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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만언봉사(萬言封事)
[유연미 칼럼] 만언봉사(萬言封事)
  • 유연미 논설위원
  • 승인 2019.08.14 10:31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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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논설위원
유연미 논설위원

‘서해맹산(誓海盟山)’, 이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첫 공식적인 소감의 일부다. 핵심이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의 약어로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라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의 한시 ‘진중음(陣中吟)’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시의 요지, 물론 충무공의 ‘우국충정’이다. 조 후보자 역시, 만약 법무부장관이 된다면, 서해맹산의 정신으로 장관의 소명을 다하겠다는 마음의 전언이다. 당연지사다. 장관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 마음,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하지만 조 후보자가 서해망산을 언급할 때, 필자는 이이 율곡을 떠올렸다. 왜 하필 이이였을까?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다. 창가에는 물보라가 일고 있다. 옆 창에 설치해둔 왕골 태양가리개, 여기저기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요란하다. 태풍의 영향이다. 그 모습이 마치 심란한 국민의 마음처럼 다가왔다. 그 태풍의 영향은 태양가리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늘 우리의 가슴에 함께함이 우리의 현실이다.

율곡이 가슴에 와 닿은 까닭은? 바로 만언봉사(萬言封事)가 생각나서다. 이는 이이가 왕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그 당시 이미 여러 번의 사화(士禍)가 있었기에 상소문을 올린다는 그 자체가 위험천만한 것은 자명한 사실,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상황이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이는 자신의 고뇌와 성찰이 함께한 지혜백서를 올렸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만든 직간(直諫), 진정한 우국충정이 돋보이는 그의 용기다. 불소지신(不召之臣)의 역할이었다. 선조의 재위는 수난의 시대였다. 밖으로는 왜적의 침입, 안으로는 붕당정치(朋黨政治)로 난세였다. 어쩌면 요즘 우리의 현실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이이는 통치자의 정치철학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렇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다. 핵심이다. 만언봉사는 모든 분야를 망라한 ‘정치개혁론’이다. 그 중 인상적인 한 요지를 발췌해 본다

‘사私를 버리고 공公의 입장에 서라’, 선조에게 소위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여기에서 ‘사를 버린다는 것은 어린애의 버릇을 버리는 것이고 공에 선다는 것은 어른의 입장에 서는 것.’ 고 김흥호 교수의 주장이다. 김교수는 덧붙인다. 사의 어린 세계는 가까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별된다. 그러니 ‘분열된 세계요, 이중의 세계’라고 강조한다. 이에 반해, 공의 어른세상은 친한 사람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 따로 없다. 그러기에 분열되지 않은 통합의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통치자는 한 나라의 큰 어른, 때문에 미우나 고우나 국민을 향한 마음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처럼 말이다. 통합을 위한 길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군주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이이는 선조에게 주문한 것이다. 얼마나 담대한 요청인가!

지난달 문재인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절실함을 호소했다. 불교지도자 오찬 간담회에서다. “제일 큰 어려움은 역시 국민 통합 문제”라고 언급한 문대통령, 그 마음 오죽하랴. 십분 이해한다. 난화이진의 시 ‘주천난(做天難)’이 생각나는 까닭이다. ‘하늘이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첫 소절이며 이 시의 요점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대통령 노릇하기, 정말 어렵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 여기에 지역감정의 골이 깊은 유별한 나라, 무엇보다도 남북문제로 이념싸움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난망 하기 그지없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난세 중에 난세, 무엇보다도 국민통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심각하다. 이와 같은 난국에 조국 후보자의 지명 소감은 문대통령을 감복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마음일 게다. 하지만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한마음이 우선이다. 대통령의 호소가 절절한 까닭이다. 여기에서 선조에게 어른이 되어 달라고 주문한 이이의 지혜로움, 돋보이는 순간이다. 그렇다. 답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기에 충신은 용비어천가 대신, 직간의 담대함이 필요하다. 절대적이다. 그것이 주군을 성공하게 하는 길이요, 나라가 사는 길이다. ‘文의 남자’, 조국 후보자가 명심해야 할 이유다.

*참고한 책: 『사색』, 김흥호, 제 81호, 1977, 사색출판사


yea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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