 되어 나의 온마음을 휘감았다.

조국(祖國)? 그렇다. 제정신인들 어떠하랴, 미쳐간들 어떠하랴. 내 조국을 품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요 며칠 생각의 끝마다, 끝마다 매달린 「군함도」.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군함도」를 가슴에 안고 나선 아침산행의 북한산 둘레길. 이미 마음과 가슴은 분노로 너덜너덜해졌다.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다. 우산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 옷이 흠뻑 젖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이라는 국가도 우산처럼 이랬을 것이다. 그 당시 국가는 허울이었음에 틀림없다. 국민의 고통을 막아주지 못하는 국가, 억수의 빗속에 뒤집어진 비닐우산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은 비닐 우산, 국민들의 가슴에는 그 국가를 조국이라는 단어로 움켜 쥐며 발버둥쳤을 것이다. 마지막 자존감을 지키려고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이 웬일인가! 현 일본과의 문제에 있어서 발견된 필자의 마음, 냉정하지만 평온 그 자체다. 한 지인과의 통화에서다. 물론 달라진 시대와 상황, 그 덕분이다. 그 지인은 현 맞닥뜨린 일본문제에 분노를 뿜어 내고 있었다. 그 순간 필자는 말했다. “그 마음 이해해요. 그러나 열낼 일이 아닙니다. 분노로 해결할 일이 아니지요. 이럴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뭘 걱정이요. 지금 우리는 품고 있는 조국이 있지 않소. 그 과거, 일제강점기와 달리 우리의 현실은 ‘천양지차’요(책 군함도의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그때를 생각해 봅시다. 주권도 없이. 이럴수록 내부적으로 ‘총질’하지 말고, 말을 아끼며 지혜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정부에 뒷심을 만들어 주어야지요” 나는 이렇게 지인을 위로 했다.

그렇다. 이 상황에 우리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정말 남사스러운 행태다. 여기에 공인들의 선동적인 언어? 이 또한 가벼운 처신이다. 물론 그들의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강하게 되고 싶으면, 약한 듯한 감정으로 시작하여야 한다’는 노자의 철학을 참고해 보자. 이것이 바로 ‘습명의 규칙’이요 ‘자연의 법칙’이다. 그리고 ‘교토삼굴’을 상기해 보자. 이젠 말을 아끼고 지혜를 모을 때다. 무엇보다도 이참에 우리도 정부를 한 번 밀어보자. 뒷심을 실어주자는 의미다. ‘초당’적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정부도 현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의 정치인들, 그리고 원로들의 조언에 귀를 열어야 함이 우선이다. 정치인들의
’초당적 자세‘를 주문하기 전에 정부의 귀와 입부터 초당파(超黨派)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품에 안은 조국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를 품어줄 조국(祖國)이 있다.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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