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직 칼럼] 적폐청산 정권의 ‘블랙리스트’

강현직 / 기사승인 : 2019-03-12 09: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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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주필
강현직 주필

지난달 자유한국당 의원 60여명이 검찰총장실을 방문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5시간 동안 농성을 벌인 초유의 일이 있었다. 대검청사 앞에서 구호를 외친 뒤 검찰총장 면담을 요구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자유한국당은 “현 정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밝혀내는데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할 것”이라고 검찰을 압박했다.

검찰은 청와대가 환경부 산하기관장 교체를 위해 특정 인물을 배제토록 하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의혹과 관련 전 환경부장관을 출국금지하고 청와대가 보고받고 지시했다는 증거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공단 상임감사 공모과정에선 친여 매체 간부 출신에게 면접 예상 질문표를 건네 사실상 답안지를 미리 보여주고 시험을 치르게 한 것도 밝혀졌다. 국가보훈처도 산하 기관인 보훈복지의료공단과 독립기념관, 88컨트리클럽(CC) 등 3개 산하기관에 담당 공무원들을 보내 해당 기관장들의 사표를 종용하는 등 산자부, 법무부 산하기관들에서도 '사퇴 종용'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난이 나온다. 청와대는 문건이 처음 폭로됐을 때 "아는 바 없다. 문재인 정부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 유전자(DNA)가 없다"고 했다가 환경부가 사퇴 거부 산하단체 임원들에 대해 감사와 고발을 계획했고 이를 장관에게 보고했다는 증거가 나오자 "수사를 지켜보자"고 말을 바꿨다. 나아가 “산하기관 감사는 적법한 감독권 행사이며 공공기관 관리감독 차원에서 작성된 문서는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온 체크리스트”라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표적 감찰과 블랙리스트가 단순히 감독과 관리 차원을 넘어 챙겨줘야 할 사람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를 기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변명이나 불법적 직권 남용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보수 정권 10년간 누적된 인사차별 해소’ ‘개국 공신 배려’ 등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챙겨줘야 할 사람은 많고, 지금도 정부부처와 산하기관, 공기업 등에 무수히 낙하산 인사가 이뤄지고 있으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대기자들이 줄서 있다고 한다.

엽관제가 정착된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3,500개자리가 하루아침에 바뀐다. 가장 큰 전리품인 인사권으로 장ㆍ차관과 고위공무원, 공공기관장, 상임이사 등 고위직을 몽땅 물갈이 한다. 엽관제는 영국 의회가 왕권과 대항하여 친의회주의자 관리를 임명하면서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미국이다.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부분적으로 엽관제를 실시한 후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는 엽관제를 입법화했고 7대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엽관제는 공직의 민중에 대한 해방과 공무원에 대한 인민통제의 역할을 지닌 것’이라며 정부요직에 재산, 학력, 경력 등에서 검증된 인물만 받아들인다는 명분으로 동부지역의 상류층에만 혜택을 줬다.

중앙정부 못지않게 지방 자치단체장의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장 인사 전횡도 심각한 문제다. 광역지자체는 물론 기초지자체까지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경북 포항시의 경우 청소년재단 상임감사·테크노파크 원장·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선임을 두고 자격 논란이 일었지만 집행부 의도대로 임명됐고 경북관광공사 사장 또한 전문성 시비가 있었다. 공기업 기관장 자리는 결국 지방자치 단체장 ‘마음대로’인 것이 현실이다. 또 고위 퇴직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노후 보장 자리가 되고 있으나 지방단체장의 지방공기업 기관장 임면권을 견제할 장치는 찾아 볼 수 없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만연되어 있는 블랙리스트, 권력이 바뀔 때마다 소위 개국공신들에게 자리를 안겨주기 위해 직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찍어내기와 낙하산 인사, 적패 청산을 내세운 정권에서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엽관제를 도입한다고 선언하면 떳떳하지나 않을까.

“지방 공기업 기관장에 취임하자마자 도청에서 파견된 인사가 직원 성향과 근무 태도 등을 분석하고 물갈이 대상을 명시한 자료를 넘겨 줘 무척 당황했다. 결국 특별감사를 통해 직원 상당수를 권고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 한 전직 기관장의 고백이 오늘따라 더 공허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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