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강주 칼럼] 찬란한 슬픔의 봄, 장엄한 봄날을 기억하라

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 기사승인 : 2020-05-20 10: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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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빛이 나는 차나무의 여린 찻잎을 하나 얻어 입 속에 넣어본다. 순간 싱그런 향기가 온몸에 퍼져 금새 눈이 밝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듯하다. 지난 달 말경엔 아주 순한 찻잎을 취해 백차를 만들어 보았다. 백차는 갓 돋아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 살아 있는, 잎이 펴지기 전, 솜털이 사라지기 전의 어린 찻잎만을 취해 솥에 덖지 않고 잠깐의 일광과 그늘에서 숙성, 건조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제조한 차이다. 뜰 안에 심어진 한 그루 차나무에서 얻은 것이니 한 줌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제다 직후 시음하는 야심(夜深)한 밤 내내, 아, 이것이 혼자놀기의 진수요 묘미로구나 생각하며, 나 홀로 감동이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5월도 중순을 넘어서면서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찬란하고 거대한 생명의 심포니가 울려 퍼지고 있다. 처마 밑 돌 틈 사이로 참새 두 마리가 들락날락 바쁘다. 한동안 지켜보니 어미는 먹이를 물어다 주고 아비는 새끼들의 배설물을 물어 나르는 듯하다. 풀이고 나무고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들 번식과 성장에 여념이 없다. 숲은 연녹색에서 청녹색으로 변화하며 청춘의 빛깔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감동의 순간들을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없는 수상한 시절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울안에는 돌보지 않은 조그마한 화단에 우뚝 선 키 큰 영산홍 붉은 꽃잎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맘때쯤 해서 몇몇 이웃들을 초대하여 간단하게나마 다과를 함께하며 소박한 상춘잔치를 열기도 했었는데,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고 있자하니 사뭇 아쉬움이 남는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가 조속히 안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봄은 이렇게, 여기서 더는 많이 아프지 않게 보내고 2021의 더욱 더 건강한 새봄을 기대해본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촉촉이 젖어 있는 텃밭에 나가 수북하게 나 있는 잡초를 맨손으로 걷어내니 속이 후련하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생각은 많아지고 행동은 굼떠져서 오늘 내일 내일 모레 미루기만 하다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나서 천상 잡초밭이 되어 있던 것인데, 홀가분한 것이 마치 밀린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여름 날 상추쌈에 된장 맛이라도 볼라치면 내일은 고추며 상추 가지 옥수수 토마토 등등 종묘사에 들렀다가 때 늦은 식재라도 해야 될 것이다. 이팝나무에 꽃이 많이 달리면 그 해 농사는 풍년이 된다는데 여기 저기 하얀 눈이 쌓인 듯 풍성한 꽃송이들을 달고 있는 것을 보니 올해는 꼭 풍년이 될 듯하구나.

잡초밭을 오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겨울이 지나 날이 슬슬 풀려가면서 이름 모를 잡초들이 막 앞 다투어 돋아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저마다의 순서대로 돋아나는 것이었다는 것을, 어느 날은 순식간에 꽃을 피워 앉아 있다. 실용성이나 관상가치로 따지자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그런 풀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누가 감히 등급을 나눌 수가 있을 것인가 이 장엄한 봄날에.

춘녀(春女)는 사(思)하고 추사(秋士)는 비(悲)라 하였는데, 왜 내게는 생각이 많은 봄이 왔는가. 꽃피는 봄날 그를 그려 사모하는 오필리아의 마음이 있고, 낙엽지는 가을 그녀를 추억하는 해므리트의 마음이 있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멋들어지게 읊어주시던 이런 대목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제대로 옮겨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스승의 날도 지났는데 정확한 문장과 의미도 여쭈어볼 겸 겸사겸사해서 오랜만에 한 번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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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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