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칼럼] 카스트라토(castrato)의 명암

김종호 한세대학교 예술학부 교수 / 기사승인 : 2020-10-28 11: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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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한세대학교 예술학부 교수
오래전에 상영된 영화 `파리넬리`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카스트라토(castrato)`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 중에 삽입된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는 단숨에 유행해져서 지금도 음악 방송을 통해 자주 듣는 곡이 되었다.

카스트라토는 거세한 남성 성악가를 칭하는 말로 변성기 전의 남자 아이를 거세하여 소년의 목소리가 변성이 되지 않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신약 성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말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성경말씀은 거세하는 것을 금지하던 교회에서 카스트라토의 존재를 `신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라며 슬그머니 받아들이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성경말씀의 왜곡된 해석을 바탕으로 16세기 후반에 교황령의 지배를 받는 로마와 인근 도시의 교회 성가대에서 여성의 노래를 금지했고 이후 여성들의 자리를 카스트라토들이 차지하면서 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소년들을 훈련시켜 성가대에서 소프라노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변성기가 찾아오는 어려움이 있고 또 팔세티스트(가성을 이용하여 높은 음을 노래하는 남성)를 세우기도 했지만 여성의 소리인듯 하면서 보다 강렬한 카스트라토의 음성에 천사의 음성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사람들이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1650년부터 한 세기 동안 절정기를 누린 카스트라토는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거세 소년들의 음악학교 입학이 금지 될 때까지 나폴리와 여러 도시의 콘서바토리에서 엄격한 교육을 거쳐 양성되었다. 성공한 카스트라토가 된다는 것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갖는 것으로 성공한 카스트라토를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스페인에서 장관에 준하는 지위까지 오른 파리넬리이다. 본명이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Carlo Maria Michelangelo Nicola Broschi,1705~1782)`인 그는 남성, 여성,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세 옥타브를 넘나들며 완벽한 기교와 아름다운 음악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했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기품 있는 외모, 걸 맞는 행동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등 거세 받았다는 한 가지 외에는 어떤 결함도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파리넬리는 깊은 조울증에 걸린 스페인의 왕 필리페 5세의 음악치료를 위한 왕비 엘리자베트의 초청에 응하여 왕의 조울증을 치료하였고 다음 왕조인 페르난도 6세 때까지 22년 동안 궁정 음악가, 왕실 예배당의 음악감독 그리고 왕실의 오페라 제작자 등 여러 요직을 맡으며 장관의 위치까지 오른다.

파리넬리와 같이 성공한 카스트라토들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세의 길에 도전하지만 카스트라토가 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성공하지 못한 카스트라토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잃어버린 남성의 생식 기능과 거세하면서 생긴 호르몬의 변화로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르게 변해버린 애매한 모습과 떨어진 신체 능력은 무대가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멸시와 놀림의 대상일 뿐이었다. 거세의 적기가 12세 이전이어서 이런 판단이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8세에서 10세 사이에 부모에 의해 이뤄졌는데 1년에 나폴리에서만 2000여명 이상이 카스트라토의 꿈을 위해 거세를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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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한세대학교 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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