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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22일 Tu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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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하루 중 낮이 제일 긴 하지(夏至)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하지(夏至)는 24절기 중 하나로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절기입니다. 태양의 황경이 90도가 되는 하지는 북반구에서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시기로 이날 서울은 14시간 26분 가량 해가 떠있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장마와 가뭄에 대비해야되는 시기로 농촌에서는 추수만큼이나 바쁜 시기였습니다. 하지무렵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반면 유럽 등 서양에서는 '여유롭게 노는 날'이란 이미지가 강한데요. 1년 중 낮이 가장 길기 때문이죠.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은데요. 남유럽에 속하는 이탈리아 '로마'의 위도는 한반도의 최북단인 삼지연군과 같은 위도죠. 때문에 영국 런던의 경우 하지 날 오전 4시 40분께 일출이 시작되고, 오후 9시 20분께 일몰합니다. 하루 중 낮의 시간이 16∼17시간 가량인 것이죠. 스웨덴에서는 하지 축제에 메이폴이라는 기둥을 세우고 그 주변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도는 풍습이 있는데요. 사실 메이폴(Maypole)은 5월 축제에 사용되는 것이지만 스웨덴은 5월까지 추운 곳이 많아 따뜻한 날로 변경되다보니 6월 하지때 이같은 행사를 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아이슬랜드 등에서는 이 시기 하루 종일 태양이 떠있는 백야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세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한 여름밤의 꿈'도 하지 기간 동안의 이야기지요.

[역사속 오늘]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 '테니스 코트의 서약'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789년 6월 20일 프랑스 왕국의 평민을 의미하는 제 3신분의 의원들이 국민의회를 선언합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의회장을 폐쇄하기까지 이르죠. 그러나 의원들은 베르사유 궁전 인근의 테니스코트로 장소를 옮겨 헌법 재정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사건으로 꼽히는 이날 이 사건은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라고 합니다. 앞서 1789년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가 세금 인상을 통해 국가 재정파탄을 막기위해 신분 대표들을 소집해 삼부회를 개최했죠. 그러나 심의의 표결방식을 두고 갈등이 빚어집니다. 제 1신분인 성직자와 제 2신분인 귀족대표가 협력했기 때문이죠. 이에 제 3신분의 의원들은 머릿수 표결을 원했습니다. 제 3신분의 의원들은 자신들이 국민들의 96%를 대표한다며 6월 17일 국민의회를 결성하죠. 또한 자신들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세금도 징수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루이 16세는 국민의회의 해산을 명령하고, 회의당을 폐쇄해 버립니다. 그러나 6월 20일 평민 대표들은 베르사유 궁전 인근의 테니스코트에서 헌법을 제정할 것과, 그때까지 '국민의회'를 해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이에 루이 16세는 무력으로 국민의회를 강제해산하려 했고, 파리 시민들은 국민의회를 지키기 위해 나섰죠. 이로써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게 됩니다.

[역사속 오늘] 연천 군부대 총기난사 '김일병 사건'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 내 육군 28사단 소속 GP에서 8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건의 범인은 당시 20세이던 김동민 일병으로 내무실에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했다고 전해졌죠. 흔히 '김 일병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김 일병은 이후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사형이 확정돼 현재 국군교도소에 수감돼 있습니다. 당시 군 당국은 "내성적인 김 일병이 선임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냈죠. 또한 당시 내무 부조리가 심했던 군대였던 만큼 이 사건으로 인해 군 내부에 만연했던 구타, 갈굼, 가혹행위, 기수열외, 내무부조리 등의 악습 병영문화가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개선이 완벽하게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2013년 김 일병 사건, 2014년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과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등 군 내부의 악습 병영문화와 관련된 사건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죠. 또한 '김 일병 사건'은 이외에도 논란이 많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범행을 인정했던 김 일병이 법원에서 "재판관님 왜 직접적 증거도, 목격자도 없는데 저라고 확신하지죠?"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총과 수류탄의 안전핀 등에서 김 일병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 이에 대해 유가족은 '당시 남북화해 분위기를 조성해나가던 정권에서 찬물 끼얹기를 방지하기 위해, 북한 육군의 포격으로 병력들이 전사한 사건을 은폐조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이에 결국 김 일병 사건은 2017년 3월 25일 12년만에 재수사가 결정돼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수사 당시에도 피의자 김씨는 "내가 저지른 사건이 맞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검찰도 고발 사건을 무혐의 종결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막바지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해졌습니다.

[역사속 오늘] 무패의 명장이자 조선 건국 이성계의 마지막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명장이자 조선을 만든 군주입니다. 사실 태조 이성계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친밀한 위인인데요. 실제로 이성계의 삶은 사극 등으로 많이 제작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성계의 삶은 변방의 무인에서 외적과 맞서 싸우며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끝에 새로운 시대를 열죠. 또한 왕이 된 후에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정도전, 조준 등과 조선왕조의 기반을 닦았지만, 이후 후계자 문제로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반란을 일으키고, 권력에서 밀려나 쓸쓸한 말년을 보낸 끝에 승하하죠. 이성계는 자신의 건국을 도왔던 이방원 등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아닌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이방석을 세자로 삼습니다. 이에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신덕황후 강씨 소생의 두 왕자와 이성계의 오른팔이었던 정도전 등을 살해합니다. 이후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죠. 이후 이방과는 정종으로 즉위했고,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이 왕세자로 책봉됩니다. 그러나 이후 이성계의 넷째 아들 이방간와 이방원이 대립하며 2차 왕자의 난이 발발했죠. 이후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기까지 합니다. 이후 태종은 상왕인 이성계를 수도로 모셔오지만, 이성계는 사실상 자신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이방원을 증오해 함경도로 들어갑니다. 태종은 이성계를 모셔오기 위해 차사를 보내나 이성계가 차사들을 오는 족족 화살을 쏴 죽였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함흠차사라는 말이 생겨났죠. 단 이 야사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성계가 차사들을 죽였다고 하지만, 기록에서 이성계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차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차사를 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많죠. 이후 태종은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항양 천도를 도왔던 무학대사를 보내고, 차마 이성계도 무학대사에게 설득당해 수도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1402년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인 조사의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킵니다. '조사의의 난'이라고 하지만 정황상 실제로 '조사의의 난'은 이성계 본인이 일으켰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조사의는 함경도 지역에서 난을 일으켰는데 신덕왕후 강씨는 친가와 외가 모두 함경도 지역과 상관이 없으며, 이는 물론 친척인 조사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조사의는 1차 왕자의 난에서 관직을 잃고 연금상태로 있었으나, 이후 태종이 이성계의 뜻을 존중해 함경도 지역으로 보내졌죠. 반면 이성계는 함경도가 자신의 근거지였으며 실제로 폐위된 후 떠나온 곳이 함경도였습니다. 또한 당시 이성계는 '금강산을 유람 중'이라고 전해지고 있죠. 또한 '조사의의 난' 이후 처벌을 받은 인물들은 이성계와 관련된 인물들이 많죠. 난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귀양을 간 정용수와 신효창은 승녕부 소속으로 이성계를 함경도로 모신 이들이며, 이외에도 이성계의 수행 내관인 환관 함승복을 포함해 이성계의 수하들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같은 점에서 '조사의의 난'은 조사의가 아닌 이성계가 일으켰다는 견해가 많죠. 그러나 고려의 명장 당시에도, 조선 건국 후에도 단 한번도 전쟁에서 패배해지 않았던 무패의 이성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결국 이성계는 1402년 12월 개경으로 돌아와 이방원과 화해합니다. 이후 이성계는 절이나 온천을 유람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결국 1408년 음력 5월 24일, 양력 6월 18일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역사속 오늘]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972년 6월 17일 미국 워싱턴DC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프랭크 윌스는 건물 최하부 계단 후미진 곳과 주차장 사이 문 위에 테이프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윌스는 문의 열쇠가 잠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청소부가 작업을 위해 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뒤이어 누군가 다른 사람이 테이프를 묶어 놓았을리 없다는 의심이 들자 워싱턴 시경에 불법 침입이 일어났다고 통보하죠. 워터게이트 호텔에는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봄부 사무소가 있었죠. 경찰은 이 사무소에 불법침입한 5명을 현행범으로 체 포합니다. 또한 이들이 3주 전에도 같은 사무소에 침입한 적이 있으며, 재대로 설치되지 않은 도청기를 다시 설치하기 위해 침입했던 것이라고 밝혀지죠. 또한 침입자 중 한 명인 버나드 버커는 E. 하워드 헌트의 백악관 연락처가 적힌 수첩을 지닌 채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헌트는 앞서 당시 미국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재선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었죠. 사건이 커지자 FBI가 직접 수사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로널드 루이스 지글러 백악관 보도담당관은 "3류 절도에 불과하다"며 이들과 백악관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침입자 중 한 명인 제임스 W. 맥코드가 전 CIA 출신으로 대통령 재선위원회의 경비주임이었던 사실이 추가로 밝혀집니다. 또한 이후 그가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내죠. 닉슨 대통령 측은 같은 해 CIA에게 FBI의 사건 수사를 방해하라고 하지만 이미 전 국민과 여론이 집중된 상황이었고, 수사 방해는 실패하게 되죠. 그러나 민주당 대선후보로 조지 맥거번이 선출되고 닉슨 대통령과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워터게이트사건은 점차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나게됩니다. 또한 침입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소에는 기밀문서도 없었기에 민주당 쪽에서도 실질적인 피해가 없다고 했죠. 결국 닉슨 대통령은 1972년 대선에서 승리하죠. 그러나 대선 중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사법절차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1973년 1월 8일 침입자들에 대한 재판이 이뤄졌고, 맥코드와 다른 한 사람을 제외한 침입자 모두 유죄를 인정했죠. 재판에서는 범죄 공동모의, 가택침입과 도청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피고 측은 증언을 하지 않고 유죄를 인정했으니, 보석금을 지불해도 되냐고 말했죠. 이에 당시 연방재판소판사 존 J. 시리카는 화를 내면서 피고에 대해 30년형을 언도하면서 사건조사에 대해 협력하면 판결을 재고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맥코드가 응하며 스스로 대통령 재선위원회와의 관계가 위증이었다고 인정하죠. 이에 재판에서는 가택침입에 대한 혐의만을 유죄로 선고하고, 수사는 확대됩니다. 샘 J. 어빈 주니어 상원의원은 이후 상원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를 설립하고 백악관 직원을 소환해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를 열게 됩니다. 이후 청문회에 나온 알렉산더 버터필드 전 대통령 부보좌관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는 모든 대화가 녹음되는 비밀장치가 있으며, 닉슨 대통령이 사건의 은폐 공작에 관여하는 내용도 녹음됐다는 증언을 합니다. 이에 상원 특별위원회와 특별검사가 녹음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하라고 하지만, 닉슨은 미국에서 행정부 인사들에게 보장되는 비밀보장 특권인 '행정 특권'을 이유로 거절합니다. 1973년 10월 19일 닉슨 대통령은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부 장관에게 명령하지만 리처드슨 법무부 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사임하고, 뒤이어 월리엄 러클하우스 부장관도 해임 명령을 거부하고 사임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로버트 보크 송무차관이 해임명령에 따라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죠. 이에 미국의 여론은 닉슨 대통령에게 등을 돌립니다.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같은 해 11월 17일 닉슨 대통령은 직접 기자회견을 하면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여론은 오히려 걷잡을 수 없도록 악화되기만 하죠. 결국 닉슨 대통령은 특별검사를 다른 이로 다시 임명하고, 녹음테이프를 기록한 문서를 제출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문서는 검열돼 있었죠. 닉슨 대통령은 변호사를 통해 "대통령은 4년 동안은 루이 14세같은 전제적 권한을 누린다. 따라서 그 어떤 사법절차에도 구애받지 않는다"고 항변하죠. 그러나 대법원은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판결을 내립니다. 녹음테이프에서 닉슨 대통령이 CIA 국장에게 직접 FBI의 수사를 방해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탄핵 직전까지 몰렸고, 가결되기 전인 1974년 8월9일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 직을 자진 사퇴합니다.

[역사속 오늘] 세계 최초로 우주로 나간 여성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과 닐 암스트롱은 세계 최초로 우주를 나가고, 달을 밟은 이들인데요. 이처럼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또 한명의 우주비행사가 있습니다.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테레시코바는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입니다. "나는 갈매기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고, 전부 잘 돌아가고 있다." 테레시코바가 우주에서 처음으로 한 말입니다. 때문에 당시 소련에서는 '나는 갈매기'라는 말이 강하고 자유로운 여성을 뜻하는 말로 유행하기도 했죠. 1937년 3월 6일 태어난 테레시코바는 1962년 여성우주비행사 모집공고를 보고 26세의 나이로 응시합니다. 당시 그녀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층)로 타이어공장, 방직 공장에서 일하던 평범한 여성 노동자에 불과했습니다. 단 그녀는 '낙하산'를 취미로 즐겼죠. 당시 우주선의 착륙은 기술적으로 어려워 상공 6000m에서 비행사가 직접 낙하산을 매고 탈출해야했기 때문에 이같은 취미가 그녀가 우주인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후 테레시코바는 1년간 훈련을 받고, 1963년 6월 16일 소련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우주여행에 성공합니다. 총 70시간 50분동안 지구를 48바퀴를 돌고 무사귀환하죠.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이면서도 이전까지 군인이였던 남성 우주비행사와 달리 테레시코바는 민간인이었고, 노동자 계급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강하고 자유로운 여성의 대명사가 됐죠.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그녀가 지구에 도착하자 "여성은 약하지 않다"며 그녀를 추켜세웠다고 합니다. 이같은 성과로 테레시코바는 소비에트연방영웅의 칭호를 받고, 소련 최고회의 의원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중앙위원을 역임합니다. 또한 1977년 엔지니어링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하죠. 테레시코바는 1997년까지 공군에 남아있다가 소장의 계급을 끝으로 은퇴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은퇴를 한 이후에도 국회의원으로 출마했고, 2011년 당선돼 현재 러시아의 국회의원으로 재임하고 있습니다.

[신간] 이유 있는 브랜딩/길고 빛나는 강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이유 있는 브랜딩-아마존은 어떻게 브랜드를 관리하는가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과 기술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브랜딩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브랜딩의 본질을 다룬다. 아마존의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세계 최대의 온라인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기본적인 원칙들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좋은 브랜드가 탄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빠르게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광고 디자인과 UX를 총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6년간 아마존에서 체득한 브랜딩을 풀어내며, 아마존이 단기간에 극적인 브랜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파헤친다. 전 세계 수백 개의 브랜드와 수백만 명의 고객에게 독창적인 브랜드 경험을 선보였던 저자는 아마존에서 경험한 생생한 브랜딩 사례를 제시한다. 또 브랜딩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이자 브랜드 관리의 기준을 화폐, 정보, 충성도, 시간으로 분류해 이를 '브랜드 커런시'라는 개념으로 정립했다. 브랜드 커런시는 브랜딩의 본질이자 브랜드 관리를 위한 프레임워크로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을 만드는 조건이라는 게 저장의 주장이다.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 커런시는 화폐다. 많은 기업이 그들의 수익 상당 부분을 마케팅 예산에 쓰지만, 아마존과 같은 몇몇 회사는 기업 홍보를 우선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비용을 연구개발 예산에 재투자해, 더 많은 종류의 향상된 제품을 통해 장기적인 사업 성공을 이룬다. 두 번째 브랜드 커런시는 정보다. 아마존은 만연해 있는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까? 실제로 아마존에서는 3.5점 이상의 고객 후기를 광고에 포함해서 광고 조회 수와 전환율을 높인다. 또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출발해 거슬러 올라가는 워킹 백워드(Working Backwards) 문서를 작성한다. 저자는 고객을 우선시하는 실질적이고 의미를 담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 브랜드 커런시인 충성도는 브랜드에 타격이 발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아마존은 문제가 벌어지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방식인 COE(Correction of Error, 실수 정정 기록) 작성을 한다. 그리고 문제를 시간순으로 배열하며 근본적 원인을 상세히 기록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신뢰하게 되며 지속적인 소비를 하게 된다. 마지막 브랜드 커런시인 시간은 한정적이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성공한 브랜드는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 즉각적인 만족감을 제공한다. 아마존은 고객의 구매와 검색 기록을 바탕으로 고객이 더 빠르고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맞춤화된 광고를 보여 준다. 또 이틀 내에 도착하는 프라임 무료배송, 두 시간 안에 도착하는 프라임 나우 배송, 직접 사람에게 물품을 가져다주는 풀필먼트 센터의 키바 로봇 등은 고객의 마음속에 아마존이 시간을 절약해 주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어 준다. 이처럼 이 책은 아마존의 대표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겪은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도출해 낸 이 같은 4가지 브랜드 커런시를 깊이 파고든다. ◆길고 빛나는 강 미국이 직면한 마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리즈 무어의 장편소설 '길고 빛나는 강'이 출간됐다. 이 책은 필라델피아의 거리를 순찰하는 한 경찰관이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면서, 도시에 만연한 마약중독으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겪은 고통의 내력을 탐색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강력히 추천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필라델피아 경찰관 미키 피츠패트릭은 24구역, 켄징턴애비뉴의 순찰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그 거리의 민낯에 누구보다 익숙하다. 마약중독자들과, 마약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의 모습에.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케이시 또한 같은 거리에서 일하고 있다. 마약에 중독된 매춘부로. 미키는 거리에서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그것이 동생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시가 사라지고, 거리의 성 노동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미키는 실종된 여동생을 찾는 데 위험할 정도로 몰두하면서 자신의 삶까지 서서히 무너뜨리는데... 이 책은 두 번째 소설 '무게'로 로마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후 차기작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각국에 열렬한 팬을 확보한 작가 리즈 무어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일찍이 작품 내에 스릴러 등 장르적 요소를 꾸준히 도입하고 실험해온 그녀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본격 범죄소설이다.

[역사속 오늘] 영국 민주주의의 시발점 '마그나 카르타'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 왕국에서 귀족들이 국왕을 협박해 '마그나 카르타'에 합의를 받아냅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군주 존 왕은 1204년 프랑스와의 전쟁 중 북부 프랑스에 보유하고 있던 영토를 잃고 맙니다. 이에 존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10년간 수많은 세금을 거두고, 군대를 개혁하고 유럽 본토의 여러 국가들과 동맹을 맺었죠. 그러나 1214년 프랑스와의 부빈 전투에서 잉글랜드 왕국이 패배하면서 존의 영토 회복은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10년간 세금 등 존의 재정정책에 불만을 가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죠. 또한 마찬가지로 왕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런던의 시민들까지 가세했습니다. 귀족들은 런던에 무혈로 입성했고, 전쟁으로 피폐해졌던 존은 반란 귀족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귀족들은 국왕을 처형하지 않았죠. 대신 '마그나 카르타'에 합의하도록 합니다. '마그나 카르타'란 국왕의 권리를 명시하고 존이 서명한 문서로, 왕에게 몇가지의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왕의 의지가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마그나 카르타'는 교회의 자유, 봉건적 부담의 제한, 재판 및 법률, 도시 특권의 확인, 지방 관리의 직권 남용 방지, 사냥, 당면한 애로 사항의 처리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특히 자유민은 법이나 재판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유, 생명, 재산을 침해받을 수 없고, 왕의 명령만으로 전쟁 협력금 등의 명목으로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죠. '마그나 카르타'는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강조되나 사실상 문서 자체에 민주주의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심지어 '마그나 카르타'에 날인한 직후 존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마그나 카르타'를 무효로 해달라는 청원을 올렸고, 같은 해 8월 24일 교황은 헌장이 무효라는 교서를 내리죠. 또한 제 1차 남작전쟁에서 존의 아들 헨리 3세의 세력이 프랑스와 남작 반군에게서 승리하죠. 단 전쟁 중 존은 이질로 숨지고 맙니다. 이후에도 '마그나 카르타'는 17세기 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죠. 단 '마그나 카르타'는 왕권신수설이 남아있어, 모든 권력이 왕으로부터 나오던 시대에 왕의 권력을 문서로 명시하고 일부 축소시켰다는 점과, 평등사상의 전파와 법치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마그나 카르타'는 17세기에 이르러 왕권과 의회의 대립에서 왕의 전제에 대항해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권한으로 쓰였습니다. '마그나 카르타' 중 "일반 평의회의 승인 없이 군역대납금·공과금을 부과하지 못한다"는 내용은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사용됐고, 또 "자유인은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에 의한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으면 체포 ·감금할 수 없다"는 내용은 재판소에서의 재판요구의 근거로서 크게 이용됐죠. 헌법이란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영국에서도 '마그나 카르타'는 헌법과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짐은 이 헌장을 준수할 것이며 짐의 영속적인 후계자들을 위하여 왕국의 모든 자유민은 짐과 짐의 후계자에 의하여 이들 자유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란 내용은 영국 입헌군주제의 근거로 활용됐습니다. 또한 '마그나 카르타'는 1215년 6월 15일 문서가 아니라 구두합의로 이뤄졌다고 하는데요. 이후 왕의 필경사에 의해 왕의 칙허장으로서 문서로 선서하고 확인됐죠. 이후 1215년 6월 '마그나 카르타'의 사본을 전국에 보냈지만 이들 중 현재는 4부만이 남아 영국도서관과 링컨 대성당, 솔즈베리 대성당에 있다고 합니다.

[잊지마, 기념일!] 6월 기념일 키스데이? 기말고사 준비하세요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기자가 싫어하는 14일 기념일이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6월 14일 키스데이입니다. 키스데이는 연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뜻에서 키스를 나누는 날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6월 14일이지만, 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포함한 한주간을 의미하는 밸런타인위크 중 밸런타인데이 바로 전날을 키스데이라고 합니다. 키스데이는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와 달리 그 기원을 찾을 수 없는 기념일이기도 한데요.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2004년 신어 연구보고서에서는 '6월 14일을 이르는 말'이라고 명시돼 있기도 합니다. '14일 기념일' 중 '6월'의 기념일이 왜 키스데이인 걸까요? 실질적으로 14일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대부분 '연인'들입니다. 그렇다보니 젊은 10대와 20대들 사이에서야 기념일이고, 사회인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날 중 하나일 뿐이죠. 결혼기념일이나 잘 챙기세요. 반면 6월은 10대와 20대가 모두 바쁜 달이기도 한데요. 10대는 물론 20대 중 학생의 비중이 많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도 키스데이는 기말고사 시기가 겹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고등학교는 6월 말부터 7월까지 기말고사 기간인 경우가 많고, 대학교는 6월부터 기말고사 기간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때문에 10대나 20대 학생들은 연인이 생기면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기념일까지 챙겨야한다는 문제가 생기죠. 키스데이를 만든 사람이 기자와 같은 솔로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집니다.

[역사속 오늘] ABO식 혈액형 발견한 카를 란트슈타이너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A형은 꼼꼼하고, 신중하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B형은 사교적이지만 짜증을 많이내고 자기중심적이다. O형은 열정적이지만, 다혈질이다." 많이 들어본 혈액형 성격론입니다. 사실 이 같은 혈액형 성격론은 과학적으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유사과학인데요. 이같은 ABO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의 항원과 혈액 속 항체가 무엇이냐에 의해 구분됩니다. 간단히 A형은 혈액 속 항체에 A형 항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B는 B형 항원, AB형은 A형 항원과 B형 항원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O형은 A형 항원, B형 항원 모두를 갖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같은 ABO 혈액형은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1868년 6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란트슈타이너는 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취리히·뷔르츠부르크·뮌헨 등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죠. 이후에는 병리생태학을 전공해 1911년 병리학 교수로 임명됐으며, 1922∼1939년 미국 록펠러의학연구소의 병리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란트슈타이너는 1901년 사람의 적혈구가 타인의 혈청에 의해 응집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ABO식 혈액형을 발견했지요. 이후 란트슈타이너는 필립 레빈과 1927년 MN식 혈액형을 발견했고, 이후 1940뇬에는 RH혈액형 인자를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란트슈타이너는 소아마비 초기에 유효한 혈청을 개발하고, 매독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이같은 업적으로 란트슈타이너는 1930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했죠. 2004년 국제적십자사연맹, 세계보건기구,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 등에서는 이런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업적을 기리고, 또 헌혈의 중요성을 전하며, 헌혈자에게 감사하기 위해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생일인 6월 14일을 세계 헌혈자의 날로 지정합니다.

[신간] 부의 시나리오-'갓건영'이 제시하는 인플레이션 대비 포트폴리오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전 국민 주식시대가 열렸다. 용돈을 모아 주식 투자를 시작한 10대부터 은퇴자금으로 투자하는 60대까지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과열됐던 주식시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이슈를 만난 직후 급격히 빠른 속도로 부의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주식을 시작한 동학개미군단은 지금, 첫 번째 변곡점을 맞이한 것이다. 미국의 재무부장관 재닛 옐런의 금리 인상 발언으로 증시에는 '곧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공포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투자를 해야 한다며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 '영끌', '빚투'를 시작한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1년 전에 수익률을 높여줄 돈 되는 기업을 찾으며 종목 선정에 시간을 쏟았다면, 지금은 다가올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대비해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삼프로TV' 누적 조회수 550만회를 달성하며 거시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저자 오건영이 '금융천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금융위기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새로운 대응책이 쏟아져 나왔고, 매일 밤을 새워 경제 데이터를 분석했다. 경제 기사를 해석하고, 정책을 곱씹다 보니 뒤에 숨겨진 정부의 의도와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코로나19는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은 경제부양책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로바로 실행되기까지 했다. 전문가조차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저자는 수십 년간 온갖 부침을 겪었던 실전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든 '4가지 투자전략'을 소개한다. 저자의 작년 저서 '부의 대이동'이 수십만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쉽고 친절한 설명'이었다. 저자에게는 '여의도 1타강사'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필요한 내용만 쏙쏙 빼내 핵심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 투자를 접하는 사람도 기초부터 탄탄히 다질 수 있도록 금리, 환율, 채권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 그래프를 추가해 거시경제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도록 했고, 관련된 경제 기사를 수록해 독자들이 경제 독해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중요한 내용은 삽화를 그려서 이해도를 높이고 내용이 각인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새롭게 제안하는 4가지 부의 시나리오는 구성도 간단하다. 경제를 '성장'과 '물가'라는 두 개의 축으로 나눠서 4분면을 만들고 이것을 투자 포트폴리오로 만들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물가'는 높은지 낮은지 구분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성장이 더디고 금리가 낮은 시대라면 '저성장·저물가 시나리오'라고 보면 된다. 만약 금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면? '저성장·고물가 시나리오'를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4가지 부의 시나리오'를 이용하면 이처럼 경제 상황이 뒤바뀔 때도 손쉽게 투자전략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시나리오가 펼쳐지기 전에 재빨리 포트폴리오를 바꿔놓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시나리오별로 주식, 채권, 원자재나 금 같은 대체자산의 강세와 약세를 정리해 실적에 쉽게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주식, 채권 자산군별로 투자 대상들을 잘게 쪼게면 보다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저장의 설명이다. 고성장·고물가 시나리오에서는 주식이 강세지만,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쪽이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가는 것과 같은 논리다. 채권도 마찬가지로 단기채, 중기채, 장기채, 투자등급 회사채, 이머징 국채처럼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진 채권이 있어서, 포트폴리오를 보다 풍부하게 다방면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저자는 "핵심은 '다음은 어떤 시나리오로 움직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포트폴리오를 따라하는 것보다, 경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 그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의 올바른 성정체성 확립 위한 안승남 구리시장의 뚝심 '구리청소년성문화센터'

[아시아타임즈=송기원 기자] 최근 사회적 문제로 성(性) 비위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안승남 구리시장은 청소년 때부터 바르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우리 미래인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에 잘 안착하고 적응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안 시장은 “인터넷 발달로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성범죄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기에 지방정부인 구리시가 책임감을 갖고 성장기인 아동∙청소년들이 자신의 몸을 아끼고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차원에서 탄생한 것이 구리청소년성문화센터이다. 구리시는 지난달 26일부터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 지원 및 복지 증진을 위해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본격적인 프로그램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 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미래 주역인 아동∙청소년들의 건전한 성(性) 가치관을 정립하고,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주안점을 두고 전문가들의 강의와 지도하에 내실 있게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문화센터가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구리시는 안 시장의 강력한 추진을 통해 지난 2019년 12월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설치∙운영 조례를 제정했고 이어 지난해 공간디자인 및 전시 콘텐츠 개발 용역과 12월 설치 완료에 이어 올해 정규 프로그램이 운영되기까지 1년 4개월의 산고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부모들이 반대도 있었다. 타 성문화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외설적이고 조기 성애화를 부추기는 교육내용과 다양한 성을 인정하는 교육내용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안 시장은 이런 우려에도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성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토대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들로 교육할 수 있도록 센터 설치를 추진해 나갔다. 이 기간 동안 안 시장은 각계각층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관내 학교장, 보건교사, 성교육 전문가, 학부모 대표, 시의회 의원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정상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총 7회에 걸쳐 운영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등 학부모들과 공감대를 넓혀나갔다. 이러한 안 시장을 비롯한 구리시 공무원들이 노력으로 센터를 반대했던 학부모들이 센터 필요성과 교육내용에 대해 공감하며 오늘에 이르는 성과를 올리게 됐다. 센터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 모두가 알차다는 평가이다. 세부적으로 탄생 과정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생명’부터 우리 몸에 대해 알아보는 ‘건강한 나’, 사춘기를 맞이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두근두근 사춘기’,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나를 지켜요’, 무분별한 음란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나의 밝은 성’ 까지 총 5개 과정으로 매우 관심 있고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에 운영되고 있는 일부 학부모들이 반대했던 것이 타 성문화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외설적이고 조기 성애화를 부추기는 교육내용과 다르게 다양한 성을 인정하는 교육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이다. 또한 청소년 성교육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작년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 기본과정을 운영하여 17명의 수료생을 이미 배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구리시는 앞으로도 청소년 성교육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과정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예정으로 이는 청소년 성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센터 위치와 시설도 시민 친화적으로 구성해 시민들의 호감을 높이고 있다. 센터 교육 공간은 청소년들의 이용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접근성이 좋은 구리시청소년수련관 2층에 설치했다. 센터 내 시설은 3곳의 실내 교육장과 1곳의 야외교육장, 그리고 상담실과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장별로 약 10여명을 수용할 수 있어 단체별∙토론 교육이 가능하도록 조성했다. 최초 (성)문화 프로젝트를 우려했던 수택동 주민 김 모(45세, 여)씨는 “청소년 (성) 문화교육이 질적으로 내실성이 없고 일회성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에 걱정과 우려를 했다. 그런데 아이와 교육을 함께 받아보니 교육내용이 알차고 내실이 있었다”며 “이런 교육을 진행해준 시장님과 공무원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안 시장은 “청소년 눈높이에 적합한 선제적인 성교육으로 언제 어디서든 위기 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성인지적 콘텐츠의 개발과 청소년 심리정서에 부합한 각종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여 청소년들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여 꿈과 희망이 울려 퍼지는 ‘구리, 시민행복 특별시’ 구현에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구리청소년성문화센터 ◇ 추진과정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설치운영 조례 제정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공간디자인 및 전시컨텐츠 개발 용역 - 2020년 5월6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위원회 구성 - 2020년 10월5일~11월18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설치 공사 - 2020년11월6일~12월12일 구리시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 기본과정 운영 - 2020년 12월22일~12월29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진입통로 개선공사 - 2021년 2월24일~3월24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시범 프로그램 운영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위원회 개최 (총 7회)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정규 프로그램 운영 ◇ 설립 후 업적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 기본과정 운영 (수료자 17명 배출) 청소년성문화센터 시범 프로그램 운영 (소중한 생명 외 4개 프로그램, 32명)

[역사속 오늘] 일본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2008년 6월 8일 오후 12시 35분께 일본 아키하바라 주오도리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합니다. 2톤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을 덥친 후, 맞은 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와 부딪친 후 멈췄죠.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경찰관과 행인들은 트럭에 치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다가왔죠. 이때 트럭에서 내린 운전자가 등산용 나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일본 아키하바라의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7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당합니다. 트럭을 운전한 가토 토모히로는 인력 파견업체 직원으로 당시 나이는 25살에 불과했죠. 그는 '생활이 피곤해서', '삶에 지쳐서'란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당시 가토는 범행 9일전 일하던 자동차제조업체에서 정리 해고를 통보받고, 처치를 비관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범행 4일전 가토는 회사에서 자신의 작업복이 보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한바탕 어지럽힌 뒤, 무단으로 조퇴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자동차제조업체 측은 정리해고 통보를 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죠. 가토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빙자한, 상습적인 구타 등의 아동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좋은 성적을 받았으나 고등학교 무렵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단기 대학에 입학했죠. 또한 가토는 제대로된 직장을 가지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습니다. 가토는 일본의 인터넷커뮤니티에 1000건이 넘는 게시물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범행 전 새벽부터 범행 20분 전까지 인터넷커뮤니티에 자신의 범행을 예고하기도 했죠. 일본 법원은 가토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2015년 2월 2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하고 1·2심과 같은 사형을 확정지었죠.

[역사속 오늘] 탈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프랑스의 탈인상주의 화가 외젠 앙리 폴 고갱은 1848년 6월 7일 프랑스 파리의 클로비스 고갱과 알린 샤찰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갱의 아버지 클로비스는 오를레앙에서 이주한 사업가 집안 출신의 자유주의 언론인이었고, 어머니 알린은 인그레이빙 작가 앙드레 샤찰과 사회주의 활동가 플로라 트리스탕의 딸이었죠. 그러나 1850년 클로비스는 신문에 낸 기고로 인해 프랑스 당국에 추방령을 받았고, 페루로 가던 중 심장마비로 숨지고 말죠. 페루에 있던 고갱의 외종조부는 페루의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정치인이었고, 고갱 가족을 환대했지만 1845년 실각하면서 고갱 가족은 결국 파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린은 파리에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죠. 고갱은 지역 학교를 옮겨다니다가 오를레앙의 리시 잔다르크 학교를 졸업하고, 상선해병을 위한 도선사를 하다가, 프랑스 해군에 입대해 2년동안 복무합니다. 이후 1871년 고갱은 23세의 나이로 지인이었던 구로타프 아로사의 소개로 증권회사에 취직합니다. 이후 고갱은 증권 중개인으로 성공하며 11년동안 근무하죠. 고갱은 증권 중개인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1882년 파리의 증권시장이 붕괴하자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고갱은 갑자기 전업화가로 직업을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증권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 된 고갱은 취미로 그림을 기렸고, 그러면서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와 친해지기도 했죠. 1881년과 1882년, 고갱은 '보지라르의 채소밭' 등의 그림을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전업 화가가 된 고갱은 이후 차츰 인지도를 쌓으면서 활동했고, 피사로와 폴 세잔 등과도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갱은 조르주 쇠라의 신인상주의나 점묘법에 좋지 않은 평가를 했고, 쉬라를 인상주의 전람회에 초대했던 피사로와 대립하며 결국 둘은 절교하게되죠. 이후 고갱은 화가 찰스 라발과 함께 상징주의를 내세우고 퐁타벤 화파를 결성했습니다. 고갱은 유럽의 정통적 화풍인 인상주의는 상징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 부족하다고 여기고, 아프리카나 동양의 미술에 끌리기 시작했죠. 이어 고갱은 민속예술과 일본의 풍속화풍인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의 화풍에서 생상을 보다 원색적으로, 외곽선을 두텁게하며 종합주의로 발전시킵니다. 이어 고갱은 1887년 파나마를 방문한 뒤, 찰스 라발과 함께 마르티니크의 생피에르에서 체류했습니다. 이후 마르티니크에서 그린 그림은 미술상 아르센 프와티에의 갤러리에 전시됐죠. 프와티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와 거래를 하고 있었죠. 테오가 고갱의 작품을 산 것을 계기로 고갱과 고르는 친분을 맺게 됐고, 테오의 주선으로 아를에 있는 고흐의 노란 집에서 둘은 같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흐와 고갱이 같이 작업한지 9주가 흐르자 고갱은 갑자기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옵니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의 편지에는 고흐가 고갱을 비난했다고 적혀있었죠. 또한 그날 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릅니다. 다음 날 고흐는 아를의 한 정신병원으로 가게되고, 고갱은 아를을 떠났습니다. 둘은 생전 다시는 만나진 못했지만 연락은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고갱이 1889년 제작한 '자화상, 머리 모양의 물병'은 당시의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역사 속 오늘] 로버트 F. 케네디 암살사건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968월 6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앰버 시더 호텔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납니다. 미합중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는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앰버시더 호텔 무도실에서 연설을 하죠. 이후 호텔 키친에서 일하는 성원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무도실을 나왔습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당시 호텔 주방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던 16세 소년 후안 로메로와 악수를 했고, 그 순간 요르단계 이민자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이 총격을 가합니다. 관중들로 꽉 찬 통로에서 시르한은 8발을 쐈고, 이 중 3발을 맞은 로버트 케네디는 그 자리에 쓰러졌죠. 로버트 케네디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다음날 새벽 1시께 사망합니다. 시르한은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국적의 이민자로써 당시 로버트 케네디가 친이스라엘적인 행동을 한 것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후 재판에서 시르한 은 사형을 선고받으나,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형제가 폐지되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됩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사건은 미국에 큰 충격이 됩니다. 그의 형인 존 케네디 역시 암살을 당했고,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죠. 또한 당시 미국의 진보 진형인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기에 미국의 정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한편 2001년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버트 케네디의 탄생 76주년을 기념하면서 미국 법무부 청사의 이름을 로버트 F. 케네디 빌딩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역사 속 오늘] 1989년 중국 천안문 유혈진압 사태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989년 6월 4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펼쳐진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중국 정권이 유혈진압합니다. 중국 정부는 '1989년 춘하계 정치 풍파'라고 지칭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천안문 사태', '천안문 항쟁'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죠. 또는 '중국의 피의 일요일', 베이징 대학살', '천안문 민주화 운동', '1989년 톈안먼 광장 저항'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개혁개방이 추진됐으나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 관료의 부패와, 인플레이션, 실업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전 문화대혁명의 사회적 분위기가 완화되면서 범죄가 증가합니다. 이에 당시 중국 정부 당국은 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심해졌죠. 이에 당시 당시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의 심복인 후야오방 당총서기는 민주화 요구와 부정부패 척결에 동조적으로 나왔죠. 그러나 후야오방은 1989년 정치국 회의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4월 15일 숨지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베이징에서는 지식인들과 대학생,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죠. 시위가 점차 격렬해지자 당시 덩샤오핑은 4월 26일 북경의 시위를 통제하라고 지시했죠. 그러나 시위는 누그러들지 않았습니다. 5월 15일 당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베이징을 방중하기로 했으나, 천안문에는 시위대가 가득했죠. 이에 5월 20일 정부는 베이징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6월 3일 밤 시위대를 무력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이날 밤 10시 베이징 동서에서 진입한 중국군 제 38집단군과 공군 제 15 공수부대, 육군 제 39집단군 등 중국 군은 전차와 총기를 동원한 무차별 발포로 군중을 강제해산시켰죠. 이윽고 4일 광장에 남은 시위대에게 정부 측은 협상을 제시합니다. 시민들에게 목숨을 담보로, 시위 지도층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자 시위대는 결국 해산하죠. 그렇게 1989년 시위는 마무리됩니다. 이어 5일 시위가 마무리되고, 천안문 광장에서 59식 전차 18대가 전개됩니다. 이때 이 전차를 막아서는 한명이 사람이 있었습니다. 흔히 '탱크맨'이라고 불리며 6.4 항쟁의 상징이 된 이 사람은 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양손에 검은 비닐봉투와 옷가지를 든 채 전차 앞을 막아섭니다. 이에 전차가 방향을 바꿔 옆으로 지나가려고 하자, 그는 다시 그 앞을 가로막죠. 이후 시민들이 그를 대려갑니다. 이 사람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당시 영국의 언론 선데이타임스는 탱크맨을 왕웨이린이라고 보도했지만 이조차 확실하진 않죠. 1990년 장쩌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ABC방송과 기자회견에서 앵커의 질문에 "그가 사형 당하거나, 탱크가 그를 깔아뭉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그가 대만으로 망명했다는 설과, 이름을 바꾼 채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설, 혹은 당시 처형을 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오리온 직원, 인도출장 중 사망…사후 코로나19 확진판정

[아시아타임즈=박고은 기자] 인도로 출장을 떠난 오리온 직원 1명이 코로나19로 인해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오리온에 따르면 인도 라자스탄주에 위치한 오리온 공장으로 장기출장 중이던 직원 A씨가 9일(현지시간) 현지에서 숨을 거뒀다. A씨는 사망 전 감기 증상이 있어 약을 복용했고 자가진단키트를 통해 검사한 코로나19 진단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사망 후 실시한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유해는 앞서 15일 국내 항공편으로 송환됐으며, 발인은 이날 진행된다. 오리온 관계자는 "인도공장에 파견된 직원은 A씨 포함 B씨, 주재원 C씨 총 3명이었다"며 "B씨와 C씨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오랜 기간 함께 근무해온 임직원들의 충격이 매우 크다"며 "회사 측과 전 임직원들은 상심이 클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고인이 이룬 업적과 성과를 기리며 예우를 다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오리온은 지난 2월 인도공장을 준공하고 '초코파이' 현지 생산을 본격화했다.

[아하 인터뷰] 키위뱅크의 반란 "데이터 플랫폼 앞으로"

[아시아타임즈=신도 기자] "키위뱅크의 최종 목표는 디지털보다 더 세분화된 '데이터 플랫폼'입니다. 변화는 현재진행형입니다." 플랫폼 '키위뱅크(KiwiBank)'의 목표를 두고 이선호 KB저축은행 ICT본부장은 간략하게 말했다. 그는 KB저축은행의 '플랫폼 전문가'로 키위뱅크 개발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플랫폼 구축에 참여하고 있다. KB저축은행은 지난 1분기 6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88% 가량 증가한 실적으로, 1분기 기준 지난해까지 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넘지 못했던 것을 비교하면 상당한 성장이다. 총자산도 처음 2조원을 넘기며 10위권 뒤를 바짝 쫓고 있다. KB저축은행의 성장 뒤에는 키위뱅크가 있다. 상징색부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키위뱅크는 타사 앱과는 다른 개성을 추구했다. 이 본부장은 플랫폼의 성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 그는 "키위뱅크를 어떻게 하면 차별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을 거듭했다"며 "5년 전 처음 개발 인력 세 명과 함께 시작했던 플랫폼이 지금은 10만명에 가까운 고객을 확보하는 등 성장을 확인하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키위뱅크는 키위와 특유의 '올리브 그린(Olive Green)' 컬러가 떠오른다. 키위뱅크가 구축한 이미지 마케팅의 결과다. 키위뱅크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이 본부장은 "키위뱅크의 전신인 '착한뱅킹'에서 'Kind'를 따오고, 무선기술·모바일을 의미하는 'Wireless'의 앞 두 글자씩을 따왔다"며 "키위처럼 상큼하고 알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중의적인 의미도 함께 넣었다"고 언급했다. 그 덕분에 키위뱅크는 희망사항처럼 소비자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 성장했다. 두달 뒤면 1주년이 되는 키위뱅크는 실적 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성과를 일궜다. 착한뱅킹 시절 3만명 수준이던 이용 고객은 1년도 되지 않아 10만명에 가까운 고객 수를 확보했고, 중금리 대출에서도 우량고객을 중심으로 한 수요를 발굴해 중금리 대출 실적에 기여했다. '키위뱅크 체크카드'나 KB Pay(페이) 등 간편결제와 합종연횡한 상품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둘 다 키위뱅크의 대표적인 제휴 서비스로 앱 내에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키위뱅크 체크카드의 경우 출시 후 1만장에 가까운 발급건수로 고객 인기를 체감하기도 했다. 이 본부장은 실적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실적은 키위뱅크가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해 성장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며 "하지만 우리는 더욱 고객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플랫폼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편의성에 기반한 서비스 구축 사례로 '쉐이커(Shaker) 기능'을 소개했다. 쉐이커 기능은 최근 카카오톡(Kakaotalk) 실험실에서 도입되며 알려진 기능으로, 앱에 들어간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두 번 흔들면 지정한 메뉴로 바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그는 "해당 기능은 키위뱅크가 먼저 선제적으로 도입한 바 있었다"며 "쉐이커 기능으로 입금·송금 등 주요 기능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어 고객은 타사 앱보다 빠른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키위뱅크의 최종 목표는 데이터 플랫폼이다. 데이터 플랫폼이란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의 플랫폼이다. 그는 현재 고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에 비해 세분화되고 발전된 형태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해서는 각 금융권 사이 합종연횡으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현재의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기에는 아직 헤쳐나가야 할 과정이 많다"며 "고객 수도 지금보다 더 확충해야 하고, 어떻게 데이터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B저축은행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키위뱅크는 웰컴저축은행의 웰컴디지털뱅크(웰뱅), SBI저축은행의 사이다뱅크에 이어 업계 내 3위 앱으로 올라섰다. 주요 저축은행들이 각자 디지털 플랫폼을 꺼낸 '플랫폼 홍수' 속에서 건진 값진 성과다. 이 본부장은 "키위뱅크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업계 내 톱 클래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수익도 비대면에서 나오는 시기, 고객과 금융사 모두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데이터 창구'의 역할을 키위뱅크가 추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켓컬리, 퍼플 박스 도입…’과대포장 논란’ 잡았다고?

[아시아타임즈=박고은 기자] "컬리 퍼플 박스가 개당 1만 5000원씩 하더라고요. 처음으로 '마켓 컬리가 컬리 퍼플 박스로 장사를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소비자 A씨) "쿠팡처럼 보냉 백을 무료로 제공한 뒤 수거하는 방식인 줄 알았는데 판매하는 거더라고요. 그런데 전월 30만원 이상 결제한 화이트 등급 이상만 살수 있다고해서 조금 언짢네요." (소비자 B씨) 그동안 '과대포장'으로 소비자들의 눈총을 샀던 마켓컬리가 재활용 포장재 '컬리 퍼플 박스'를 도입하며 만회에 나섰다. 하지만 소비자를 등급으로 메겨 부합하는 고객에 한해서만 주문이 가능한 점, 비교적 높은 단가 등이 소비자 불만으로 터져나오면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선식품 위주로 새벽 배송을 진행하는 마켓 컬리는 그동안 소비자들 사이에서 과대포장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냉장·냉동·상온 상품을 각각 따로 택배 포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탓에 큰 택배 상자에 상품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가 하면, 식품을 보호하기 위한 뽁뽁이 등 완충재가 더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택배 하나를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쓰레기 배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특히 전 업계에서 추진 중인 '친환경 경영'과도 엇박자 행보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과대 포장의 심각성은 소비자 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나왔다. 한국소비자원이 이달 1일 발표한 마켓컬리·쿠팡·SSG닷컴 등 이용률이 높은 상위 3개 새벽 배송업체 소비자 조사에서 24.1%가 새벽배송 서비스에서 가장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과대 포장'을 꼽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걸까. 최근 마켓컬리는 재사용 보냉백 컬리 퍼플 박스를 선보였다. 컬리 퍼플 박스는 냉장·냉동 상품을 구분해 약 47ℓ 용량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배송은 샛별배송 주문 후 문 앞에 박스를 놓아두면 배송 기사가 주문한 냉장·냉동 상품을 컬리 퍼플 박스에 담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상온 제품은 종이 포장재에 별도로 담아 배송된다. 문제는 베타 서비스이지만 당장 회원 등급(화이트~더피플) 조건에 부합하는 고객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 타 새벽 배송 업체와 달리 보냉백을 개당 1만 5000원에 구매해야한다는 점이다. 현재 쿠팡 로켓프레시와 쓱(SSG)닷컴은 원하는 고객에게 보냉백을 무료로 제공한 뒤 수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비자 A씨는 "컬리 퍼플 박스의 원가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만 5000원이라는 가격 정책에 기분이 상했다. 처음으로 '마켓컬리가 컬리 퍼플 박스로 장사를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소비자 B씨도 "재사용 보냉백을 선보임으로써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부분은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면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컬리를 이용하는 고객으로써 회원 등급 조건을 나눠 판매하는 것은 언짢은 심정"이라고 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회원 등급 조건을 내걸은 점에 대해 "화이트 등급 이상은 주문 횟수가 많은 고객들이라 피드백 받기가 더 용이하다고 생각했다"며 "현재 진행 중인 시범 서비스 기간이 끝나면 부족한 부분을 확인, 보완한 뒤 전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격 정책에 대해서는 "1만 5000원이지만 고객에게 구매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처럼 종이박스로 상품을 받아도 되거나,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보냉 박스에 상품을 받아도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