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직 칼럼] ‘청와대 정부’의 공무원들

강현직 / 기사승인 : 2019-06-21 16: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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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 주필
강현직 주필

최근 공무원에서 퇴직한 후배와 오랜만에 조촐한 시간을 가졌다. 그가 전하는 요즘 공무원사회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신재민 사무관 사건’ 이후 장·차관이 주재하는 회의에 사무관 배석 관행이 줄어들고 동료끼리도 안전하다는 믿음이 깨졌다고 한다. 업무회의도 다 같이 모이기보다는 국장급과 과장급이 따로 하는 경우가 많고 업무지시도 1대1로 이뤄지며 전화로 지시하면 심지어 녹음까지 한다고 한다.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는 ‘과장 수정’, ‘국장 수정’을 표기해 보관하고 정책방안이 바뀔 때는 바뀐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다. 나중에 책임 추궁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기록을 명확히 해둔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했지만 요즘 공무원사회가 왜 이렇게 변해 가는지 자신도 당황스럽다고 한다. 아마도 다음 정권에서 혹시라도 문제 삼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나 생각한다고 한다. 과거엔 뇌물 등의 비리가 없다면 감사를 통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번 정부에선 4대강 사업 등 국책 사업마저 문제가 되고 블랙리스트 작성, 국정교과서 개편 등 전 정권의 정책을 수행한 사람들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 혐의로 감옥에 갔다.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으로 이전 정권의 지시나 정책 방향에 따라 일을 한 관료들이 형사처벌까지 받으니 상부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엔 깨알같이 메모해 자기 방어막을 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분위기에서 창의성이 나오고 참신한 정책이 입안될지 참으로 안타까운 공직사회 모습이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이 한 회의에서 공무원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한탄해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듣는다” “(문재인정부)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그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 “지금 버스파업 사태가 벌어진 것도…”라는 말도 했다. 여권 내부의 공무원에 대한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당시 정치권은 청와대와 여당의 두 핵심 인물이 자신들의 무능을 고백하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비난했다. 취임 2주년 만에 레임덕에 빠져 있다는 점을 스스로 밝힌 것이 되었고 백번 양보해 관료들에게 어느 정도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청와대와 여당이 얼마나 무능하면 그러한 상황이 되었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권은 5년 유한하지만 공무원들은 수십 년을 일하면서 이 정권 저 정권을 겪는다. 그럼에도 2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공무원들의 동요가 이정도 라면 이는 문재인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공직 적폐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과의 소통이 부족했고 특히 관료들의 업무행태에 대한 이해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그뿐인가, 대통령의 김학의, 윤중천에 대한 재수사 지시나 국민청원을 앞세운 정치권에 대한 압박 등 청와대가 모든 업무를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재계에서는 홍남기 부총리의 목소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외교가에서는 강경화 장관이 실종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환경부의 산하 공기업 임원인사 개입처럼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기관장과 사외이사는 물론 각 부처의 국장급들까지도 청와대가 임명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를 ‘청와대 정부’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청와대에서 결정하고 청와대의 지시와 명령 없이는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는 정부라는 말이다.


`정부 운영의 기조와 발전 방향`을 주제로 한 안민정책포럼에서도 청와대가 모든 정책을 결정하고 관료들을 믿지 않는 등 정부가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다보니 일선 공무원들이 복지부동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이 나왔다. 관료의 전문성을 믿지 않고 과거 정부 때 하던 정책에 대한 적폐 수사에만 매달려 제대로 추진하는 정책이 없고 나중에 책임질 것을 두려워하는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물론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맞지만 청와대는 큰 방향을 결정하고 정책의 집행은 각 부처에 맡겨야 한다. 지금처럼 청와대가 시시콜콜 모든 정책에 관여하고 부처에 의사결정 권한이나 인사권을 주지 않는다면 공직사회는 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조직으로 퇴보할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할 곳은 일선 공무원이 아니라 청와대’라는 지적에 공감이 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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