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강주 칼럼] ‘벼과 식물’ 인류의 절반을 먹여 살리다

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 기사승인 : 2020-07-01 12: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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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강주 객원편집위원 한의학박사
수크령, 각시그령, 참새그령, 좀새그령, 바랭이, 왕바랭이, 나도바랭이, 개사탕수수, 큰개사탕수수, 억새, 참억새, 물억새, 장억새, 억새아재비, 개억새, 솔새, 꼬리새, 흰털새, 오리새, 갈대, 물대, 조릿대, 귀리, 참새귀리, 개밀, 호밀, 뚝새풀, 쥐꼬리새풀, 조개풀, 포아풀, 띠풀......

위에 열거한 식물들은 모두가 벼과 식물들로서 일반적으로 거의 잡초라고 여겨지는 식물들이다. 붙여진 식물들의 이름이 참 재미있다. 도심의 빌딩 숲 근처에서도 흔하게 눈에 띄는 강아지풀과 그의 사촌쯤 될 것인 금강아지풀, 가는금강아지풀, 가을강아지풀, 수강아지풀, 등등의 풀이름을 알아가는 것도 즐겁다. 논농사에서 큰 골칫거리 중의 하나인 피, 논피, 나도논피, 대만피, 돌피, 물피, 개피, 나도개피, 참새피, 큰참새피, 물참새피, 털물참새피, 등등은 또 어떠한가. 피 냄새에 섞여 있는 철분 냄새가 느껴지는가? 조, 조아재비, 산조풀, 산새풀, 쇠돌피, 갯쇠돌피, 나도잔디, 우산잔디, 기장, 방석기장....., 율무, 염주, 대나무, 옥수수 등도 벼과 식물이라니. 자료를 찾아가다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벼과 식물이 무려 700여 속에 11000종 이상이라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벼과 식물들은 식량자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인간 식량의 50% 이상을 벼과 식물로부터 얻고 있다고 한다. 밀, 보리, 귀리, 수수, 벼, 옥수수 등은 주요한 식량 작물이고, 생산량 대비 전 세계의 4대 작물은 사탕수수, 밀, 벼, 옥수수로서 모두 벼과 식물들이다. 정말 대단한 벼과 식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만큼 잡초라 버려지는 풀들 역시 벼과 식물이 태반이다.

벼과 식물은 초식동물의 먹이가 됨으로써 진화한 식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대부분의 식물은 생장점이 줄기의 끝에 있으며, 생장점을 기준으로 세포분열을 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이 일반적인 식물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초식동물에게 줄기의 끝을 먹히게 되었다면 성장은 거의 멈춰버린다. 그러나 벼과 식물들의 생장점은 아래쪽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줄기의 끝부분을 먹혔다고 하더라도 생장점은 훼손되지 않아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뿌리에 가까운 줄기의 밑동에 있는 마디에서 곁눈이 발육하여 줄기와 잎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새로운 성장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분얼이라고 하는데 벼과 이외의 식물에 있어서는 곁가지에 해당된다. 생육과 더불어 원줄기에서 제1차 분얼, 제1차 분얼에서 제2차 분얼, 제2차 분얼에서 제3차 분얼을 형성하는 식으로 줄기가 나온다. 초식동물의 공격에 대응하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중심을 낮추는 것이 몸을 지키는 기본임을 깨달은 것이었을까. 생장점을 낮게 두어 자신의 몸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벼를 베고 난 후에 그 포기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는 빈 들판의 논 풍경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벼과 식물의 진화된 생존법이라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된다. 벼과 식물은 또다른 자구책으로서 잎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도 터득해냈다. 벼나 억새풀 등의 잎에 살갗을 베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벼과 식물은 잎 주위를 칼날처럼 날카롭게 만들어 초식동물의 식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소와 말은 벼과 식물의 잎을 아주 잘 먹는다. 부드러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탐색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팬더곰이 대나무를 맛나게 먹고 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난 참으로 궁금했다. 역시 벼과 식물인 대나무의 맛과 식감은 과연 어떤 것인지. 뱃속은 별 탈 없이 편안한 것인지. 진화한 벼과 식물을 먹기 위해 초식동물 역시 진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먹이사슬 안에서 생물들은 여전히 진화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

마구잡이로 논둑과 제방을 뛰놀던 시절, 꽃이 펴버리기 전 어린 삘기의 하얀 속살을 꺼내어 껌처럼 질겅 질겅 단물을 빨던 추억에 감회가 새롭다, 삐비, 삐미, 뽀비, 띠풀로도 불리는 이 삘기의 뿌리줄기를 한약명으로는 백모근(白茅根)이라고 하는데, 열을 내리고 지혈, 해독, 이뇨의 효과가 있어 토혈이나 비출혈, 요혈, 부정자궁출혈 등 열병으로 인한 출혈성 질환이나 부종, 신염, 방광염, 요로염 등의 염증성질환, 또는 황달, 소갈(消渴), 무월경, 타박상, 신장성 고혈압, 급만성간염 등에도 널리 응용하고 있다.

벼과 식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식량자원으로서나 약용식물로서의 관점보다는 다분히 심미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것 같다. 바람 부는 들판의 벼나 밀 보리 등 농작물들이야 말할 것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산길이나 강변에 호젓이 혹은 무리 지어 바람결을 타고 넘는 포아풀이나 산조풀 강아지풀의 춤사위에 영혼을 씻어본 적이 있는지. 지금 만경강변에는 빗방울 사이로 바람이 불고 있다.



한의학박사 권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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