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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의 품격경영] 서비스의 품격, 신사의 품격
[신성대의 품격경영] 서비스의 품격, 신사의 품격
  • 신성대 동문선 사장
  • 승인 2015.05.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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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켓과 매너의 차이

품격은 곧 삶의 질.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도 존중받아 인간 존엄성을 확보하여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소통이다. 그리고 그걸 양식화한 것이 매너다. 따라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 인류 보편적 가치의 공유 없이는 진정한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가 나올 수 없다.

 

▲ 신성대 동문선 사장

관광객 차림으로 각자 륙색을 맨 두 외국인 남자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보고 친구가 “저 두 사람 중 키가 큰 사람은 분명 탈 때 제 륙색을 벗을 거다”라고 했다. 드디어 전동차가 도착하자 키가 큰 그 외국인은 과연 륙색을 벗어 들고 맨 나중에 탔다. 어떻게 알았냐? “키가 큰 사람의 선 자세가 바르고 고개까지 똑바르다. 신사임에 분명하니까!”

많은 한국인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등에 맨 배낭과 륙색을 벗지 않는다. 실내를 비좁게 만들뿐 아니라 남을 치거나 옷을 걸어 당기기 일쑤다. 때로는 어린 아이들의 얼굴을 스쳐 다치게도 한다. 벗기 귀찮고 손에 들기 힘들다? 자기 편하자고 남에게 폐를? 몰염치다. 음주운전과 같이 기본적으로 범죄행위와 동일한 안이한 행위다. 아무렴 선진사회에선 승용차는 물론 버스, 전동차, 사무실, 집, 상점, 식당, 빌딩, 갤러리, 박물관 등 실내로 들어갈 땐 등에 맨 륙색을 벗는 것이 에티켓이다.

한국 문화의 속성을 얘기할 때 우선적으로 ‘빨리빨리’를 꼽지만 기실 ‘빨리빨리’는 ‘하인 문화’로 ‘따라하기’ ‘베끼기’ 문화라 할 수 있다. 앞서가는 주인장은 서두를 이유가 없지만 뒤좇아 가는 하인은 허둥댈 수밖에 없다. 해서 본질도 모른 채 앞 사람 발자국만 보고 따라가며 흉내내기에 바쁘다. 국가적으로도 일본과 미국 뒤를 허둥지둥 대충대충 영혼 없이 따라 하기 바빴다고 해도 틀림이 아니다.

‘라면 상무’ ‘땅콩 리턴’ 사건은 물격 중시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천민자본가의 민낯으로 한국 사회의 일상화된 ‘사소한 일’이 어쩌다‘재수 없게’ 사건이 된 것뿐이다. 일등석에 탈 만한 품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일등석에 앉아서 생긴 일이다. ‘일등’과 ‘일류’를 구분할 줄도 모르는 졸부들이 갑자기 일등석에 앉아 시녀(?)들의 시중을 받자 삼류 막장 드라마 보고 배운 왕(王)질을 해보고 싶은 치기가 발동한 것이겠다. 돈 낸 만큼 갑(甲)질해서 본전 찾겠다는 졸부 근성이겠다. 물론 만만한 국적기(國籍機), 한국인 승무원한테다. 선진국 비행기, 서양인 승무원이었다면 오금도 제대로 펴지 못했을 것이다. 서비스에도 품격이 있어야지만 서비스를 받는 데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빨리빨리‘ 문화에는 품격이 없어

작년 8월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떠나기 전 “한국은 아직 품격을 잃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기실 그건 그만큼 우려스럽다는 완곡한 표현이자 당부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귀한 말씀조차 무색하게 만든 온갖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흔히들 ‘드라마 같다’고들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땅콩 리턴’ 사건은 설마 재벌 2,3세들이 한국 막장 드라마를 보고 경영수업을 받은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성공 자체가 목적이었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성공적인 삶인지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반증이겠다. 하여 많은 이들이 성공한 그 순간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간신히 정상에 기어올랐으나 금선탈각(金蟬脫殼)으로 날아오르질 못하고 꾸물대다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꾹 참아왔던 천민 근성이 도진 때문이다.

굳이 큰 사건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길을 가거나 전철 안에서 시비 붙는 꼴불견을 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심지어 복잡한 도심의 차로 한복판에서도 농경사회시대 외길 논두렁 위에서 다투듯 차를 세워두고 싸우는 광경도 흔히 본다. 대부분 시시콜콜한 것으로 시작된 감정싸움이지만 시비의 본말을 떠나 반말, 쌍욕, 멱살잡이로 치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고속도로 상에서 보복운전도 서슴지 않는다.

왜 이럴까? 한 마디로 말해 품격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품격은 염치에서 출발한다. 염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사회 최고의 방부제다. 작금의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부패한 것은 바로 이 염치의 부재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은 염치의 침몰이며, ‘땅콩 리턴’은 무(無)매너, 무덕(無德), 무치(無恥)의 전형을 보여준 사건으로 서비스 매뉴얼 에티켓과 짝퉁 글로벌 매너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근본을 숨길 줄도 모르는 한국의 천민 상위층들

한국인들은 매너와 에티켓, 의전(儀典)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그냥 예절(禮節)이란 단어로 표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에티켓이란 사회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절이지만, 매너는 사회적 적극적 교섭문화다. 에티켓은 자신에 대한 방어책이지만 매너는 존중과 감동을 통한 상대와의 진정한 소통이다. 에티켓은 최소한의 규칙이지만 매너는 큰바위얼굴 같은 주인되기 품격이다. 규칙이나 규정은 매뉴얼화할 수 있지만 매너는 한계가 없는 내공이다. 에티켓을 지식에 비한다면 매너는 지혜와 같은 것이다. 물론 지식 없는 지혜는 한계가 있지만, 지혜롭지 못한 지식 또한 얼마나 답답한지는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매너를 지적하면 많은 이들이 ‘설마, 국가 최고기관인데?’ ‘아무렴 글로벌 기업인데?’라며 회의적으로 항변한다. 대개 의전과 매너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전은 말 그대로 매뉴얼이다. 매뉴얼대로 하면 그만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아무나 그 자리에 앉혀도 다 해낸다. ‘땅콩 봉지’처럼 매뉴얼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만 따질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매너는 철저히 개인기다. 매뉴얼대로 하고 있어도 어딘지 모르게 품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글로벌 매너를 알고 나면 그게 다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 어때, 잘하고 있는데”라고 하지만 선진국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고 멸시한다. 그저 일을 마칠 때까지 참아주는 것뿐이다.

대한민국 품격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엉터리 삼류 매너 강사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웨이터, 소믈리에, 스튜어디스와 같은 서비스업종 하위기능직 종사자들이 대통령을 비롯한 재벌 오너, CEO들까지 가르친 때문이다. 그러니까 향단이, 방자가 성춘향, 이도령을, 즉 품격에 대해 개념이 전혀 없는 하인이 품격에 기초하여 행동거지를 결정할 대목이 많이 있는 주인님을 가르친 꼴이다. 땅콩 리턴 사건의 발생, 수습, 사과, 구속의 전 과정이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보여주었다. 주인장답게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지 못하고 ‘아랫것’들을 시켜 제가 쏟은 오물을 치우게 하다가 되레 망신살만 더 뻗친 것이다.

예의바른 척 시늉하는 소셜 에티켓이 글로벌 매너가 아니다. 시중에는 ‘글로벌 매너 강좌’가 넘쳐나고 있지만 기실 매너는 누구나 아무 때고 단기간에 쉬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분에 따른 성장 과정과 사회문화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자연스레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에티켓은 학습이 가능한 일종의 직업훈련 매뉴얼이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사회계층의 하부에 속한 서비스산업 하위기능직 종사자가 중상부 손님인 젠틀맨을 대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에티켓이다.

에티켓과 매너, 서로 다른 차원

하인에게 품격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 서빙 업무를 맡은 자들은 우물 안 세계관에 갇혀 있거나 자기 수준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아주 자주적(?)으로 한국화된 소셜 에티켓을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혹은 주인장 매너인 양 가르쳐 왔다. 그들에게서 배운 한국 상류층들의 품격 없음도 그 때문이다. 실은 비즈니스 상대방과의 소통 및 CEO의 리더십과 전혀 무관하다 하겠다.

시중 서점에는 스튜어디스 출신 저자들이 쓴 각종 에티켓, 매너, 자기계발 내지는 성공학 책들이 널려 있다. 언감생심 해외여행을 꿈도 못 꾸던,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았던 지난날, 미모와 영어로 당시 ‘가장 높은 곳에서 상류층을 모시는 특권’을 누리던 스튜어디스에 대한 선망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서비스산업이랄 것도 없었던 때라 세계인에 대한 기내 서비스가 당시로는 최상의 글로벌 매너인 줄 알았으니 스튜어디스란 직업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선망은 당연한 것이었다. 문제는 오늘의 한국에서까지 그 스튜어디스 출신들의 경험들이 글로벌 주류 매너인 줄 인식되고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에티켓과 매너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튼 매너 플랫폼에서 에티켓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비할 수 있겠다. 남을 인정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세계관과 마음자세하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기본 몸자세 및 그것을 실현해내는 세부 동작 믹스들이 곧 에티켓 각론이라면, 그 효과를 증폭시키는 인문학적 도구들을 포함한 사회교섭문화 내공 전반을 매너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매너란 도구(tools)이자 방법(methods), 수단(means)이자 기술(techniques)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한 CEO들이 펜을 갖고 다니는 이유?

서비스와 에티켓, 그리고 매너에 대한 정확한 개념 인식 부재에서 비롯된 이 웃지 못할 난센스를 하나 더 예로 들어 보자.

당장 서점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띈다.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지은이는 오랫동안 퍼스트클래스의 서비스를 맡았던 베테랑 스튜어디스 출신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기계발서이다.
퍼스트클래스 승객들은 필기구를 빌리지 않는다? 성공하는 자는 항상 메모하는 좋은 습관이 있구나! 그가 모셨던 퍼스트클래스 승객들이 하나같이 필기구를 휴대하고 다니던 것을 보고서 나름대로 기특하게 해석한 것이겠다.

개문견산(開門見山)!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완전 착각이다. 스튜어디스에게 펜은 분명 메모용이다. 하지만 퍼스트클래스를 이용하는 CEO든 전용기를 몰고 다니는 오너든 그들이 휴대하고 다니는 고급 필기구는 기실 메모 사항을 기록하는 자신의 저렴한 볼펜의 용도와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다. 물론 그것으로 사인도 하고 메모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진짜 용도는 폼잡기(formful)다. 그들이 비즈니스 상대방들과의 업무협의, 협상 테이블에 고급 필기구를 내보이는 것은 단지 자신의 퍼스널 아이덴티티를 조성 관리하는 데 펜의 유무 자체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자신이 준비성 있는 사람, 해서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다. 둘째, 회의 도중 가끔 받아 적는 시늉을 함으로써 상대방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경청하는 척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받아쓰기하는 줄 알면 오산이다. 기실 CEO 정도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중에 떠오르거나 정리된 자기 생각을 적는다고 보면 된다. 셋째, 여성 CEO들은 왜 빨간색 펜을 가지고 다닐까? 수첩공주처럼 일일이 받아 적기 위해서? 아니다. 빨간색은 곧 여성성을 의미한다. 해서 남성 상대방으로 하여금 ‘레이디퍼스트’, 즉 기사도상 양보 심리를 자극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회사가 돈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 펜을 꺼내 놓는 것이다.

이 같은 비즈니스 메커니즘 본질을 알 리가 없는 저자가 비행기 캐빈 우물 안 자기 세계관으로 판단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CEO들이 필기구를 반드시 휴대하고 다니는 것을 자기들처럼 끊임없이 기내 체크 사항이나 승객들의 요구 사항을 받아 적는 것과 동일시한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정규 비즈니스 회의나 협상이 행해질 리는 없을 터, 스튜어디스로 평생을 근무했다한들 실전 비즈니스 테이블에서 그 고급한 필기구가 사용되는 광경을 단 한번도 구경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비행기 속에서 CEO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고급 필기구만을 보고 이같이 그럴싸하게 해석하는 난센스가 벌어지고, 글로벌 비즈니스 주류 세계 상황에 미개한(?) 독자들은 얼굴이 아주 예쁜, 과거 한때 선망의 대상이던 직업을 가진 바 있는 여성 저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책을 사주는 것이겠다. 고급 만년필로 뭘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스튜어디스는 기업 경영 대표자가 아니고 사내 하위기능직, 글로벌 사회 하이어라키에서 서번트 부류의 일원일 뿐이다! 그들은 사업 주체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행동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스스로 자기 논리를 검증해낼 능력도 애초부터 없다. 그들은 비즈니스 주류 세계에서의 성공이나 자기계발 영역과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특히 비행기 기내라는 아주 좁은 공간에서의 소꿉놀이 레벨 자신의 경험과 세계관을 함부로 비즈니스 원류 주류, 그것도 글로벌 본선무대 세계로까지 확장해대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그들이 태생적 한계와 오류 가능성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달리 비즈니스 매너 내공의 본질을 캐치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같이 외양적 모습(결과)에서 결정 요인(과정)을 경솔히 추측, 추론하는 오류!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의 한국적 자기계발 및 처세술!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경영학 내지 처세학 강사들이 한결같이 저지르는 죄악에 가까운 치명적인 실수이자 한계다.

‘너부터’가 아닌 ‘나부터’가 주인장 마인드

매너란 갖추면 좋고 안 갖춰도 그만인 겉치레가 아니다. 남이 하면 따라하겠다며 당장은 귀찮아 외면하는 건 하인 근성이다. 전인적 소통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통 매너는 주인장 매너다. 서비스 하위기능직 종사자들이 시중들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낭만적이고 사적인 한국적 감성 취향으로 포장된, 매뉴얼화된 하위기능직 서비스 에티켓을 비즈니스 매너인 양 착각하고 글로벌 무대에 올랐다간 바로 죽음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는 하인들이 노는 곳이 아니다. 주인장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무대다. 그곳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다듬어진 고품격 매너로 승부하는 전장(戰場)터다.

에티켓 실수로 인한 결례는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무매너로 인한 ‘품격 낮음’은 영원한 낙인이 된다. ‘땅콩 리턴’ 사건처럼 그 여파가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치명적이다. 하여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으나, 기실 그만큼 디테일하지 않고는 결코 글로벌 큰물에서 놀 수가 없다. 그동안 배운 국내 사교모임용 에티켓 수준의 매너, CS강사들에 의한 처세술 수준의 성공전략은 다 잊고 글로벌 비즈니스 전사로서 갖춰야 할 진품 글로벌 매너 기본기부터 철저하게 익혀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땅콩 봉지’사건은 대한민국이 아직도 후진국 시절의 ‘품질 향상’ 수준에 맴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 회사 직원부터 정성으로 대해야 그 정성이 고객에게 전해질 것이 아닌가? 서비스에도 품격이 있다. 호통 쳐서 만든 매뉴얼 서비스에 무슨 정성이 있으랴! 글로벌 신사들은 그런 억지 서비스의 불편함을 금방 알아차린다.

품격 없이는 명품도 없고 명가도 없다. 쩐(錢)질로 일등은 할 수 있어도 일류는 못 된다. 졸부와 신사의 차이다. ‘일류’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면 주인장 마인드로 비즈니스 매너를 익혀야 한다. ‘빨리빨리’의 경쟁력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품질이 아니라 품격을 팔아야 한다. asiatime@asia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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