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나 칼럼] 아티스트와 자본주의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 기사승인 : 2019-09-24 14: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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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나하나 인드라망 아트 컴퍼니 대표

'가난한 아티스트의 작품이 좋다'

현대사회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발발은 거의 19세기에 들어 보편화 되어 사실상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면 자주 듣는 얘기중 하나가 바로 ‘전업 작가의 작품이 좋다.’ 는 말인데, 그 타당성은 물론이며 삶의 전부를 작품 창작에 올인한 작가의 작품이 좋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작가들이 자본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예술과 자본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물론 예술가 역시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예술 활동에 있어 자본은 엄청나게 큰 결과의 차이를 초래한다.

사실 창작행위 자체가 자본이 넉넉해야 가능한 활동이다. 한 아티스트가 삶에서 생계를 걱정하는 생업 작가의 삶을 산다고 가정 했을 때, 그는 당장 생계부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창의적 활동에 제약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술가가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이 넉넉함을 의미한다. 그 무엇도 걱정할 부분이 없을 때, 그들은 자유로운 창의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창작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걱정이나 신경 써야 할 부분들에 투입되는 그들의 에너지를 최소화 하고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집중하며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 결과 역시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또한 미국의 위대한 창작가에 대한 리서치 결과로 그들의 뛰어난 창작에 대한 원천은 ‘산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장 삶을 해결해야 하는 생업작가들에게 ‘산책’은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나 호사처럼 느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아티스트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역시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향하며, ‘폭로된 상품으로써의 예술’을 지향하는 방법으로 예술가에게 있어 자본의 중요성을 노골적으로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예술성’임은 물을 이유도 없겠지만, 예술 작품에 있어 투자 가치로써의 자본주의가 연결된 ‘시장가치’를 추구하는 것과,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 또한 한편의 시각으로는 자본의 중요성을 중심에 둔다는 맥락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란 그저 예술가 개인의 자아실현을 도와주는 순수한 매개체로 보기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 이유는 이를 완성시키는데 있어 경제적 토대가 없었다면 그 무엇도 이뤄지지 않는 현실성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을 받아들이는 여부는 예술가들의 몫이다.

그러나 예술의 순수성을 바탕으로, 예술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간 아티스트들의 명성, 창작, 고통으로 창작된 작품이 반드시 자본까지 연결 되어야만 다음 작업으로의 진행이 가능 하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반드시 경제적인 추구가 예술성을 꺾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새롭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들을 볼 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또한 미래까지 시대가 변해도 그 창작에 있어 아티스트에게 자본이란 반드시 필요한 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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